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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불교가 2000년인 이유

  • 법보시론
  • 입력 2023.04.17 14:06
  • 수정 2023.04.17 14:30
  • 호수 16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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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 2567년 부처님 오신 날을 앞두고 부처님 가르침이 언제 이 땅에 전해졌는지 다시 생각해 본다. 전진의 승려 순도가 372년 고구려에 불교를 전하고, 인도 승려 마라난타가 384년 백제에 불교를 알렸다. 이어 고구려 승려 묵호자가 신라 눌지왕(417~458) 당시 구미 선산 지역 모례의 집에서 전법했다는 ‘삼국사기’에 근거하여, 우리는 “한국불교 1700년”이라는 표현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지만 이는 ‘삼국사기’가 가야불교에 관해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다는 점을 간과한 데서 발생한 오류가 아닐까 생각한다.

금관가야 수로왕은 기원후 42년 왕이 된 후 48년에 인도 아유타국에서 파사석탑을 배에 싣고 온 허황옥을 배필로 맞아 열 명의 아들을 낳았다. 맏이는 2대 거등왕이 되고, 둘째와 셋째는 허황옥의 성을 따 김해 허씨의 시조가 되고, 넷째부터 열째까지 7왕자는 가야산에서 수행하던 허황옥의 오라버니 장유화상의 안내로 지리산 칠불암으로 출가하여 성도하였으니, 우리 민족은 허황옥이 배를 타고 가야에 도착한 때를 최초의 불교가 전래되었다고 보아야 적합하지 않을까?

일부에서는 “허황옥이 인도에서 가야로 왔다”는 이야기는 설화일 뿐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허황옥이 불교를 전래한 역사는 부정할 수 없는 증거들로 차고 넘친다.

①‘가야’라는 나라이름부터 부처님께서 성도하신 인도의 ‘부다가야’에서 유래한 점, ②허황옥이 배에 싣고 온 파사석탑은 인도에서만 발견되는 붉은 색 파사석으로 조성되었고, 이 파사석은 인도에서 악을 정화하는 데에 사용되었으며, 허황옥이 가야에 도달할 때까지 멀고 험한 항해 중 풍랑 등의 위험을 방지하기 위하여 파사석탑을 싣고 왔는데, 지금까지도 파사석탑이 현존하는 점 ③허황옥의 오라버니 장유화상이 수행한 가야산 해인사, 일곱 왕자가 성도한 지리산 칠불암이 지금도 현존하는 점 ④불교계에서는 스님을 ‘화상’으로 부르기도 한다는 점에서 ‘장유화상’이라는 호칭만으로도 불교 수행자임을 알 수 있고, 장유화상이 출가한 ‘장유암’과 금관가야 8대 질지왕(451~492) 재위 중 세워진 ‘장유화상사리탑’이 현존하며, 장유화상의 이름을 딴 김해시 ‘장유동’이 현존하는 점 ⑤수로왕릉 앞에 새겨진 물고기 2마리 그림 쌍어문(雙漁紋)은 현재도 존재하는 인도의 풍습인 점 ⑥ 인도 남부 지역 타밀어와 우리말 중에 ‘나’ ‘너(니)’ ‘아빠’ ‘엄마’ ‘언니(안니)’ ‘다리’ ‘머리(모리)’ ‘엉덩이(궁디)’ ‘‘도리도리’ ‘곤지곤지’ 등 1,800여 개의 단어가 같고, 존칭어, 어순까지 같은 이유는 허황후 일행이 인도 타밀어를 가야에 도착한 뒤에도 계속 사용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는 점 ⑦허왕후의 묘비에 ‘가락국 수로왕비 보주태후 허씨릉’이라고 새겨져 있는데, 보주(普州)는 중국 사천성 안악현의 옛 지명이고, 지금도 그 지역에 허(許)씨 성을 가진 인구가 많이 거주하고 있는 점으로 미루어 불교국가 쿠샨왕조(45~320)가 이슬람의 침공을 받자, 아유타국왕 일행이 중국 보주로 피하였다가 허황옥이 48년 가야에 건너 온 것으로 보이는 점 ⑧가야 분묘에서 발굴된 인골(人骨)의 DNA가 인도인과 일치하는 점 등이 그 증거이다.

당시 인도에 ‘아유타’라는 국가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허왕후 말을 믿을 수 없다고 단정한다면 England(잉글랜드)에 ‘영국’이 없고, France(프랑스)에 ‘불란서’가 없으니 영국·미국·불란서·독일도 모두 거짓인 것이 된다. 

더구나 임진왜란 당시 일본의 조선 침략을 도왔던 세스페데스 신부가 천주교를 조선에 선교한 최초라고 주장하자, 창원시는 일본군을 도운 세스페데스를 피해자인 우리 스스로 기념하는 공원을 공적 자금을 투입해 조성하는 현실 앞에서, 우리 불교는 너무나도 명백한 증거로 인정되는 허왕후의 불교전파라는 역사적 진실을 언제까지 외면할 텐가. 

지금부터라도 한국불교 1700년이라는 막연한 주장일랑 거두고, 허황후가 가야에 도착한 48년을 불교전래 원년으로 삼아 ‘한국불교 2000년’을 당당하게 정립해야 한다.

민학기 변호사 hackymin@hanmail.net

[1677호 / 2023년 4월 1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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