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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조사선의 개조(開祖), 마조

기자명 정운 스님

인도 선 탈피해 중국 선 토대 마련

마조 교단, 강서성 일대서 번창
문하에 수행자 구름처럼 몰려 
‘일면불·월면불’ 화두 남기고
세수80 법랍60 륵담사서 입적

마조(709∼788)는 남악회양에게서 법을 받은 뒤, 스승 곁을 떠나 복건성 건양 성적사에서 처음으로 법을 설했다[開堂說法]. 이때 마조의 나이 34세이다. 얼마 후 마조는 여러 제자들을 이끌고 고향을 방문했다. 마을 어귀에 들어서자마자, 밭에서 일하던 할머니가 선사를 보고 외쳤다. “어! 마씨네 키쟁이 코흘리개가 지나가네.” 마조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출가해 나이 들어서 절대 고향에 가지 말라.” 예수도 성인이 된 후, 고향에 갔다가 사람들에게 당한 곤욕이 있어 제자들에게 “성인이 되어서는 절대 고향에 가지 말라”고 하였다.

이후 마조는 복건성 성적사에서 강서성 임천 서리산으로 옮겨갔다. 조계종 종조 도의국사의 스승인 서당지장(西堂智藏, 738∼817)이 마조를 만난 곳이다. 서당은 13세 때 출가해 서리산에서 마조를 시봉했다. 

다시 마조는 강서성 공공산 보화사로 옮겨갔다. 마조가 이곳에 머물 때 물구나무 선채로 입적한 등은봉, 재가자로 유명한 방거사와 딸 영조가 귀의했다. 그래서 현재 강서성 보화사에는 제자들의 이름을 차용해 도량 내에 ‘등은봉 소나무’ ‘영조 연못’ 등의 유적이 있다. 

한편 이 무렵, 군수인 배공(裵公)의 귀의도 받는다. 배공의 귀의로 마조 교단은 강서성 일대에서 크게 번창하기 시작했다. 마조는 769년 중심 행화지였던 홍주(洪州) 개원사 주지로 부임하였다. 선종사에서 ‘홍주종’이라고 명명한 것도 마조가 홍주 지역에서 교화를 펼친 데서 기인한다. 이때부터 마조 문하로 수행자들이 구름떼처럼 몰려왔다. 

당시 마조에게 귀의한 이는 상서(尙書) 로기공(711∼781)이다. 그는 마조를 만나 리소[理所, 관청]에 주석해 줄 것을 간청했다. 이에 마조는 10여년을 관청에 거주했는데, 개원사와 리소를 왕래하면서 제자들을 지도했다. 마조의 나이 63세에서 73세 때로 추측된다. 이 무렵 마조의 선풍이 천하를 풍미했다. 당시 강서 지방 일대에 마조 도량이 48좌가 있었는데, 지금까지 그 유적을 알 수 있는 곳이 28곳이다. 

마조는 788년 정월에 강서성 건창 석문산에 올라 숲속을 거닐다가 평탄한 골짜기를 보고 시자에게 말했다. “다음 달에 나의 육신이 이곳으로 돌아오게 되리라.” 이 말씀을 끝내고 산에서 돌아와 얼마 안 되어 병이 들었다. 원주가 문안 올리면서 물었다. “스님께선 요즘 어떻게 지내시는지요?”/ “일면불(日面佛) 월면불(月面佛)이니라.”

이것이 마조의 최후 법문이다. 일면불과 월면불의 수명은 각각 1800세, 1일 1야(夜)로 장수와 단명을 상징하는 화두이다. 마조는 세수 80세, 법납 60세로 건창 석문산 륵담사에서 입적했다. 마조 문하는 기록마다 차이가 있는데, 당시 행적이 불분명한 이들도 마조 제자로 기록했는데, 이 점은 당시 마조가 선종사에 미친 영향이 매우 컸음을 의미한다. 또한 마조의 장례식이 성대했던 것으로 기록하고, ‘정토교의 선도(562∼645)·보적[普寂, 651∼739, 대통신수의 제자]에 버금가는 장례식이었다’고 한다. 마조가 불교계뿐 아니라 당시 사회에 미친 영향이 어떠했는지를 짐작해볼 수 있다. 

선종사에서 마조를 조사선의 개조(開祖)라고 한다. 수백여명의 수행자들이 마조의 법맥에서 큰 물줄기가 형성되고 발전되었는데, 선종을 발전시키는 교두보 역할을 하였기 때문이다. 마조는 인도선을 탈피해 중국적인 토양이 깃든 선으로 탈바꿈시켰다. 마조는 선방에서 좌선하는 것만이 아니라 행주좌와·어묵동정 일상생활에서도 얼마든지 수행할 수 있다는 일상성의 종교로 전환시키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 바로 이 점은 ‘부처’라는 권위적인 이미지를 벗어나 인간 중심의 선으로 변화되었다고 본다. 뿐만 아니라 마조의 선기(禪機) 방편에서 공안이 비롯되었다고 본다. 할·방·불자 사용 등 활작략(活作略)을 선종에서 기연(機緣)이라고 하는데, 이 기연들이 공안으로 변화된다. 그런데 마조가 제자들을 가르치면서 깨달음에 이르도록 여러 가지 방편을 활용했는데, 이 방편[선문답:공안]의 시작을 마조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

정운 스님 동국대 강사 saribull@hanmail.net
 

[1676호 / 2023년 4월 1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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