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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선 수행 권순석(정혜·53) - 하

기자명 법보

법 찾아내 확인하려는 분별심
김태완 선생님 조언에 내려놔
일시적 체험 홀로 가능하지만
눈밝은 스승 있어야 바로 정진

정혜·53
정혜·53

“이 겁니다. 이 것뿐입니다.”

손가락을 들어 나지막하지만 단호하게 뭔가를 가리키는 모습이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무심선원 김태완 선생님과 인연이 시작됐다. 당시 선생님은 일요일마다 동국대 대각전에서 법회를 열었다. 매주 그 곳을 찾았고, 이곳이 내 마지막 공부처가 될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이 들었다.

“생각으로 찾지 말고, 머리로 헤아리지 말고 (손가락을 들며)이 겁니다.”

머리로 헤아리는 공부가 아니라고 하시니, 오로지 선생님이 가리키는 손가락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법문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고 온몸으로 선생님의 손가락에만 매달렸다. 마치 앞으로 나아가려는데 커다란 장막이 온몸을 막고 있는 듯 했다. 몇 개월쯤 지나자 반쯤 얼 나간 사람처럼 하염없이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입에서 절로 ‘나는 도저히 안되는구나’라는 말이 흘러나왔다. 그러면서도 공부를 손에서 놓질 못했다.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선생님은 ‘이 것뿐입니다’하면서 손가락을 들어 올리고 계셨다. 망연자실하게 손가락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선생님 뒤 불상이 눈앞으로 확 들어오면서 선명하게 밝아졌다. 순간 가슴속이 시원해졌다. 살아오면서 이렇게 평범해진 적이 있었나 하는 느낌도 들었다. 법회를 마치자 가슴에 잔잔한 기쁨이 흘렀다. 그렇게 알고자 했고 찾고자 했던 마음이 씻은듯이 사라지고 없었다. 그렇다고 뭔가를 알거나 찾은 것은 아니었다. 

그날 이후 아무 문제없는 편안한 상태가 계속됐다. 그러나 왜 편안한 건지 명확하지 않았기에 그 자리를 확인하려는 마음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아무 일 없는 상태로 있다가도 그 자리를 확인하려는 마음이 고개를 드는 순간 다시 캄캄해지고 불안해졌다. 마음은 더 간절해졌고, 그럴 때마다 선생님의 법문에 의지했다.

시간이 흐르자 갈등이나 삶에 대한 불안감, 세상에 대한 집착 등이 점점 줄어들거나 옅어졌다. 그러나 법을 알려고 하고, 잡으려 하는 마음은 쉬이 쉬어지지 않았다. 선생님의 지극한 안내가 없었다면 많은 시간 길을 헤매거나 좌절했을 것이다. 선생님은 “마지막까지 남아있는 분별심이 법을 찾으려는 마음”이라며 “최소 10년은 공부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또 “생각으로 찾아서는 절대 안되며, 반드시 저절로 되는 공부”라는 말씀을 늘 하셨다. 

어느날도 어김없이 이 것을 확인하려는 마음이 고개를 들었다. ‘또 이러고 있네’ 하며 좌절감이 드는 순간 그 생각의 뿌리가 확 드러났다. 그 실체 없는 생각의 뿌리가 문제를 만들고 스스로 괴로워하며 고통 받고 있었다. 동시에 원래 아무 문제없이 모든 게 완벽하다는 게 온몸으로 느껴졌다.

세상이 갑자기 내 속으로 확 들어왔다. 깨달음이니 법이니 원래 없는 일이었고, 그냥 하나인 세상이니 다른 뭔가를 찾는 게 어불성설이었다. 그저 눈앞의 일이 전부였고 완벽했다. 

그로부터 몇 개월이 지난 어느 날, 난데없이 마음속에서 ‘나는 법을 절대 알 수 없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겪어본 적 없는 극심한 공포가 밀려왔다. 어떤 저항도 어떤 노력도 하지 않고 그 상황을 받아들이면서, 하던 일을 했다. 그러자 얼마 뒤 공포심이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마치 단단한 뿌리가 생긴 느낌이 들었다. 공부에 힘이 붙었고, 법에 대한 안목도 새로워졌다. 

공부를 하다보면 찾아오는 깨우침은 공부의 성과이지만 그 자리에 머물게 하는 유혹처가 되기도 한다. 때문에 혼자서도 체험은 할 수 있지만, 눈 밝은 스승과의 인연이 없다면 올바르게 공부하기 어렵다. 

나는 매주 선생님의 법문에 의지해 위태하기 그지없는 천길 낭떠러지 외나무다리를 걷고 있다. 선생님은 티끌 같이 작은 거라도 잡으려 하면 쳐냈고, 잠깐이라도 머물려 하면 그 곳을 허물어 버렸다. 

진실로 한 법도 없지만 어떤 것도 이 것 아닌 게 없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이런 법을 세상에 전한 부처님의 은혜가 끝이 없음을 느낀다. 또 30년을 한결같이 공부하시고 “이 공부에 완성은 없다. 평생 하는 공부다”라고 분명히 짚어 주신 김태완 선생님의 은혜는 갚을 길이 없다. 그렇지만 이 자리에 부처님이 어디 있고, 스승님이 어디 있는가? 다만 이 것 뿐이다. 머리로 헤아리지 말고, 이 것!

[1674호 / 2023년 3월 2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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