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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불의 시대 다시 온다면

기자명 이병두

500여년 조선 역사에 반정[反正, 또는 쿠데타]으로 임금 자리에서 쫓겨난 인물이 연산군과 광해군 두 명이다. 사람들의 시각이 많이 다양해진 오늘날 광해군에 대해서는 외교 문제 등과 관련하여 그의 공적을 재평가하는 움직임도 있어서 일방적으로 매도만 당하지 않는다. 다른 왕들에 비하여 불교를 억압하지 않았고 오히려 친불교적인 면이 있어서 그의 원찰이었던 남양주 봉인사에서는 그를 재조명하는 학술세미나를 몇 차례 개최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연산군의 경우는 누구도 그를 변호하지 않는다. TV드라마와 영화 등에서 악독한 군주의 대표로 묘사될 뿐만 아니라, 불교인들 사이에서도 그가 ‘원각사 철폐’ 등 불교 탄압을 심하게 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그를 ‘불교 탄압의 원흉’으로 여기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다. 그러나 그를 다시 불러내 그에게 변명을 하거나 자기변호 기회를 준다면 “억울하다”고 할 것이다.

그가 저지른 불교 탄압의 대표 사례인 원각사 문제를 ‘연산군일기’(쫓겨난 임금 재위 기간의 기록은 ‘실록’이라 하지않고 ‘일기’로 칭함)를 통해 살펴보자. 원각사에서 이루어지고 있던 인경(印經) 불사에 대해 숱한 관리들과 유생들이 “인정상 불경을 불태워 뿌리를 끊어버리지는 못할망정 어째서 그 책을 계속 간행하느냐”며 결사반대하였다.(연산군 1년 7월). 이런 분위기가 계속 이어지던 중에 “성균관을 원각사 터에 옮겨 짓자”는 신하들의 건의를 받아 연산군이 “성균관을 원각사 터에 옮겨 짓도록 하라”고 했다가 신하들이 “원각사는 사도[邪道, 불교를 말함]가 있던 곳이므로 성균관을 옮겨 짓는 것이 옳지 못하다”고 하자 다시 “아직 헐지 말라”고 하였다.(연산군 10년 7월) 그러다가 몇 달 뒤 다시 “세조께서 세우긴 했지만 나라에 도움을 주거나 국가 운명을 연장시켜 주는 곳도 아닐 것이니 승려들을 내쫓아 그 사찰을 비우게 하라”는 명을 내리자 영의정을 비롯한 신하들이 환영한 것으로 보아 이 일이 신하와 유생들의 계속된 압박을 받아 어쩔 수 없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연산군 10년 12월) 오죽하면 집권 초기 그의 입에서 “임금으로 하여금 손발을 놀리지 못하게 하고서 아랫사람들이 모두 자기 마음대로 하려는 것이다”는 말까지 나왔겠는가.(연산군 2년 1월)

원각사 철폐뿐 아니라 “장의사(藏義寺)를 철거하고 그 터에 화단을 넓게 만들어 각종 꽃을 심으라. 그리고 동구(洞口)에 땅을 골라 이궁(離宮)을 짓고 거기에도 화단을 만들도록 하라”고 하는가 하면(연산군 12년 2월) 정업원에 들어가 비구니를 폭행하는 등 그가 저지른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악행은 무슨 이유를 들더라도 변명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강력한 호불(護佛) 군주였던 세조 집권기를 제외하고는, 불교를 사도(邪道)로 몰며 ‘풍기 문란’을 이유로 사대부와 그 가족들뿐 아니라 일반인들도 사찰에 가지 못하게 하고 스님들의 민가 출입을 금하라고 하는가 하면, 대장경 판본이 불에 타면 오히려 경사로운 일이라는 극언을 쏟아내는 등 ‘절을 모두 없애고 승려들을 한 명도 남기지 말아야 한다’는 신하와 유생들의 진언(進言)‧상소가 500년 조선 시대에 거의 끊어지지 않았다. 중종 3년에는 홍일덕이라는 태학생(太學生)이 상소에서 “폐조[연산군 재위 시절]에서 한 일은 하나도 본받을 만한 것이 없지만, 오직 사찰을 헐어버린 한 가지 일만은 지금까지도 속 시원하게 여기는 일”이라고 할 정도로, 유교의 독점적 지위를 지키기 위해 불교를 말살시키겠다는 기득권 세력의 반발이 집요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대비와 왕비 등 왕실의 도움이 없었으면 임금들도 버티기 어려웠을 것이다.

한국불교가 그 힘든 세월 동안 당한 차별과 탄압을 견디고 다시 당당한 모습을 보일 수 있게된 것은 ‘세계 종교사에서 드물고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우리 모두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는 한편 계속해서 스스로에게 물으며 경책(警責)해야 한다. “앞으로 비슷한 상황이 닥치면, 그 난관을 이겨낼 수 있을까?”

이병두 종교평화연구원장 beneditto@hanmail.net

[1673호 / 2023년 3월 2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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