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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불교사 측면에서 본 ‘마조’

기자명 정운 스님

마조는 대한불교조계종의 연원

조계종의 종조인 도의국사는
마조의 장손 서당 법맥 전승
마조의 고향 중국 사천성서는
마조사 복원 등 현창운동 전개

① 현 중국에서의 마조 현창운동
필자는 10여년 전 마조도일(馬祖道一, 709∼788)의 고향·출가지·개법(開法)한 곳·선풍 전개한 곳 등 행적지를 순례했다. 마조가 선풍을 펼친 강서성(江西省) 홍주 개원사[현 우민사]는 당시 중국불교협회 회장인 일성(一誠, 1926∼2017)방장이었다. 일성은 마조가 열반한 사찰 보봉사(寶峯寺, 강서성 정안)의 방장을 겸임했으며, 마조 관련 사찰들을 복원 불사하였다. 또 일성은 마조의 고향인 사천성(四川省) 시방현(什方縣)에 마조사를 복원하고, 마을 전체를 마조 성지로 만들었다. 필자가 그곳을 순례할 당시, 마을 어귀에서부터 곳곳마다 마조의 행적 그림이 설치되어 있었다. 또 마조가 탄생한 집 등을 복원하고, 주변 곳곳에 마조 명(名)을 딴 상징물로 꾸며져 있었다. 이렇게 마조현창운동을 전개했던 일성 방장을 불교계에서는 ‘마조의 현신’이라고 불렀다. 선사 열반한 지 1200여년이 지난 시점에도 마조가 드러나고 있음은 중국불교사에 미친 그의 영향을 가늠할 것이다.

② 마조와 우리나라의 인연? 
선사의 행적을 언급하기 전에 마조와 우리나라 조계종과 어떤 인연이 있는지를 두 가지로 소개하고자 한다.

첫째, 마조는 대한불교조계종의 연원이다. 나말여초에 아홉산에 선종 산문이 개산되었는데, 이 가운데 일곱 산문이 마조계 법맥이다. 즉 7산문의 개산조(開山祖) 승려들은 마조의 손자뻘 혹은 증손자뻘이다[실은 구산선문 이외에도 더 많음]. 이 가운데 조계종의 종조 도의(?∼825)국사는 마조의 장손격인 서당지장(735∼814)의 법을 받아 신라에 가지산문을 개산하였다. 또한 실상산문의 홍척·동리산문의 혜철도 서당의 법맥이다. 2008년 조계종 총무원에서는 마조의 도량인 강서성 개원사[현 우민사] 도량에 ‘조계종종조 도의조사 입당구법기념비’를 세웠다. 이곳은 도의국사가 서당을 참알하고, 법맥을 받은 곳이기 때문이다.

둘째, 동아시아 선에 큰 영향을 미친 천하의 마조가 무상대사의 제자라는 점이다. 무상은 중국 초기선종의 한 일파인 정중종의 개조인 정중무상(淨衆無相, 684∼762)을 말한다. 무상은 신라 성덕왕의 셋째 왕자로 중국에서 섬기는 오백나한 가운데 455번째에 해당하는 나한으로 모셔져 있다. 이 무상과 마조가 스승과 제자라는 점을 처음 주장한 승려는 규봉종밀이다. 선교일치를 주장한 강사이자 선사인 종밀은 ‘원각경대소초’·‘송고승전’에 무상과 마조의 사자(師資) 관계를 논하였다. 이후 근현대 들어 중국 사학자인 호적(胡適, 1891∼1962)박사가 주목하고, 이 내용을 연세대 민영규 교수에게 전했다. 이후 민 교수의 연구를 시작으로 근자에까지 승려들과 학자들에 의해 꾸준히 연구되고 있다.

③ 마조의 인물됨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마조가 활동하던 당대는 중국 역사상 문화적·사회적·대외적으로 가장 번성했던 시기이다. 최고로 문화·불교가 번성하던 무렵, 안록산의 난(755∼763)이 일어났다. 이 난으로 당나라의 사회구조·문화·종교까지 흔들렸고, 불교도 종래의 수도권 중심의 교종이 쇠퇴하고 사람들의 생활과 밀접한 선종이 일어났다. 이런 혁신적인 분위기 속에서 마조의 선은 풍요로운 시골의 곡창 지대를 배경으로 종래의 귀족이나 문벌에 대신해 지방 지배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마조는 사천성 시방현 사람이다. 그의 성은 ‘마(馬)’씨로 그가 죽는 날까지 그의 속성인 ‘마’씨에 조사선의 ‘조(祖)’를 붙여 마조(馬祖)라 불렀다. 매우 독특한 이례인데, 예로부터 속성으로써 한 종파의 조사를 부른 예가 있다. 화엄종의 조사인 두순(杜順, 557∼640)·부대사(傅大士, 497∼569)·김화상(金和尙, 무상대사] 등이다. 또한 덕산선감은 참선하기 전에 ‘금강경’ 강사였는데, 그를 ‘주금강(周金剛)’이라고 불렀다[성이 ‘주’씨]. 어쨌든 마조라는 호칭은 선종의 종조로서 잘 어울린다. 

마조의 고향 사천성은 위진남북조 때는 촉나라이다. 마조와 같은 고향 출신으로 걸출한 선지식이 많고, 송대의 문인 소동파도 이곳 출신이다. 등소평(鄧小平, 1904∼1997)·섭영진(攝榮臻, 1899∼1992) 등 현대 중국을 이끈 인물들도 사천성 출신들이 많다.

정운 스님 동국대 강사 saribull@hanmail.net

[1674호 / 2023년 3월 2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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