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걸으면서 미래로 나아간 ‘108 원력문’

기자명 성원 스님

출가 전의 일이다. 법정 스님의 인도 기행을 읽으면서 출가라는 결정에 앞서 인도로 향했다. 스님은 책 속에서 부처님께서 맨발로 걸으셨다는 내용을 기록해 주셨다. 보드가야에서 깨달음을 이루시고 초전법륜지 녹야원까지 천릿길을 맨발로 걸어가 전법 하셨음을 잔잔하게 그려주셨다. 첫 순례길에 너무나 감동을 받아서 보드가야대탑에서 신발을 벗고 사르나트까지 맨발로 갔던 경험이 있다. 물론 차편을 이용하기는 했지만, 맨발로 부처님이 걸었던 대지를 걷는다는 감격이 아직도 가슴을 울린다.

부처님께서는 길 위에서 수행하셨고, 길 위에서 전법하셨으며, 길을 걸으시며 세상과 교통하셨다. 이번 ‘상월결사, 부처님과 함께 걷다’는 생각 이상으로 좋은 반향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일찍이 원효 스님은 ‘발심수행장’에서 ‘자락능사 신경여성(自樂能捨 信敬如聖) 난행능행 존중여불(難行能行 尊重如佛)’이라 하셨다. ‘스스로 즐거움을 능히 버리면 사람들이 믿고 공경하기를 성현같이 하고, 어려운 수행을 능히 행하면 사람들이 부처님 같이 존중한다’고 하셨다. 43일간 부처님과 함께한 이번 도보순례는 보는 것만으로도 그 어려움을 느끼기에 충분했고, 긴 시간 열악한 음식과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을 멀리하며 걸어가는 모습은 사람들에게 다시 한번 한국 승가를 향한 믿음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가장 인상 깊은 일은 마지막 즈음에 나온 ‘상월결사 108원력문’이었다. 불교 예식문을 살펴보면 일정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대부분 귀의, 찬탄, 참회, 발원, 회향이라는 다섯 문단으로 구성되어있다. 귀의와 찬탄이 한 번에 묶이기도 하지만 기본 구조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성철 스님께서 축약해 일상화한 ‘108예불 대참회문’은 귀의와 찬탄이 중심이다. 귀의하는 내용에 절을 하므로 참회문이라고 하셨지만 사실은 지극한 귀의문이다. 

이번 인도순례 과정에서 참가한 스님들의 간절함이 묻어나는 ‘108원력문’은 참으로 시기적절하다는 생각이 든다. 현재 우리 승가뿐만 아니라 한국불교 전반에 ‘발원이 부족한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자주 했다. 포교 전법이 안된다고 하지만 그것은 누구의 탓도 아니다. 주변의 물건들이 불이 붙지 않는다고 말할 수는 있겠지만 잘 살펴보면 불을 붙이려는 자신이 맹렬하게 불타고 있지 않은 탓이 더 클 것이다. 마그마 같은 열기로 세상에 전법 한다면 불법이 다다르지 않는 곳이 어디 있겠으며 불붙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언젠가 지역 포교사를 상대로 법문 하면서 “지난 1년간 1명이라도 비불자를 불자로 이끈 사람 손들라”고 하니 한 명도 없었다. 참으로 어이없어하는데 마침 포교사 한 분이 5명을 포교했다고 하여 그나마 웃으면서 법회를 이어간 적이 있었다.

마지막 회향 때의 외침같이 이제 “부처님 법 전합시다” “전법 합시다!”를 “성불합시다”보다 먼저 외치는 지장보살의 대원을 우리도 함께하면 좋겠다. 모처럼 불자들이 하나로 모이고, 사회적으로 불교와 스님들을 바라보는 눈길에 온기가 느껴지는 지금, 더욱 전법에 열의를 쏟아갈 수 있도록 함께 힘을 모으면 좋겠다. 오랜 시간 불교를 믿고 신행 생활했지만 요즘만큼 불교인으로써 자긍심이 느껴질 때가 없었다면서 매일 불교TV만 틀어놓고 가족들과 함께 본다고 자랑하는 노보살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가슴 뭉클했다. 이번 108원력문을 수행 삼아 다시 한번 많은 사찰과 가정에서 불심을 일으키고 원력을 다지는 불자들과 스님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언젠가 사회 방방곡곡에 귀의에서 참회, 발원이 펼쳐지고 다음으로 ‘108 회향발원’의 결실이 맺어지기를 기대해본다.

깊은 문화의 저력뿐만 아니라 확고한 철학적 사상적 가치를 함유하고 있는 불교가 다소 무기력한 모습을 보였지만 이제 다시 인도순례의 원력을 이어서 모두 머물지 말고 부처님처럼 길을 나서서 전법하고 포교하는데 열정을 가지게 될 것 같다는 희망이 느껴진다.

성원 스님 조계종 미래본부 사무총장 sw0808@yahoo.com

[1675호 / 2023년 4월 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