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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산 눈(活眼)

기자명 승한 스님

모든 거짓 이기는 것은 결국 참됨

예나 지금이나 거짓말 다반사
거짓말은 사람들 해칠 수 있어
모든 종교가 정직할 것 강조
참 앞에선 거짓도 뿌리 드러내

거짓되게 살면서도 거짓을 못 버리고
참됨을 구하면서도 참됨을 못 얻네.
만약 능히 산 눈이 활짝 열리면
옛 동산의 봄에 꽃도 활짝 피리라.
住妄無捨妄(주망무사망)
求眞不着眞(구진불착진)
若能開活眼(약능개활안)
花發故園春(화발고원춘)
-함월해원(涵月海源, 1691~1770)

시(선시)는 보통, ‘선경후정(先景後情)’이다. 먼저, 자연 경관이나 사물을 묘사하고 뒷부분에 자기감정이나 정서를 그려(드러)낸다. 반대로, ‘선정후경(先情後景)’도 있다. 자신의 감정이나 정서를 먼저 드러낸 다음 (그것에 빗대) 자연 경관이나 사물을 읊는 방식이다. 둘 다, 전통적인 시(한시, 선시) 형상화 방법이다. 함월해원 선사는 이 선시에서 ‘선정후경’ 방식을 택했다. 먼저 자신의 속내를 드러낸 뒤 그에 빗대 자연 경관을 그렸다. ‘선경후정’에 비해 이 방식은 주제 의식이 더 강하다.

해원 선사 시절에도 ‘거짓말’은 다반사였던 모양이다. 그러고 보면, 거짓말[불망어(不妄語)]은 인간이 인간으로 생존하기 위한 본능(욕구)이 아니었을까. 불교를 비롯해 천주교, 기독교, 이슬람교, 힌두교 등 모든 종교가 ‘거짓말 하지 말라’를 기본 5계로 경계하고 있다. 우리나라 삼국시대에도 그랬지만, 현재도 일부 국가에서는, ‘거짓말’은 종교법에 의해 사형에 처하는 등 극형을 가하고 있다. 현대사회도 거짓말은 대통령 등 고위공직자들의 주요 탄핵사유가 된다. 그러나 과연, 흰 거짓말이든 검은 거짓말이든 거짓말을 하지 않고 사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솔직히, 필자도 2~3할 이상은 거짓말을 하며 산다. 흰 거짓말이든 검은 거짓말이든 하지 않으면 생존하기가 힘들다. 어떤 면에서는, 거짓말은 인간으로서 생존하기 위한 ‘필요 악’이다. 그러나 자신의 거짓말이 상대방을 음해하고 심지어 죽일 수도 있는 악의적인 거짓말일 경우는 무게가 다르다. ‘선녀와 사냥꾼’ 이야기처럼 흰 거짓말은 생명을 살릴 수도 있는 큰 방편이 되지만, 대부분의 검은 거짓말은 상대방의 목숨을 해치기 쉽다.

그럼, (생존을 위해) 거짓말을 하고 살아야 할까, 죽는 한이 있어도 절대로 거짓말을 하지 않고 살아야 할까. 해원 선사는 일단 ‘거짓말을 하지’(거짓되이) 않고 살라고 가르친다. 그리고 그것이 인간의 본성(거짓을 못 버리고)임을 일러주기도 한다. 반대로 아무리 참되게 살려고 해도(참됨을 구해도) 참됨을 쉽게 못 구하는(못 얻는) 것이 인간의 몽매라는 것도 일깨워준다. 더불어 개벽의 길도 알려주고 계신다. ‘산 눈’(활안, 혜안, 심안, 불안)이 활짝 열리면 옛 동산의 봄에 봄꽃이 활짝 피는 것처럼, 인간의 마음도 환희와 즐거움과 시원함으로 꽃처럼 ‘새로운 생명’(새로운 삶)을 ‘얻게 된다는 것’[화발(花發)]이다.

인류문명이 고도화되면 될수록 거짓말도 고도로 진화된다. 보이스 피싱 등 더욱 치밀하게 진화되고 고도화된 거짓 없이는 발달된 문명 속에서 살아남을 재간(방편)이 없는 것이다. 더 지능적이고 더 현실 같은 거짓말을 하지 않고선 경쟁에서 살아남을 재간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거짓을 이기는 것은 결국 참됨이다. 지능과 현재성으로 아무리 잘 꾸며낸 거짓일지라도 참됨 앞에서는 반드시 그 뿌리를 드러내다. 인류 5천년의 진실이다. 이 글을 쓰면서 필자도 다짐해본다. 흰색이든 흑색이든, 절대 거짓말을 하고 살지 말자고. 그러나 (솔직히) 자신은 없다. 때 묻지 않은 봄날의 꽃으로 피어나 때 묻지 않은 꽃으로 살다가 때 묻지 않은 꽃으로 질 자신이 없다. 희망은 부처님처럼 살기 위해 더 열심히 노력하고, 더 가열차게 수행 정진하는 수밖에 없다. 팔정도와 육바라밀과 자비희사(慈悲喜捨)의 삶을 살 수밖에 없다. ‘부처님오신날’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함월해원 선사는 조선 후기 이타제일(利他第一)의 선승으로 알려졌다. 굶주린 사람이나 헐벗은 사람을 보면 자신의 처지가 아무리 곤궁해도 자신이 입고 있는 옷까지 벗어 공양하고, 자기는 못 먹어도 음식을 나눠줬다고 한다. 이 시대 이타제일은 누굴까? 누구였을까? 잠시, 생각해본다, 필자가 먹는 음식과 입고 있는 옷을 바라보면서,

승한 스님 빠리사선원장 omubuddha@hanmail.net

[1676호 / 2023년 4월 1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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