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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에 새기는 사람

기자명 명오 스님

어느 날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세상엔 세 종류의 사람이 있다. 바위에 새기는 사람, 흙에 새기는 사람, 물에 새기는 사람이다. 바위에 새기는 사람은 자주 화를 내고 화를 내면 오래 간다. 마치 바위에 새겨 바람이나 물에 지워지지 않는 것처럼. 흙에 새기는 사람은 자주 화를 내지만 오래 가지 않는다. 마치 바람이나 물에 쉽게 지워지는 것처럼. 물에 새기는 사람은 거칠고 날카롭게 말하고 불쾌하게 말하더라도, 곧바로 화해하고 친목하며 친절하게 대한다. 마치 물 위에 새기면 즉시 없어지는 것처럼.”

사람이 화내는 것을 바위·흙·물에 비유한 경전 이야기이다. 분노를 즉시 없애고, 오래 간직하지 말라는 교훈을 담고 있다. 분노는 자신의 욕망이 좌절되거나 방해받을 때 생긴다. 우리는 화나는 생각이나 감정을 그대로 표출하기도, 참아 넘기기도 한다. 분노의 상황이 바위에 새긴 것처럼 오래도록 남기도, 땅이나 물에 새긴 것처럼 바로 없어지기도 한다. 화를 바위에 새긴다는 말은 분노의 감정을 마음에 꼭꼭 간직해 원한이 된 것이다. 분노의 파괴적이고 폭발적 성향과 전염성은 개인을 넘어 사회적 문제이다. 자신이 바위에 새기지도 말고, 상대방이 새기게 해서도 안 된다. 끊임없는 분노의 화살로 자신을 찌르며 분노의 희생양이 되지 말아야 한다. 

요즘 우리 사회는 화를 바위에 새기도록 한 사람들에게 분노하고 있다. 특히, 어린아이들의 몸과 마음에 지워지지 않는 평생의 트라우마를 겪게 하는 학교폭력에 가슴이 막힌다. 온라인을 달구며 시청자들의 호응을 얻고 있는 드라마 ‘더 글로리’가 학폭 문제에 사회적 관심을 확산하였다. 연예·스포츠계와 정치계, 사회 전반에서 학폭은 큰 이슈다. 스타로 예정된 인생 역전의 상황에서 하차하고, 승승장구할 것 같던 연예인들과 운동선수들이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졌다. 아무리 출중한 능력을 갖추어도 학폭 가해자로 밝혀지는 순간 퇴출을 당한다. 한 인사는 최고위직에 임명되자마자 낙마했다. 아들이 학폭 가해자였다. 자식의 무사를 위해 그가 보여준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박힌 사회 불평등과 불공정, 고위층의 부조리를 비난하고 있다. 

학폭은 죄의식 없이 강자가 약자를 폭력으로 짓밟는 삐뚤어진 서열의식에서 자행되는 범죄이다. 가해자의 무지와 욕심이 상대적 약자를 화풀이로 삼는다. 어린아이들은 무엇이 그토록 두렵고 불만족스러워 친구를 괴롭힘으로 화를 표출할까? 성적 압박과 경쟁, 친밀감 없는 인간관계 등으로 학교나 가정에서나 불행한 것이다. 가정은 인생의 첫 학교이고, 부모는 첫 스승이다. 부모는 자녀의 거울이고, 부모가 행복해야 자식도 행복하다. 부모의 지나친 기대와 간섭, 분노와 폭력, 잘못된 자식 사랑과 가치관이 대물림되고 폭발하게 된다. 가정의 문제가 사회로 확산하는 것이다. 

아이들이 화를 물에 새기려면, 가족은 평등한 관계에서 상호존중하고 소통해야 한다. 부모의 진정한 사랑으로 자기도 타인도 사랑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행동에는 반드시 과보가 따른다는 이치를 가르쳐야 한다. 욕심을 적게 하고, 말·행동·마음으로 선하게 사는 행복을 알려 줘야 한다. 학교는 평등과 공정을 배우게 해야 한다. 강자가 약자에게 함부로 힘을 휘둘러도 아무 일 없는 듯 지나가게 해서는 안 된다. 부모의 신분에 좌우되지 않고, 반성하고 용서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자비는 분노를 물에 새기게 한다. 자비로써 원한을 지울 수 있다는 것이다. 부처님은 “나를 욕하며 상처 주고 나에게 손해를 끼쳤지만, 그것이 그에게 무슨 이득이 되었는가? 앞으로 나에게 그렇게 한다 해도, 그것이 그에게 무슨 이득이 될 것인가?”를 생각하라고 했다. “악행을 저지르면 이생에도 사후에도 괴롭다”고 했다. 업보와 윤회를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나는 나, 너는 너’라는 이기심으로 상대를 도구로 이용하려는 생각을 알아차림 해야 한다. 나에게 이익이 없는 대상을 파괴하려는 감정을 알아차림 해야 분노를 조절할 수 있다. 자신을 사랑하고 타인은 자비로 대하는, 화를 물에 새기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

명오 스님 동국대 강사 sati348@daum.net

[1674호 / 2023년 3월 2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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