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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능가경변-막고굴 제85굴

기자명 오동환

호리병 산으로 표현된 ‘도달할 수 없는 경계’ 

‘난입’ 경지서 법문 설하는 여래야말로 구경이자 최상승 상징 
설법 후 모습 감춘 불보살·라바나왕 깨달음 ‘빈집’으로 형상화
“분별 일으키지 않아야 부처 본다”는 가르침 ‘금강경’과 연결

막고굴 제85굴 주실 동피에 그려진 능가경변(부분). 능가경변에서 무엇보다 눈에 띄는 장면은 험준한 마라야산의 형세다. 산 주위는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곳곳에 서품(바라나왕 권청품)의 주요 장면을 배치하였다.
막고굴 제85굴 주실 동피에 그려진 능가경변(부분). 능가경변에서 무엇보다 눈에 띄는 장면은 험준한 마라야산의 형세다. 산 주위는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곳곳에 서품(바라나왕 권청품)의 주요 장면을 배치하였다.

5조 홍인(弘忍, 602~675)이 어느 날 당대의 명장 노영(盧玲)을 동산(東山)으로 불러 회랑에 능가변상을 그리게 하였다. 노영이 변상을 그리기 전날 밤, 신수가 게송을 적어 그 자리에 걸어두었다. 

“몸은 보리수요, 마음은 거울[明鏡臺]이니. 수시로 부지런히 털고 닦아, 티끌이 쌓이지 않도록 하리라.”

홍인은 그 게송을 본 후, 능가변상을 그릴 마음을 접고 노영을 돌려보냈다. 

‘단경’ ‘송고승전’ 등에서 전하는 이 일화는 결국 “보리에는 본래 근본이 없으며, 거울은 본래 대(臺)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게송을 읊은 혜능에게 전법되는 맥락으로서 후대에 회자되었지만, 한편으로 초기 선종에서 ‘능가경’이 차지하는 위상과 그에 따른 ‘능가경변’의 유행상을 확인하게 한다. 

동아시아에서 1500여년에 걸쳐 명맥을 이어온 선종사를 조망할 때, 소의경전으로서의 ‘금강경’의 위치는 확고부동하다. 그러나 정작 달마가 2조 혜가에게 부촉할 때, 중생을 여래의 심지(心地)로 안내할 경전으로 꼽은 것은 ‘능가경’이다. 이른바 ‘능가사자(楞伽師資)’란 능가경을 심요로 하여 확립되고 전승된 초기 선종의 계보인 것이다. 

화사 노영이 끝내 능가경변을 그리지 못하고 돌아갔듯이, 당시 중원에서 그려졌던 능가경변은 현재 전하는 것이 없으며, 오직 돈황석굴에서 만이 11폭의 능가경변이 전해지고 있다. 그중 가장 이른 시기에 출현한 것이 9세기 초의 작품인 막고굴 제236굴 벽화이다. 이 시기는 오히려 돈황석굴에서 금강경변이 출현한(8세기 후반) 것보다 늦은 때이니, 선종사의 전개를 생각하면 아이러니한 일이다. 

‘능가경’이 성립한 시기는 대략 4세기이며, 곧바로 중국에도 전해져 한역되었다. 현재 전하는 ‘능가경’에는 (1)443년 남조 류송의 구나발타라 역본인 ‘능가아발다라실경’ 4권, (2)513년 북위의 보리류지 역본인 ‘입능가경’ 10권, (3) 700년경 당의 실차난타 역본인 ‘대승입능가경’ 7권이 있다. 달마선사가 혜가에게 부촉한 것은 구나발타라가 번역한 4권본이지만 돈황석굴의 능가경변은 실차난타의 7권본에 근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돈황석굴의 능가경변은 중당에서 북송까지 약 200년에 걸쳐 유행하였지만, 구도와 내용에는 큰 변화가 없다. 화면의 구성은 중앙의 설법도, 설법도 주위에 배치한 서품의 장면들, 나머지 공간에 배치된 비유의 장면들로 삼분된다. 

만당(晩唐) 시기에 조성된 막고굴 제85굴의 경우를 보자. 주실의 천정부는 북두형(覆斗形)으로 비탈진 4면에 각각 다른 경변들로 장식하였다. 그중 동피(東披)의 벽화를 관찰하면, 여느 변상과 확연히 비교되는 구도상의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대부분의 변상은 화면 중앙에 경의 설주인 본존불을 중심으로 법회의 자리를 크고 화려하게 장엄한다. 그러나 85굴 동피의 벽화의 경우, 화면의 중심에서 가장 시선을 끄는 부분은 본존불 자체보다 본존불이 자리한 거대한 산이다. 이 산은 대해(大海)의 한가운데 우뚝 솟아 있으며, 산 중턱의 폭이 좁고 위아래로 갈수록 넓어지는 수미산의 형세여서 누군가 오르고자 하여도 도저히 오를 수 없다. 

700년경 실차난타가 역출한 7권본 ‘대승입능가경’은 경문의 서두에서 “어느 때 부처님께서 큰 바닷가의 마라야산 정상에 있는 능가성에서 대비구중 및 대보살중과 함께 계셨다”고 설한다. ‘능가(楞伽)’라는 말은 ‘도달할 수 없는[不可到]’, 혹은 ‘들어가기 어려운[難入]’ 경지를 뜻한다. 85굴 동피 벽화는 바로 이 신통력을 빌리지 않고는 오르기 어렵다는 마라야산의 능가성을 표현한 것이며, 동시에 이곳 정상에서 설하는 여래의 법이 구경의 제일의(第一義)이자 최상승을 상징한 것이다. 

마라야산의 아래의 화면을 보면 세 가닥의 구름꼬리가 길게 늘어졌는데, 이 구름의 이동을 따라 서품의 주요 장면들이 전개된다. (1) 마라야산 아래 우측의 화면에는 세존이 전각 안에 단좌한 채 누군가에게 설법을 펼치고 있다. 이것은 서품에 해당하는 ‘라바나왕권청품’에서 세존께서 대해의 용왕궁에서 7일 동안 설법을 하셨다고 설한 부분이다. 그 아래로 길게 뻗은 구름 위에는 세존과 협시보살이 타고 있다. 세존이 용궁에서 바닷가로 나와 무량억의 범천·제석천·사천왕·천룡 등 대중의 영접을 받는 장면이 연결되고 있다. (2) 가운데의 구름 줄기는 마라야산 정상으로부터 아래로 이동하고 있다. 구름 위에는 능가성의 성주인 라바나 야차왕이 타고 있으며, 세존에게 법문을 청하러 가는 중이다 (3) 그 왼쪽의 구름에는 전각 안에 세존과 보살, 그리고 라바나왕이 함께 앉아 있는데, 이것은 부처님께서 라바나왕의 청을 받아들이시고 법회를 위해 능가성에 오르는 모습이다. 

서품과 관련하여 주목해야 할 또 하나의 중요한 장면이 있다. 마라야산 정상의 좌측과 우측에는 마라야산과 똑같은 형세의 산이 각각 세 개씩 보인다. 그리고 산정상에는 저마다 전각이 있는데, 그 안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어찌된 영문일까? 

경문에 의하면 세존이 라바나왕의 권청으로 능가성에서 설법하실 때, 문득 무량의 보배산을 만들어 내시고, 산 정상마다 부처님, 보살들과 라바나왕과 권속들을 나타내 보이셨다. 각각의 산마다 ‘능가법회’의 상수인 대혜보살이 있어 법을 물으니, 저마다의 부처님께서 ‘능엄경’을 설하셨다. 설법을 다 마치시니, 부처님과 보살 모두 공중에서 모습을 감추고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라바나왕은 문득 홀로 남겨진 자신을 보며 깨달음을 얻는다. “일체 모든 법의 성품이 이와 같아서, 오직 자기 마음[自心]에서 분별한 경계일 뿐이며…부처님을 보고 법을 듣는 것도 모두 분별이다. 보이는 것에 집착하면 부처를 볼 수 없고, 분별을 일으키지 않으면 능히 (부처를) 보게 된다.” 

선종의 소의경전으로서 ‘능가경’이 ‘금강경’과 연결되는 대목이다. 

오동환 중국 섬서사범대 박사과정 duggy11@naver.com

[1672호 / 2023년 3월 1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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