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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물지 않고 그저 흘러가는 시냇물처럼 잔잔한 사랑을 전합니다”

  • 무진등
  • 입력 2023.04.17 17:18
  • 수정 2023.12.22 18:29
  • 호수 1677
  • 댓글 0

김순식(다온) 청주 정심원장

식당·찜질방 운영해 마련한 수익금 고아원·양로원에 전액 기부
물질적 보시 집중하다 상처받은 마음 보듬어주려 정심원 개원
5월14일 진천에 수행처 문 열어…“소외이웃 소통·안식처 될 것”

김다온 원장(66)은 ‘정심원 봉사단’을 결성해 매주 독거어르신에게 밑반찬을 직접 만들어 배달하고 매달 한 번씩 무료급식소를 열기도 한다. 저소득 청소년들을 위한 장학사업도 30년 넘게 펼쳐오는 등 무주상보시 실천에 앞장서고 있다.
김다온 원장(66)은 ‘정심원 봉사단’을 결성해 매주 독거어르신에게 밑반찬을 직접 만들어 배달하고 매달 한 번씩 무료급식소를 열기도 한다. 저소득 청소년들을 위한 장학사업도 30년 넘게 펼쳐오는 등 무주상보시 실천에 앞장서고 있다.

“우리 이혼합시다.”

남편은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뒤늦게나마 출가자의 마음으로 살고 싶다는 아내의 결심이 꺾이지 않을 것임을 잘 알았다. 그동안 갈 곳을 잃은 고아들과 혼자서 어렵게 살아가는 어르신들을 보살피는 데 매진해온 아내. 지역 효부상을 여러 차례 받을 정도로 가정에도 지극정성이었던 아내가 이젠 부처님 가르침을 따라 마음공부도 병행하겠단다. 서류상으로 남이 되지만 서로의 앞길을 응원하는 도반이 되기로 했다. 

김순식(다온) 청주 정심원장(66)은 “매일같이 고아원을 찾아 아이들과 함께하고, 주말에는 새벽같이 일어나 독거어르신들을 위한 반찬을 만들었다”며 “물질적으로 편안케 해주려는 봉사와 더불어 심리적으로도 안정을 찾아주고자 부처님 법 공부하는 데 출가수행자의 마음으로 오롯이 정성을 다해나가려고 했다”고 회고했다.  

1990년 김 원장은 그렇게 남편과 분가해 봉사활동의 거점이 될 도량을 설립했다. 수많은 고아들과 저소득 청소년들에 희망을 가져다 준 ‘정심원’의 역사가 시작된 순간이다. 

자비나눔 실천도량 정심원은 1층에서 식당을 운영하며 마련한 수익금을 지역 고아원과 양로원에 전액 기부하고 있다. 김 원장을 중심으로 ‘정심원 봉사단’을 결성해 매주 독거어르신에게 밑반찬을 직접 만들어 배달하고 매달 한 번씩 무료급식소를 열기도 한다. 저소득 청소년들을 위한 장학사업도 30년 넘게 펼쳐오는 등 무주상보시 실천에 앞장서고 있다. 식당 2층에는 찜질방과 찻집을 마련해 어르신들에게 무료로 제공하고, 3층 법당에선 마음공부도 할 수 있어 정심원은 청주 어르신들에게 ‘힐링 스팟’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김 원장의 봉사정신은 부모님으로부터 비롯됐다. 1960년대 보은군 내곡면의 유지였던 그의 부모님은 전쟁과 가뭄을 연달아 겪은 이웃들을 돕는 일을 망설이지 않았다. 곳간을 풀어 쌀을 나눠주고 직접 음식을 만들어 전해주는 부모님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특히 아버지가 남을 돕는 데 적극적이었어요. 아버지는 가끔 저한테도 ‘베푸는 데 인색하지 말아야 한다’고 당부했어요. ‘부처님의 자비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이라면서요. 부모님의 선행에 고마워하며 밝게 웃는 사람들을 보니 무언가 저도 뿌듯했지요. 도와주는 행위가 참 기분 좋은 일임을 알게 되는 건 어렵지 않았습니다.”

부모님을 본받아 이웃에게 친절을 베풀며 성장했다. 예쁜데다가 착하기까지 하니 친구도 많고 선망의 대상이기도 했다. 주변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라 어느덧 시집 갈 나이가 됐다. 부모님은 도시로 나가고 싶어 하는 딸을 위해 중매를 섰고, 마음 따뜻한 시부모님과 남편을 만나 청주 시내에서 가정을 이루었다. 남편은 성실했고 시부모님은 친부모님과 다를 바 없이 잘해줬다. 곧 아들과 딸을 낳고 행복한 생활을 이어갔다. 

시어머니는 가족에 지극정성이었다. 시아버지가 나이 들어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할 때도 극진히 간호했다. 집안일을 도맡아 함에도 싫은 소리 한 번 없이 가족을 챙겼다. 실로 존경스러웠다. 자애롭게 살고 싶은 마음에 시어머니가 어딜 가든 따라다니며 보고 배웠다. 그렇게 향 내음이 옷에 스미듯 언제부턴가 스스로 남을 돕기 시작했다. 직접 봉사를 나서기까진 오래 걸리지 않았다.

“고아원과 양로원 등을 많이 찾아갔어요. 특히 부모를 잃은 아이들에게 다가가는 것은 쉽지 않았어요. 몇 번이고 다가서도 마음을 내주지 않았지요. 내 자식보다 어린 아이들이 깊은 상처를 회복하지 못하고 숨기기에 급급한 모습에 가슴이 짠했습니다.”

얼마나 지났을까 아이들은 언제 경계했냐는 듯 서로 무릎에 앉으려고 다투기도 했다. 품에 안긴 아이들이 편안해하며 재잘대기 시작하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힘에 밀려 멀리서 바라보고 있는 아이들에게도 다가가 이름을 묻고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자 아이들은 금세 눈물을 글썽이며 상처를 털어놓았다. 속마음을 내보인 아이들은 어미 품에 안긴 병아리처럼 잠시도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참된 봉사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그들에게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되어주기로 마음먹었다. 

 

주말에는 요양원과 양로원, 장애인 복지시설을 찾았다. 대부분 시설이 변변치 않았다. 어르신들은 밑반찬도 없이 홀로 밥을 지어먹기 일쑤였고, 시설을 관리하는 사람이 없는 경우도 있었다. 한겨울 방문한 한 요양시설에선 할머니가 직접 불을 때고, 장작이 떨어지면 그저 이불 하나로 며칠을 버티고 있었다. 누군가의 어머니, 아버지이자 한때는 중요한 일을 해냈을 어르신들이 이처럼 쓸쓸히 계신다는 게 슬프고 안타까웠다.

뜻이 맞는 도반들과 힘을 모아 매주 밑반찬을 요리해 배달하기로 했다. 뚜렷한 수익이 없어 처음엔 각자 집에서 반찬을 만들어왔다. 알아서 재료를 사고 식단을 정한 뒤 이틀, 사흘에 걸쳐 준비했다. 그렇게 10년 가까이 고아들에게 사랑을, 독거어르신들에게 반찬을 전했다. 어느 정도 기금이 마련된 뒤에는 현재 정심원 자리에 식당을 마련하고 달마다 무료급식을 시작했다. 

어르신들의 건강을 도울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던 중 평소 정심원의 봉사활동을 유심히 지켜보던 한 사업가와 연락이 닿았다. 그의 도움으로 식당 2층 공간에 자그마한 찜질방을 마련할 수 있었다. 어르신 여섯 명이 들어서면 꽉 차는 규모였지만 잠깐 몸을 뉘이기엔 충분했다. 식사를 마친 어르신을 한 분 한 분 찜질방으로 모셨고, 금세 입소문을 타 많은 어르신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정심원 활동이 알려지자 사람들이 지원해주기 시작했어요. 생활비를 아껴가며 아이들과 어르신들에게 도움을 전해왔는데, 경제적으로 안정을 찾게 됐지요. 그러자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되더라고요. 언제부턴가 물질적으로 도움 줄 방법만 찾고 있었습니다. 제가 보람과 기쁨을 느낀 것은 도움을 받은 이들이 털어놓는 진솔한 대화였어요. 아이들과 어르신들의 아픈 마음을 치료해주고 달래주며 진정한 행복을 안겨주고 싶었습니다.”

김 원장은 본격적으로 불교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출가자의 각오로 남편과 분가하고 공부와 봉사, 심리상담을 병행한 지 30여년이 흘렀다. 어느덧 김 원장은 정심원 3·4층에 법당을 마련하고 어르신들에게 정기적으로 부처님 법을 전하고 있다. 한 주도 빠짐없이 요양원과 양로원을 찾아 식료품을 전하고 저소득 청소년 장학사업도 꾸준히 펼치는 등 봉사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코로나19로 활동에 지장이 생기자 ‘마음의 향기 TV’ 유튜브를 개설해 부처님 가르침을 알리고 있다. 

정심원 봉사단은 한 주도 빠짐없이 요양원과 양로원을 찾아 직접 만든 식료품을 전한다. 저소득 청소년 장학사업도 꾸준히 펼치고 있다.
정심원 봉사단은 한 주도 빠짐없이 요양원과 양로원을 찾아 직접 만든 식료품을 전한다. 저소득 청소년 장학사업도 꾸준히 펼치고 있다.

올해 5월14일에는 충북 진천에 ‘정심 수련원’을 개원한다. 수련원에서는 우울증에 빠진 사람들을 대상으로 심리상담과 명상수행을 진행할 계획이다. 수련원은 진천지역 독거어르신과 저소득 청소년들을 돕기 위한 중간 지점으로도 활용된다. 김 원장은 “마음에 하나둘 쌓인 상처를 누군가에게 털어놓기 쉽지 않다”며 “정심 수련원은 사회에서 소외된 이들에게 소통의 창구이자 안식처가 되어줄 것”이라고 했다. 

“함께 봉사해온 도반들이 모두 나이가 들어 거동이 불편해졌어요. 하지만 아직 주변에는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웃들이 많습니다. 그들이 부처님 가르침을 접하고 위안을 얻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몸이 허락하는 한 봉사를 멈추지 않을 생각입니다.”

흑백의 겨울을 지나 알록달록 생기 가득한 봄이 오듯, 김다온 원장은 차갑게 닫힌 소외이웃의 마음에 따뜻한 사랑을 불어넣었다. “한순간 머물지 않고 그저 흘러가는 시냇물과 같이 잔잔한 사랑을 전하고 싶다”는 김 원장의 한 마디가 켜켜이 쌓여있는 반찬통 뒤로 진한 여운을 남긴다. 

청주=고민규 기자 mingg@beopbo.com

[1677호 / 2023년 4월 1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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