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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프라미스 이사장 묘장 스님

“고통과 절망의 현장에 자비를 내려 희망을 싹틔우겠습니다!” 

죽음, 자연스레 넘어선
고승 행적에 출가 결심

행자 때도 마냥 좋아
미소‧웃음 떠나지 않아

녹원 스님 시봉 자청해
극진한 ‘불심‧신심’ 배워

부처님 최초의 약속은
“중생 편안케 하겠다!”

탄생게 속 ‘나’는  ‘우리’
인종 차별없이 도와야

전쟁 난민 눈에서 본
‘절망적 공포’ 큰 충격

인류의 가장 우매한 선택
참혹한 수라장은 ‘전쟁터’

더프라미스 이사장 묘장 스님은 “재난 현장에 늘 서 있는 더프라미스, ‘작지만 내실 있게 잘한다’라는 평을 듣는 더프라미스이고자 한다”고 전했다.
더프라미스 이사장 묘장 스님은 “재난 현장에 늘 서 있는 더프라미스, ‘작지만 내실 있게 잘한다’라는 평을 듣는 더프라미스이고자 한다”고 전했다.

 

불교계 대표 국제구호협력기구 더프라미스(The Promise). 한국에서는 96번째로 유엔(UN) 경제사회이사회(ECOSOC)로부터 유엔과 협력하고 유엔 사업에 공식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특별 협의적 지위(Special Consultative Status)’ 자격을 부여받았다. 이 지위를 받았다는 건 비정부기구(NGO)로서의 공신력이 그만큼 높아졌음을 의미한다. ‘재난 있는 곳에 더프라미스가 있다’는 말이 회자 될 정도로 더프라미스는 해외 봉사와 긴급구호 활동에 진력해 왔다. 

2008년 미국 NGO 마칙(MACHIK)과 협력해 중국 티베트자치구에 쥔빠중학교를 세운 것을 시작으로 교육환경이 열악한 인도, 네팔, 말라위, 마셜군도 등에 자비의 손길을 보내 학교를 짓고 식수 개발을 지원했다. 인도네시아로부터 독립한 동티모르에서는 낙후된 지역 주민들의 삶을 자발적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재난예방‧소득증대 등에 초점을 맞춘 ‘풀뿌리 마을 만들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2009년에는 미얀마 양곤에 더프라미스 지부를 설립해 지금까지 학교 9곳에 건물 13채를 지었다. 이러한 성과를 인정받아 한국국제협력단(KOICA)으로부터 민간단체 지원사업 단체로 선정됐다.(2011) 또한 미얀마 대홍수를 비롯해 네팔, 아이티, 튀르키예‧시리아 등 대지진이 발생할 때마다 긴급구호기금 모금을 전개함과 동시에 구호 활동에 나섰다. 

더프라미스를 설립(2008)을 이끈 장본인은 묘장(妙藏) 스님이다. 더프라미스 상임이사를 거쳐 지난 2월 이사장에 선출됐다.

사춘기 시절 ‘중 1‧2’ 병을 지독하게 앓았다. 학교 졸업하고 결혼해서 자식 낳고 살다 죽음을 맞는, 태어남과 동시에 이미 정해진 듯한 이 패턴을 그대로 답습하고 싶지 않았더랬다. 이 ‘무료한 인생 순환’을 지성인들은 어떻게 바라보고, 어떤 가치를 부여하며 극복했는지를 알고 싶어 위인전 등 인물을 다룬 책들을 골라 독파했다. 그들의 삶이 공통으로 가리키는 건 죽음 앞에서의 인간은 나약한 존재라는 사실이었다.

‘그 누구도 죽음의 경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무너졌다!’

관심은 ‘삶’에서 ‘죽음’으로 급격히 옮겨졌다.

그즈음, 서고에 꽂혀 있었으나 눈길조차 주지 않았던, 작품 ‘만다라’로 유명한 김성동 작가의 수필집 ‘부치지 않은 편지’를 무심히 뽑았다. 출가를 경험했던 작가는 고승들의 열반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진솔하게 풀어 놓았다. 죽음을 두려워하기는커녕 열방송까지 남겨놓는 스님들의 삶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죽음의 경계를 이처럼 자연스레 넘어설 수 있단 말인가!’ 

고1 때 출가를 결심하고 조계사에 전화를 걸어 문의하니 “학교는 졸업하고 오라”는 답을 들었다. 고교 시절 내내 불서를 읽으며 신심을 다졌고, 졸업 후 직지사 산문을 열었다. 은사 인연은 당시 직지사 부주지 웅산(현 조계종 원로의원) 스님과 맺어졌다. 은사 스님은 ‘마음속에 내재 된 불성을 잘 발현시키라’는 의미를 담아 ‘묘장(妙藏)’이라는 법명을 내렸다. 

봄기운이 완연히 올라오는 날 서울 회기동 연화사에서 묘장 스님을 만났다. 

처음 삭발할 때는 속으로라도 눈물을 흘린다고 한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입산해 삭발하는 청년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절에 들어섰을 때 말할 수 없이 편안했습니다. 삭발해 주시는 스님이 ‘정말 머리를 깎아도 되겠느냐?’ 묻기에 ‘빨리 깎아 주세요’ 했습니다. 행자 시절에도 저는 좋아서 매일 웃고 다녔습니다.”

부모님에게 말 한마디 않고 서울을 떠나 김천으로 걸음 하여 입산했다. 가족관계를 증명하는 기본 서류를 제출하라는 직지사의 요청이 있어 어쩔 수 없이 누나에게 출가 사실을 알리고 서류를 부탁했다. 

“아주 짧게 전화했던 기억이 납니다. ‘난 여기 참 좋다. 절대 돌아가지 않는다.’ 절로 찾아오지 말고 서류만 보내달라고 했습니다.”

사미계를 받기 직전 속가의 부모님이 찾아왔다. 만면에 가득한 순진무구의 미소를 보았으니 ‘환속 의향’은 아예 물을 필요도 없었을 터다.

서울 연화사 전경. 
서울 연화사 전경. 

 

서울 연화사와의 인연이 참 깊다. 일정 기간 떠나 있었으나 지난해 12월 주지로 다시 임명됐다. 주지 소임 8년에 직지사 조실 녹원(綠園‧1928∼2017. 전 동국대 이사장) 스님 시봉 5년이 더해져 13년을 머물렀던 절이다. 

‘스님의 위의(威儀)’를 중히 여겼던 녹원 스님은 제자들에게 유독 엄격했다. 그 사실을 모를 리 없는 손상좌 묘장 스님은 시봉을 자청했다.

“사중의 스님들이 왜 ‘큰스님’이라 하는지 궁금했습니다.”

단순 호기심? 아니다. 분명 ‘큰스님’이라 칭하는 이유가 있고, 그 이유가 출가 사문의 길을 올곧게 걷게 하는 지침이 되어 줄 것임을 직감했을 터다. 

“연화사를 떠나 직지사에 닿으면 대웅전을 비롯한 모든 전각을 꼭 찾으시고는 온 정성을 다해 불보살님께 절을 올리셨습니다. 부처님 가르침의 소중함과 전법의 간절함을 담은 절이었을 겁니다. 그 지극한 절을 언제 어느 사찰에서든 평생 올리셨습니다. 빵을 좋아하지 않으셨으나 신도님이 보내신 거라 전하면 조금이라도 떼어 드셨습니다. 신도님이 키운 콩나물이라 하면 고추장 넣어 비벼 드셨습니다. 불보살님과 신도님을 향한 마음이 참으로 극진하셨습니다.”

시봉하는 내내 “한 번도 혼난 적이 없다”라는 묘장 스님은 ‘자비심 충만한 큰스님’으로 기억하고 있다. 상좌 스님들에게 불호령을 내린 것도 가람 수호와 전법에 더욱 노력하라는 당부였을 뿐 노기를 담아 혼을 낸 적은 없었다고 회고했다. 

오래전부터 한 작가와 함께 사중 스님들을 대상으로 녹원 스님과 관련한 ‘특별 인터뷰’를 진행했다. 

“큰스님을 향한 사중 스님들의 다양한 시선과 생생한 증언, 관련 일화 등을 통해 큰스님의 진면목을 좀 더 깊이 들여다볼 수 있다고 생각해 추진했습니다. 원고 정리도 거의 다 되어 편집 과정에 있습니다. 올가을 출간하려 합니다.”

2006년 경제정의실천불교시민연합에서 감사를 맡고 있을 때 네팔의 국제구호 현장을 방문했다. 처음으로 경험해 보는 구호 현장이었음에도 경희사이버대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한 묘장 스님의 머릿속에는 그들을 도울 여러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 아이디어는 귀국 후 더 풍성해지고 깊어졌으며 마침내 ‘고난에 처한 모든 사람을 도와야 한다’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네팔에 한정할 일이 아님을 절감했고, 누구에게 제안하기보다는 자신이 직접 해야 하는 불사(佛事)임을 깨달았던 것이리라. 생각은 곧 신념으로 굳었다. 2007년 창립총회를 열고 2008년 ‘더프라미스’를 설립했다.

“탄생게를 통해 알고 있듯, 부처님께서는 ‘온 세상이 고통받고 있으니 내 마땅히 이를 편안케 하리라(三界皆苦 我當安之)’ 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 중생들에게 처음으로 하신 약속입니다. 중생을 편안케 하겠다는 아(我)의 주체는 나 자신 즉 우리여야 합니다. 부처님께서 하신 약속을 지켜가자고 다짐하며 ‘더프라미스’라고 이름했습니다.”

네팔 대지진 당시 현장을 찾은 묘장 스님.
네팔 대지진 당시 현장을 찾은 묘장 스님.

 

아이티 대지진 의료봉사단장, 동일본 대지진 긴급구호단장, 태국 대홍수 긴급구호단장, 네팔 대지진 합동지원단 구호단장, 네팔 홍수 긴급구호단장, 긴급구호 우크라이나 전쟁난민 지원단장 등을 맡아 현지에서 활동했다. 그 과정에서 ‘죽음의 위기’도 겪곤 했다.

“규모 5.0 이상의 지진만도 10번쯤 경험했는데, 2015년 네팔에서는 7.4의 여진을 겪었습니다. 태산은 바람 앞 촛불처럼 흔들렸습니다. 땅은 무엇이든 삼켜버릴 듯한 기세로 갈라졌습니다. ‘여기서 죽는구나!’ 싶어 저도 모르게 ‘마음의 정리’를 했습니다. 새벽 3시에 5.6의 여진이 또 덮쳤습니다. 암흑 속에서 느껴지는 공포는 두 배 이상으로 컸습니다. 그때는 정말 ‘살고 싶다’는 생각만 가득했습니다.”

그 이후에도 우크라이나 전쟁 난민과 튀르키예‧시리아 난민을 품었다. 
 

튀르키예·시리아 구호품을 전하는 묘장 스님. 
튀르키예·시리아 구호품을 전하는 묘장 스님. 

 

“전생의 부처님께서는 비둘기 한 마리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허벅지 살을 베어내는가 하면, 새끼 밴 어미 사슴을 대신해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내놓으셨습니다. 그러한 보살행을 통해 ‘싯다르타 보살’은 부처님이 되셨습니다. 저 또한 그 길을 걸어야 한다고 늘 다짐하곤 합니다. ‘위험이 덜한 곳’이 아닌 ‘고통이 더 심한 곳’에 서 있으려 합니다.”

재해‧재난 현장 경험이 많은 묘장 스님도 우크라이나 전쟁 난민을 보며 받은 충격은 실로 컸다고 한다. 전쟁 양상이 격화되던 2022년 여름, 우크라이나 인접 국가인 폴란드에서 기차를 타고 독일로 넘어온 난민을 베를린역에서 맞이했었다. 식료‧의약품과 쉼터를 제공하기 위함이었다. 

“모두 넋이 나가 있었습니다. 엄청난 공포에 휩싸여 있었습니다. 지진‧홍수로 발생한 난민의 눈동자와는 달랐습니다. ‘절망적 공포’에 휩싸였다고 하면 맞을까요? 재해‧재난은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이라도 있으니 내일을 기약할 수 있습니다. 반면 전쟁은 내일은커녕 오늘 아니 찰나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지금, 죽을 수 있다’라는 극도의 공포와 절망의 순간만 이어질 뿐입니다. 인류의 가장 우매한 선택은 전쟁이고, 가장 참혹한 아비규환의 수라장은 전쟁터입니다.” 

2008년 설립 초기만 해도 1년 예산은 3000만 원이었지만 2023년인 올해 예산은 약 20억 원이다. 이사장으로서의 포부도 남다를 법하다.

“재난재해는 끊이지 않습니다. ‘기후 위기’로 인한 재앙 또한 언제 어디서든 발생할 것입니다. 그러기에 ‘만족’은 없습니다. 더프라미스는 고통과 절망의 현장에 자비를 내려 희망을 싹틔우겠습니다! ‘작지만 내실 있게 잘한다’라는 평을 듣는 더프라미스이고자 합니다. 불자님들의 관심과 지원 늘 기대하고 있습니다!”

출가 전 품은 화두 ‘생사’는 풀렸을까? 

“부처님과 선지식이 일관되게 가르쳐 주셨듯이 생사에서 자유스러워지려면 해탈해야 합니다. 승찬 스님은 ‘신심명’을 통해 ‘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으니, 오직 가려내고 골라내는 것을 조심하라. 미워하고 이끌리는 마음을 여읜다면 막힘없이 트여 밝고 환하리라(至道無難 有嫌揀擇 但莫憎愛 洞然明白)’라고 하셨습니다. 싫어하고(憎) 좋아함(愛)은 불만족(瞋)이요 탐욕(貪)입니다. 일상에서 ‘이건 싫고, 저건 좋아’라는 생각 잠시만 놓아도 자유롭습니다. ‘좋다, 나쁘다.’ ‘아름답다, 추하다’ 같은 분별심과 집착에 매이지 않는 중도에 머무르면 막힘없는 삶, 즉 해탈의 삶을 영위할 것이라고 승찬 스님은 증명하고 계십니다.”

저서 ‘도표로 읽는 부처님 생애’
저서 ‘도표로 읽는 부처님 생애’

불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청하니 ‘신심’을 강조했다.

“무명을 벗으면 ‘부처님 광명’이 나온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것도 철저하게 믿어야 합니다. 광명은 자비입니다. 따라서 불교적 사유, 수행 정진의 끝에서 우리가 발현할 수 있는 건 부처님의 성품이자 작용인 자비입니다.”

묘장 스님의 안면에 환한 미소가 번져갔다. 처음 입산하며 지었을, 절에서 살고 있다는 자체가 마냥 좋아 생겨난, 속가의 부모님이 보았을 그 미소다. 그리고 출가해 한 번도 후회해 본 적 없는 스님의 미소다. 부처님께서 중생에게 처음 하신 ‘그 약속’을 묘장 스님은 지켜갈 게 확실하다. 

채문기 상임논설위원 penshoot@beopbo.com

묘장 스님은
웅산법등 스님을 출가해 1991년 사미계를 수지했다. 한국 종교계 사회복지협의회 회장, 조계종 사회복지재단 상임이사. 학교법인능인학원 감사, 도리사 주지를 역임했다. 아이티 대지진 의료봉사단장, 동일본 대지진 긴급구호단장, 태국 대홍수 긴급구호단장, 네팔 대지진 합동지원단 긴급구호단장으로 활동했다. 현재 더프라미스 이사장이자 서울 연화사 주지이며, 제18대 중앙종회의원이다. 저서로는 ‘도표로 읽는 부처님 생애’가 있다.

[1676호 / 2023년 4월 1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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