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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쟁사상으로 본 국회의원 불체포 특권

기자명 민학기

어느 국회의원에 대한 구속영장이 청구되자, 정치적으로 두 패로 나뉘어 ‘불체포특권은 폐지되어야 한다’ ‘헌법에 보장된 권리로 포기할 수 없다’ ‘불체포특권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한 대로 포기하라’는 등 각기 다른 주장으로 온 세상이 소란스럽다.

모든 만물은 앞 모양, 뒷 모양, 옆 모양, 바깥 모양, 안 모양이 각기 다른데, 그 다른 면에만 집착하여 ‘이렇게 생겼다’ ‘저렇게 생겼다’고 다투어 본들 코끼리 다리만 만져 본 사람이 ‘코끼리는 기둥 같이 생겼다’고 말하는 것처럼 껍데기 논쟁에서 헤맬 뿐 실상에는 접근조차 하지 못한다. 각자가 다르게 본 껍데기에 집착하지 말고 반대 쪽에서 보면 다른 모양일 수 있다고 긍정적으로 수용하면서 실상을 이해하고 나면, 모든 주장이 한편으로 일리 있지만, 다른 편으로는 헛된 것으로 실상에 들어가면 모두가 통합된다는 원효대사의 ‘화쟁사상’으로 이 대립을 해소할 수는 없을까.

대한민국 헌법 제11조에 ‘①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②사회적 특수계급의 제도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어떠한 형태로도 이를 창설할 수 없다’고 평등권이 선언되어 있는 반면, 헌법 제44조에서는 ‘①국회의원은 현행범인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회기중 국회의 동의없이 체포 또는 구금되지 아니한다’는 불체포특권이 제11조 평등권과 배치돼 상호 모순된다는 점에 문제가 있다.

위와 같은 특권은 1397년 영국왕이 권력을 전횡하다가 이에 반대하는 의원을 체포한 일이 있은 뒤 1603년 의회특권법으로 불체포특권을 법제화하였고, 프랑스에서는 대혁명 후 1791년 헌법에 “국민 대표는 입법부가 기소 이유가 있음을 의결한 후에만 소추될 수 있다”고 규정한 데서 유래한다. 

위와 같이 불체포 특권은 막강한 형벌권을 가진 권력이 국민 대표인 의원을 함부로 구속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민주주의가 방해받지 않고 의원의 활동을 보장하는 기능을 한다는 점에서 그 제도적 순기능이 충분히 인정된다. 따라서 위와 같은 특권을 폐지하는 것이 옳은지 다시 검토할 필요가 있다.

문제는 국회법에 ‘의원을 체포하거나 구금하기 위하여 국회의 동의를 받으려고 할 때에는 관할법원의 판사는 영장을 발부하기 전에 체포동의 요구서를 정부에 제출하여야 하며, 정부는 이를 수리(受理)한 후 지체 없이 그 사본을 첨부하여 국회에 체포동의를 요청하여야 한다’는 절차규정에 있다(26조제1항). 불체포특권의 본질은 모든 국민들에게 평균적으로 적용되는 사법절차를 국회의원에게만 배제하기 위한 특권이 아니라, ‘국회에서 의결권 행사를 보장하기 위한 것’이므로 구속영장청구를 심사하고 구속영장을 발부하는 것은 사법부의 재판절차이므로 평등의 원칙이 적용되어야 한다.

따라서, 국회의원이 범죄의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되면 법원의 재판절차와 집행절차를 구분하여 국회의원도 일반인과 동일한 사법절차에 따라 구속영장 심사를 받아야 하고, 불체포특권이 적용되어서는 안된다.

다만, 구속영장 발부 이후에 국회의원을 체포 감금하는 집행절차에서는 헌법에 정한 불체포특권에 따라 회기 중에는 국회의 동의를 받아야 체포 구금할 수 있고, 일단 체포 구금된 의원이라도 국회에서 석방요구를 의결하면 석방될 수 있다. 이래야 평등권 본질도 침해 않으면서 국회의원의 의결권 등 의회활동도 보장함으로써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고, 이것이 원효대사의 화쟁정신이 아니겠는가.

따라서, 정치인들은 헌법에 살아있는 불체포 특권을 폐지해야 한다고 말로만 떠들면서 실제로는 불체포특권의 방패 뒤에 숨을 것이 아니라, 국회법 제26조 ‘체포동의의 절차’를 ‘①법원에서 발부된 영장에 의하여 의원을 체포 구금하려면 국회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②법원에서 국회의원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되면, 정부는 지체 없이 국회에 체포동의를 요청하여야 한다’고 개정해야 할 것이다.

민학기 변호사 hackymin@hanmail.net

[1673호 / 2023년 3월 2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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