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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사 주지 등운 스님

화내는 마음과 험한 말 일어나는 것 알아채 멈추는 게 수행

밖으로 열린 눈‧귀‧코‧입을 안으로 돌려 살피면 고요해져
나를 살펴 선업 쌓고 악업을 멈추면 그것이 내 삶을 결정
온전한 정신으로 현재에 집중하며 살아가는 것이 값진 삶

고운사 주지 등운 스님은 “부처님 가르침에서 지혜롭고 행복한 삶의 방식을 배우고 살아갈 것”을 당부했다.
고운사 주지 등운 스님은 “부처님 가르침에서 지혜롭고 행복한 삶의 방식을 배우고 살아갈 것”을 당부했다.

제가 본사 소임을 보면서 고운사에서 템플스테이를 하고 있습니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템플스테이에 참가하신 분들과 아침에 차담을 하면서 이런저런 질문을 받는데, 3∼4개월 전 서울에서 오신 60대 후반 부부가 “스님, 종교가 뭐예요”라고 질문을 하셨습니다. 자신들은 교회에 다니다가 지금은 안 간다면서 그렇게 물었습니다. 그래서 그 분들에게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지역에 있는 사람, 작은 벌레들 또 지옥에 있는 중생들, 축생들, 천상의 신 등 모든 존재들이 괴로움에서 벗어나고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방법을 제공하는 것이 종교”라고 하면서 불교와 기독교를 설명했습니다.

제가 설명을 할 때는 모든 존재가 괴로움에서 벗어나고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것이 종교라는 전제하에 그 종교의 출발점을 돌아봤습니다. 기독교 출발점은 이스라엘입니다. 2000년 전에 이스라엘의 예루살렘에서 시작되었습니다. 2000년 전 예루살렘은 사막이었습니다. 2000년 전엔 하루 종일 밥 한 끼 해결하기 위해 온 곳을 살피고 돌아다녀야 하는 곳이 사막이라는 환경입니다. 우리가 지금 하루 밥 세끼 제대로 먹게 된 것도 40∼50년 전입니다. 그 전까지만 해도 그것을 해결하는 게 어려운 시대였는데, 2000년 전 황량한 사막이라면 얼마나 어려웠겠습니까. 그런 상황에서 원하는 것을 다 이루어주는 전지전능한 하나님이 있다고 하니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렇게 희망을 갖게 해주는 것이 종교입니다. 그래서 제가 볼 때 기독교는 그렇게 탄생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불교는 어떻게 탄생했을까요. 지금 전 총무원장 자승 스님이 상월결사를 하면서 인도에서 부처님의 길을 따라 걷고 있고, 우리 고운사 교구 스님들과 신도님들도 오늘 아침에 출발을 했습니다. 그 인도는 히말라야 설산에서 내려오는 물길이 있고, 인도 북부지역 부처님이 활동하던 무대는 끝없는 평야입니다. 그래서 하루 세끼 밥을 해결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습니다. 부처님이 출가할 때부터 그곳의 많은 사람들은 어떤 종교를 믿든 “내세를 위해 수행하다 죽겠다”는 생각을 했고, 40세 정도 되면 가정을 자식들에게 물려주고 밥그릇 하나 들고 길거리를 다니면서 밥 얻어먹으며 수행하다 죽는다고 떠나는 문화가 있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부처님도 어떻게 살아야 지혜롭고 행복한가를 고민하면서 출발을 하신 것입니다. 기독교가 만들어진 배경이나 문화와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먹는 문제가 해결되고 교육수준이 높아지면서 기독교, 즉 가톨릭과 개신교가 활발하게 활동했던 유럽과 미국에서는 맹목적 믿음의 종교가 아니라 명상문화가 발전하고 있습니다. 마음이 편안해야 한다는 생각에 이른 것입니다. 여러분 가족 간에도 마음이 편안해야 화목할 것입니다. 그러려면 내가 주인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먼저 편안하고 고요해야 합니다. 그러면 가족들이 내 옆에 모이게 됩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유럽과 미국사회 등 전 세계에 명상이 확산되는 것은 물질, 명예 등이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는다는 것을 인식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마음을 평화롭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이 불교대학에 입학하는 이 인연이 중요한 일입니다. 조금 전에 우리 지역의 정치인 몇 분과 어떻게 하면 우리 지역이 잘 살 수 있도록 할 수 있을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만 그건 정치의 영역이니 그분들이 노력해서 해결해야 할 일이고, 그 속에서 개개인의 마음을 평화롭고 행복하게 하는 일은 종교의 영역이고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삶이 중요합니다. 어머니가 어머니로서, 아버지가 아버지로서의 삶을 잘 살 때 가족이 평화로울 수 있습니다. 즉, 어머니와 아버지의 마음이 늘 고요하고 평화로우면 가정이 행복하게 됩니다. 그렇게 행복한 가정이 모인 이 사회가 행복하고 국가가 더 행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가장 주인이 되는 ‘나’의 문제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 ‘나’의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이 불교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무엇보다 개개인들이 갖는 괴로움이 어떻게 해서 발생하고, 그 발생한 괴로움의 원인이 무엇이며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를 정확하게 설명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은 불교대학에 다니면서 그 가르침을 이해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실천에 옮기지 않으면 마음이 평화롭지 않습니다. 실천에 옮기는 가장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우리가 “노는 입에 염불한다”고 하는데 일상에서 수행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마음이 고요하고 평화로우려면 바깥으로 열려있는 눈‧귀‧코‧입을 내 안으로 돌려야 합니다. 그래서 안으로 나를 살필 수 있는 힘이 있을 때 고요하고 평화로워지게 됩니다. 일상생활을 하다보면 말을 해놓고 “그때 내가 좀 참을 걸” 하는 생각을 할 때가 많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미 그 생각을 할 때는 늦게 됩니다. 하지만 마음이 안으로 향해 있으면 내 안에서 화나는 마음과 험한 말을 하려는 상황을 알아차리게 됩니다. 그렇게 알아서 멈추는 것, 그것이 수행입니다. 

우리는 늘 눈‧귀‧코‧입의 관심을 밖으로 향해서 재물과 명예‧식욕‧성욕‧수면욕 등 오욕을 구하는데만 몰두하는데, 그 마음을 안으로 향해서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것을 하는지 알아차리려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면 선한 마음을 갖게 되고 선업을 지켜야 하기 때문에 선하지 않은 마음은 멈추게 됩니다. ‘자업자득’이라고 했습니다. 내가 뿌려서 내가 받는 것인데, 고통 받을 씨앗을 뿌리면 안 되겠지요. 그래서 나를 봐야 한다는 것이고, 안으로 나를 살필 수 있는 힘이 있으면 내가 악업을 지을 이유가 없어집니다. 악업을 지을 이유가 없어지면 내가 고통 받을 이유도 없어지게 됩니다. 따라서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이 잘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내가 뿌려놓은 것은 악업이든 선업이든 내가 거두게 됩니다. 그래서 참회기도가 필요한 것입니다. 나에게 지금 현실에 닥쳐온 어려움은 누가 만든 것입니까. 내가 만든 것입니다. 내가 만든 것이니, 그 업이 커지기 전에 빨리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받으면서 다시는 고통 받을 씨앗을 뿌리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면 참회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반복하면 의미가 없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우리의 삶은 인과뿐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깨닫기 전에 내가 뿌려놓은 씨앗이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하는 말과 행동과 생각이 남을 이익 되게 하는가 고통스럽게 하는가, 남을 이익되게 하는 일이라면 선업이고 고통스럽게 하는 일이라면 악업입니다. 그래서 안으로 나를 잘 살필 때 내가 하는 말과 행동과 생각이 남에게 이익을 주는지 고통을 주는지 알아차려야 합니다. 이때 이익되게 하는 일이라면 진행을 하고, 고통스럽게 하는 일이라면 멈춰야 합니다. 그것이 내 삶을 결정짓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안으로 살펴서 멈춰야 하는 것과 진행해야 하는 것을 알게 되면 우리 삶은 괴로움으로부터 멀어지고 점차 지혜롭고 행복하게 됩니다. 여러분들은 이러한 이치를 정확하게 알고 실천하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순간순간 마음을 어떻게 안으로 살피고 다스려야 하는지를 불교대학에서 제대로 배워야 합니다. 그래서 그 이치를 알고 실천할 때 고요하고 평화로운 어머니 아버지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말 한마디 한마디가 진실하게 되어 자녀들도 자연스럽게 부모를 존경하고 따르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자기를 잘 다스릴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부처님께서 그 힘이 생길 수 있도록 지혜를 가르쳐주시고 있습니다. 따라서 여러분들이 불교대학을 통해 씨앗을 잘 재배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언제 태어나서 언제 가는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 들어가는 숨이 나오지 않으면 곧 죽음이라는 것은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 온전한 정신으로 생각을 가다듬고 가야 합니다. 순간순간 들어가는 숨이 나오지 않으면 내 삶이 끝이 되기 때문에 부처님도 오직 지금 이 순간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온전한 정신을 유지하면서 숨을 쉬어야 하고 그것이 바로 현재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온전하게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삶을 살아간다면 값진 삶이 될 것입니다. 

그렇게 자기 삶을 값지게, 의미 있게 사는 것이 제일 중요한 일입니다. 불교대학에서 열심히 공부하면서 부처님 가르침을 이해하고 실천하게 되면 “부처님 법을 통해서 내 삶을 정말로 지혜롭고 의미 있게 잘 살아가는 방법을 배웠고, 그렇게 잘 살았다”는 생각을 하게 될 것입니다.

템플스테이에 오셨던 어떤 분이 저에게 왜 출가했느냐고 물은 적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행복을 바라면서 살아가듯,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저 역시 가만히 살펴볼 때 ‘어떻게 하는 것이 내 삶을 가장 지혜롭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그 답이 부처님 가르침에 있다는 결론에 도달해서 출가를 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그분에게 살아가는데 가장 지혜롭고 행복한 삶의 방식이 부처님 가르침밖에 없더라고 했습니다. 

인류 역사상 부처님 가르침보다 더 지혜롭고 행복한 삶의 방식이 없어서 수많은 스님들이 출가했고, 저 역시 그렇습니다. 여러분도 부처님 가르침에서 지혜롭고 행복한 삶의 방식을 배우시고, 그렇게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정리=윤지홍 대구경북지사장

이 법문은 3월4일 안동청소년문화센터에서 봉행된 ‘대원불교대학 입학식’에서 조계종 제16교구본사 주지 등운 스님이 설한 내용을 요약 게재한 것입니다.

[1675호 / 2023년 4월 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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