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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마조선의 중국 불교사적 배경

기자명 정운 스님

교학불교서 실천불교로의 전환

마조 등장, 역경 완성된 당 중기
유식·화엄·정토 등 종파의 발전
마조 이후부터 실천불교 시작
권위 불교에 반발한 민중 영향

 

앞 원고에서 당나라 초기에 8종 종파불교가 모두 완성되었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8종이 나란히 발전한 것은 아니다. 겨우 명맥만 유지한 종파도 있고, 발전을 거듭한 종파도 있다. 후자의 종파로는 법상종[유식]·화엄종·정토·밀교이고, 선종은 미미했다[당나라 말기에 선·정토가 융성]. 그러면 마조가 활동한 무렵 이전 불교사를 살펴보기로 하자.

유식은 현장 법사를 초조로 한다. 현장(602∼664)은 28세에 인도로 구법을 떠나 17년 만에 당나라에 입국한 해가 645년이다. 태종은 고구려 원정까지 미루고 그를 맞이했다. 원래 태종은 도교를 숭상했으나 현장을 계기로 불교에 귀의한 셈이다. 황제는 현장이 자은사 도량 내에 머물도록 하고, 번역 작업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였다. 현장이 ‘유가론’을 역출했을 때 황제는 논을 들고 입이 마르도록 찬탄했다고 한다. 태종은 현장을 국정에 중용했으며, 치국 전반을 법사와 논했다. 현장 열반 후에도 제자인 자은규기(632~682)도 고종[재위, 649∼683]의 신임을 받았고, 우리나라 원측 법사도 현장의 제자인데, 측천무후의 귀의를 받았다. 원측의 유식학[서명파]이 고려 초에 유입되었다. 

화엄종의 3조인 현수법장(643~712)도 측천무후에게 초청을 받아 궁중에 들어가 화엄의 교리를 설했다. 법장은 화엄종 2조 지엄(602∼668) 문하에서 공부했는데, 법장과 동문수학한 승려가 신라의 의상(625∼702)대사이다. 또 4조 징관(738∼839)도 ‘일곱 황제의 문사(門師)’로 불릴 정도로 황궁과 매우 밀접했다. 한편 화엄종 승려만이 아니라 선종 선사들 중에도 화엄 교리에 뛰어난 이들이 많았다. 

정토종은 초조인 도작(562∼645)과 2조인 선도(613∼681)에 의해 발전하였다. 태종은 이 선도화상을 매우 존경했는데, ‘송고승전’에 의하면 ‘선도화상의 장례식이 매우 성대했던 것이 신수의 제자인 보적(651∼739)에 버금하였다’는 것으로 봐서 당시 정토종의 입지를 추론해볼 수 있다.

밀교는 300년 무렵에 중국에 유입되었으나 종파로서 발전된 것은 선무외(637∼735)와 금강지(669∼741)가 인도에서 중국으로 입국하면서부터이다. 선무외는 중인도 오리샤(Orissa)의 국왕이었으나, 왕위를 버리고 출가해 80세에 서역을 지나 천산북로를 통해 장안에 들어왔다. 현종의 영접을 받았고, 왕실사찰인 흥복사와 서명사에 머물며 밀교경전을 번역하였다. 금강지는 10세에 출가해 인도 여러 지역에서 수행하다가 720년 51세에 낙양에 들어와, 723년 제자 일행(一行)·불공삼장(705∼774) 등과 함께 밀교경전을 번역하였다.

이렇게 교종이 정립되고 있을 무렵, 선종은 어떠했는지를 살펴보자. 달마가 중국에 들어오기 이전 중국인들은 선(禪)을 신선 방술적이고 초현실적인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인도 선의 중국적 변용은 천태지의(538∼597)로서 삼매사상을 정립했지만, 중국적인 선으로 발전하지 않았다. 인도적인 신이(神異)의 잔재를 완전하게 승화시킨 이는 달마에 의한 선사상이다. 이렇게 달마로부터 시작된 선종은 당나라 초기만 해도 아직 교단으로서 발전하지 못했다. 

앞에서 살펴본 대로 제도권의 도움으로 교학불교가 크게 번성할 무렵, 초기선종은 왕권이나 귀족들의 도움이 없었다. 달마의 4권 ‘능가경’의 전수와 안심법문은 2조 혜가·3조 승찬 시대까지 전승되는데, 이때까지만 해도 능가종 수행자들은 들과 숲에서 두타행을 일삼았다. 천태가 선법(禪法)을 일으킨 직후에 해당하는 4조 도신·5조 홍인의 문하를 ‘동산교단’이라고 했는데, 500명이 집단 생활해 승가 형태를 이루기 시작했다. 선종의 연원도 이 동산법문이 활동하는 시기를 전후로 본다. 

마조는 당 중기의 인물로서 당시 불교계는 역경사업이 거의 완성된 상태였으며 현장·법장·선도·도작·불공삼장 등 뛰어난 승려와 불교학자가 배출되어 유식·화엄·정토·밀교 등 종파불교가 발전된 시기이다. 마조를 기점으로 중국불교사를 조망해보면, 마조 이전은 교학불교가 완성되었다면, 마조 이후부터는 실천불교가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교리만을 내세우는 권위적인 교학불교보다 새로운 실천적인 사상을 요구하는 시대적인 민중들의 바람이기도 하다.

정운 스님 동국대 강사 saribull@hanmail.net

[1672호 / 2023년 3월 1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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