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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바라밀선원 주지 인해 스님

스스로 꼭 하겠다는 의지·서원·원력 갖춰야 가피도 있습니다

관세음보살이 지니고 있는 자심과 비심은 누구나 갖춘 마음
모든 일에 진심이면 불보살님 가피력 만나 자타불이력 발휘
간절히 기도하면 반드시 통하고 이루어지니 함께 기도하길

인해 스님은 “원을 세워 간절히 임할 때 가피도 있는 것”이라며 간절한 기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인해 스님은 “원을 세워 간절히 임할 때 가피도 있는 것”이라며 간절한 기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바라밀선원이 벌써 개원 10주년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저는 이곳 경남 김해라는 도시와 아무런 연고가 없었습니다. 인연 있는 사람도 없이, 특별히 정해둔 장소도 없이 이곳에 왔습니다. 포교당을 열고서야 부산이나 울산에서 포교당을 시작하면 조금 더 나았을 수 있었다는 주위의 말씀이 절실하게 와 닿았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인연 없는 김해에 온 덕분에 온몸 가득 배우고 가슴 깊이 체득하며 한 발, 한 발 천천히 포교의 길을 밟아올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법회 때마다 마지막에 항상 이 말씀을 꼭 드립니다. “간절히 기도합시다. 간절하면 통합니다. 간절하면 이루어집니다.” 이 문장은 기도하다가 저절로 나온 것입니다. 아무 인연도 없는 이곳에서 포교당을 시작할 때 얼마나 간절했겠습니까만, 처음에는 늘 눈물이 났습니다. 개원하는 날에도 시나리오에 없던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왜 눈물이 났을까. 곰곰이 돌이켜 보았습니다. 

저는 감히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우리는 관세음보살님을 ‘대자대비(大慈大悲)하신 분’이라고 말합니다. 즉 관세음보살님은 자심(慈心)과 비심(悲心)을 지니고 계십니다. 자심은 기쁠 때 같이 기뻐하는, 기뻐서 흐르는 눈물이라고 합니다. 비심은 측은지심(惻隱之心), 어려운 사람을 어여삐 여기는 마음에서 나오는 눈물이라고 합니다. 저는 정말 간절하게 부처님의 법을 펼치고 싶다는 마음이 일어났습니다. 그 간절함이 자심과 비심의 눈물로 저도 모르게 표현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무엇보다 이 마음은 여러분 모두에게 있는 마음이기도 합니다.

저는 포교당을 개원하기 전만 하더라도 포교를 하겠다는 생각을 깊게 해보진 않았습니다. 동국대 박사 과정을 마무리할 때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이 납니다. 2012년 12월이었습니다. 해인사에서 강의하고, 또 동화사에서 강의하다가 경주 동국대 근처에 있는 한 작은 공간으로 거처를 옮겨 지내던 시기였습니다. 점심을 먹고 황성공원을 걷다가 문득 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이렇게 편하게 살아도 될까.’ 공부하고 강의하며 지내는 시간이 무척 편했습니다. 그런데 스스로 너무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민이 깊어졌습니다. 그 삶이 진정으로 출가한 사람의 본래 책무는 아니라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래, 차라리 죽더라도 바쁘게 사는 것이 낫다.’ 이런 확신이 들었을 때 우연히 김해를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율하’라고 불리는 곳이었습니다. 율하는 신도시라서 이제 막 도심이 형성되고 있었습니다. 길을 걸으며 주위를 아무리 둘러봐도 절은 눈에 띄지 않고, 십자가만 곳곳에 보였습니다. 도심은 십자가를 세운 타 종교 시설에 포위되어 있다시피 했습니다. 

그때 훅 올라왔습니다. 저는 출가 때부터 지금까지 같은 원을 늘 해왔습니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하는 원이 있었습니다. “대법사가 되어 중생들을 제도하겠습니다.” 그때 훅 올라온 것은 바로 그 발원이었습니다. ‘이 길로 가야겠다.’ 그래서 도심 속에 머물며 포교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포교당 운영을 시작한 것입니다. 어쩌다 보니 고깃집 2층에서 시작했습니다. 힘든 점이 말할 수 없을 만큼 많았고 표현도 안 될 정도였습니다. 그래도 항상 기도했습니다. 기도를 열심히 하니까 상가 1층의 업종이 바뀌고 또 바뀌었습니다. 무엇보다 늘 발원했던 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아무도 아는 분이 없는 곳에서는 어떻게 포교당을 운영해야 사람들이 찾아올 수 있을까. 1000일 기도를 성취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100일 동안은 아무도 안 오겠지. 혼자서 100일을 한번 버텨보자.’ 이런 심정으로 첫 1000일 기도 입재 일을 맞이했습니다. 그날 새벽 문을 열고 법당으로 나갔는데 이것이 무슨 일입니까. 두 사람이 앉아 있었습니다. 그중에서 한 사람은 바로 지금 여기에도 앉아 계십니다. 

사실 바라밀선원은 개원 후 5~6년 동안 공양주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새벽기도에 오신 분들은 마치 약속이라고 한 것처럼 소리 없이 아침 공양을 준비해주시고 가셨습니다. 1000일 기도는 더 간절해졌습니다. 그렇게 500일쯤 되었을 때, 속된 말로 저의 ‘꼬라지’가 보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내가 나를 봅니다.’ 기도를 간절하게 해보신 분은 이 말에 공감하실 겁니다. 기도를 열심히 하면 먼저 자기가 자신을 보게 됩니다. 

그것을 불교에서는 업장 소멸이라고 합니다. 만 2년이 될 때까지 저는 정말 많이 아팠습니다. 하루 걸러서 링거 주사를 맞았습니다. 그러던 중 가피를 받으면서 그 이후 아프지 않았습니다. 쉽게 말해 몸 가피를 받은 것이었습니다. 

가야불교를 다시 세우자는 원력으로 스님들과 공부를 했을 때도 그랬습니다. 우리가 가야불교를 모르고 살아온 부끄러움을 참회하자는 뜻으로 3000배 참회 정진 법회를 열기로 했습니다. 스님들과 함께 신도님 300명 이상이 모이는 ‘가야불교 중흥을 위한 3000배 참회 대법회’였습니다. 그런데 법회를 봉행하기로 한 바로 앞날 급성 디스크로 인해 꼼짝할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습니다. 응급처치는 했어도 ‘3배만 해도 다행이다’ 하며 3000배 대신 3배라도 하기 위해 법회 장소로 갔습니다. 정말 거짓말처럼 그날 3000배를 완전히 다 마쳤습니다.

그 3000배 참회 대법회가 끝나고 가야불교연구소를 개설해 제가 초대 소장을 맡았고 그 다음에 사단법인 가야불교진흥원(현 가야문화진흥원)을 창립해서 역시 초대 이사장을 지냈습니다. 통도사 승가대학장을 맡은 것도 모두 기도의 가피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자타불이력(自他不二力)’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스스로 꼭 해야겠다는 의지력, 서원, 원력이 늘 있어야 한다”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뒷받침해 주시는 불보살님의 가피력, 위신력이 딱 맞아떨어졌을 때 자타불이력이 발휘됩니다. 두 가지가 ‘탁’ 하고 맞아 지면 불가사의한 힘들이 일어납니다. 이것은 입이 닳도록 말해봐야 소용이 없습니다. 자신이 직접 간절하게 기도를 했을 때 알 수 있습니다. 

올해는 바라밀선원 불교대학 제21기가 진행됩니다. 포교당의 새 위치와 신축 건물 불사를 비롯해 모든 것이 딱 10년을 예상하고 움직였던 대로 다 이루어졌습니다. 10년이라는 세월을 기념하며 여러분께 어떤 말을 해야 하나 잠시 생각해 보니 오히려 고마웠던 분들이 떠올랐습니다. 한 분 한 분께 전화를 다 드렸습니다. 모든 분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저는 올해 출가한 지 30년이 됩니다. 오늘 새벽에는 ‘이제 큰 산 하나를 넘었구나.’ 이 생각이 와 닿았습니다. 출가 후 10년 동안에는 스님의 기초를 닦는다며 외국도 다니고 강원도 다녔습니다. 그다음 10년은 책만 봤습니다. 그 후 10년은 책도 보았고 불사를 일으키려고 나름대로 열정을 다했습니다. 그래서 큰 산 하나를 넘은 심정입니다. 더 큰 산이 올 수 있겠지만 한 번 넘어봤기 때문에 이제는 큰 부담 없이 그 산을 마주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올해부터 바라밀선원은 재정 공개를 시작할 것입니다. 포교당의 이상적인 모습은 사중의 모든 활동을 신도님들이 직접 다 하는 것입니다. 스님들은 공부하고 법문을 열심히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외의 도량 운영은 신도님들의 몫으로 돌려드리고 싶습니다. 그것을 꼭 이루려고 마음먹고 있습니다. 

이전에는 포교라는 것을 한 번도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가장 고민이 된 한 가지가 있었습니다. 신도님들을 어떻게 조직하고 그 조직이 원활하게 움직이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였습니다. 잘 모르니 초창기에는 주먹구구식이라도 저 혼자 청소부터 모든 일을 다 하려고 했습니다. 한마디로 신도님들께 자상하지 못했습니다. 신도님들과 항상 거리를 좀 두어야 하겠다는 원칙도 있었습니다만 거의 20년간 계속 산에서 스님들을 대상으로만 강의를 해왔던 터라 큰 절에서 익힌 습이 잘 고쳐지지 않았습니다. 좌복은 반듯해야 했고, 법당에는 머리카락 한 올도 허용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 삶이 몸에 배어 있다 보니까 제가 점점 딱딱한 사람으로 인식이 되어버렸습니다. 예전 비하면 지금은 무척 인자한 편입니다. 처음에는 심각했습니다. 

그때 습이 남아서 지금도 신도님들은 저를 어려워합니다.  흐트러진 것이 있으면 제가 보기 전에 달려가서 치우기 바쁩니다. 부처님 법은 항상 상대방을 배려하고 겸손하게 대하는 것인데 그런 신도님들의 모습을 뵐 때마다 그동안 제가 겸손하지 못했다는 부끄러움이 밀려옵니다. 겸손함이 덜 갖춰졌지만 앞으로 그런 부분들은 조금씩 고치겠다고 다짐합니다. 이제부터는 여러분들과 더 호응하고 함께 어울리는 인자하고 자상한 스님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끝으로 두 손을 합장하시고 함께해주시기 바랍니다. “간절히 기도합시다. 간절하면 통합니다. 간절하면 이루어집니다. 나무관세음보살.”

정리=주영미 기자 ez001@beopbo.com

이 법문은 4월1일 영축총림 통도사 김해포교당 바라밀선원에서 봉행된 ‘바라밀선원 개원 10주년 기념 승보공양 법회’에서 주지 인해 스님이 설한 법문을 요약한 내용입니다.

[1676호 / 2023년 4월 1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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