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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 수행 신상욱(서진·37) - 상 

기자명 법보

뇌출혈서 기적적으로 살아나
후유증 겪으며 임용고시 준비
좋은 결과·체력 바라고 108배
절 집착한 것 욕심임 알아차려

서진·37
서진·37

어릴 적 나는 조용하고 말 없는 아이였다. 잘하는 것이 없고, 잘 해야 하는 것도 못하는 편이었다. 게다가 가족의 잦은 이사로 여러 초등학교를 다녔고, 주변에 친구가 적어 혼자 있는 시간들이 많았다. 

그러던 어느 날 길을 걷다 찌그러진 사이다 병뚜껑을 봤다. 동시에 ‘저 병뚜껑은 왜 이름이 병뚜껑인 걸까'  ‘누구의 생각으로 꼭 저렇게 생겨야만 하는 걸까' ‘그럼 난 왜 신상욱인걸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또 ‘신상욱’이라는 이름을 가졌기에 이렇게 무능력한 건지, 그래서 이렇게 못나게 생긴건지, 왜 나는 이렇게 살아가야만 하는 건지, 이 이름의 근원은 어디서 나오며, ‘나’라는 존재는 왜 다른 사람들과 다른 건지 궁금했다.

나는 왜 태어났고 어떤 과정으로 이런 생명이 나오는 건지, 생명이라는 존재는 죽으면 어디로 가는지 몇 달 동안 답을 찾았다. 그러나 오히려 질문에 질문만 더 늘어갈 뿐이었다.

대학교 졸업을 앞둔 추석 전 날. 교통사고를 크게 당했다. 평소 운동 삼아 학교까지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할 때도 자전거를 타고 해운대나 광안리, 태종대 등 바다를 보러 다녔다. 그 정도로 자전거에 일가견이 있었지만 한순간 택시와 충돌은 피할 수 없었다. 눈을 떠보니 병원이었다.

어머니는 지금 살고 있는 집이 어디냐며 재차 물어봤고, 제대로 대답하자 무척 기뻐하셨다. 의식이 3주 만에 돌아왔다고 한다. 사실 눈을 뜬 건 2주 전이었다. 그러나 성인의 의식은 없고 중학생의 기억이었기에 가족들 빼고는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다고 한다. 당연하게도 사고 당일의 기억은 모두 잃어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다. 

병원에서는 기적으로 소문이 났는지 대학병원 의사 선생님들이 구경 오기 바빴다. 선생님들은 “뇌출혈 한 번으로도 죽음에 이를 가능성이 높은데, 두 번이나 겪고도 살아났다”며 놀라워했다. 초등학생 시절 뇌출혈이 있었기 때문이다. 

죽다 살아나보니 작지만 큰 걸 알게 됐다. ‘숨이 붙어 있고 없고의 차이’와 ‘눈으로 볼 수 있고 없고의 차이’다. 생명은 종이 한 장 차이로 왔다가 갈 수가 있음을, 이 목숨이란 게 종이 한 장 같이 별 것 없다는 것을 느꼈다.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뇌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았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입 안에서 맴돌 뿐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시간이 점차 흘러 뇌가 정상으로 돌아오고 나니 대학교는 졸업을 한 상태였다. 무엇을 해야할 지도 몰랐지만 취업을 할 마땅한 곳도 없었다. 

사고 전에 취득한 교원자격증으로 미술 시간강사를 하면서 학교 선생님을 준비했다. 교원 임용을 준비할 때 어머니는 늘 수행하시던 ‘법화경’ 사경 수행을 권해주셨다. “부처님이 합격을 도와주실 것”이라는 격려도 잊지 않으셨다. 그렇게 동화책 같은 ‘법화경’을 꾸준히 사경했다. 이 때 또다시 의문이 들었다. 부처님이 동화 같은 이야기를 설법하셨다는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분명 이 이야기 속에 숨은 진의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임용을 준비하면서 체력적인 부분도 채워야 했다. 의자에 오랫동안 앉아서 공부할 체력을 위해 헬스장을 등록했다. 우연히도 그 곳에서 위빠사나 명상을 하시는 분을 만나 수행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 분은 108배를 하면 수행도 되며 체력도 좋아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솔깃한 마음에 절 수행을 시작했다. 분명 몸으로 하는 수행이라 힘들 것 같았지만 생각보다 체력적으로 그렇게 버겁지 않았다. 

처음 하는 108배 수행. 시간은 약 25분 정도. 점차 익숙해지자 걸리는 시간은 할수록 줄어들었다. 그렇게 1년, 2년이 지났다. 그새 임용시험을 두 번 떨어져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힘이 들었다. 내 기도수행이 부족하다는 생각에 3년째부터는 하루에 108배를 세 번씩, 324배를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또다시 1년을 매일 저녁마다 324배를 하고 임용고시를 쳤다. 그러나 부처님이 절 많이 한다고 시험에 합격시켜주실 분이 아니듯, 안타깝게 떨어지고 말았다. 

좋은 결과를 얻고 싶다고 절에 집착하는 건 그저 욕심이었다. 평범하게 살아도 그만인 것을 나도 모르게 또 욕심을 내고 있던 것이다.

[1675호 / 2023년 4월 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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