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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불교의 간병계와 간병선사

기자명 이현숙

여덟 복전 가운데 첫째가 아픈 사람 간호하는 것

‘사분율’ ‘범망경’ 등 초기 계율에 병든이 돌보는 간병계 강조
선덕여왕 병들자 백고좌 열고 밀본법사 초청해 ‘약사경’ 읽어
의료 발달 못한 고대사회서 이른바 ‘간병 법사’ 활약 결정적

간병 선사들의 치료를 받았던 일본 쇼무 덴노.[법보신문 DB]
간병 선사들의 치료를 받았던 일본 쇼무 덴노.[법보신문 DB]

불교가 전래된 이래 사찰은 인간의 아픔을 치유하는 공간이 되기도 하였다. 승려가 지켜야 하는 계율에 아픈 사람을 돌보는 간병계도 있었기 때문이다. ‘사분율’의 의건도에서 세존은 아픈 승려를 간병하는 것은 석가세존 자신을 공양하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이처럼 초기 불교에서 승려들의 간병으로 시작한 것이 점차 그 대상이 넓어져 병자를 돌보는 간병계율이 만들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중국 후진(後秦)시대에 구마라집(鳩摩羅什, Kumārajīva)이 405년 무렵 한역하였다고 알려진 ‘범망경’에는 승려가 지켜야 할 10가지 중대한 계율과 48가지 계율이 있었는데, 사십팔 경계(輕戒) 가운데 아홉 번째가 간병이었다. 이에 따르면 “불자들아, 너희는 모든 병든 사람을 보면 마땅히 부처님과 다름없이 공양해야 하니, 여덟 가지 복전(福田) 가운데 첫째가 병든 사람을 간호하는 복전이니라. 부모와 스승과 스님과 제자가 병들어 팔·다리와 6근(根)이 온전치 못하고 여러 가지 병으로 고생한다면 모두 공양하여 잘 낫게 해야 하는데, 보살이 나쁜 마음으로 성을 내어 가지 않으며, 절이나 성읍·들판·산·숲·도로에서 병든 사람을 보고도 구원하지 않으면, 가벼운 죄를 범하는 것이니라”라고 하였다. 모든 승려가 병든 이를 치료할 능력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었으나, 간병하지 않는 것을 죄로 명시하였다. 

실제 ‘범망경’의 10계율은 한국고대 삼국에 큰 영향을 끼쳤다. 백제 법왕(法王)은 즉위한 해(599) 12월에 살생을 금지하고, 민가에서 기르는 매와 새매를 놓아 주고, 물고기를 잡고 사냥하는 도구들을 태워버리게 하였다(‘삼국사기’권27). 이러한 조치는 살생을 금하는 불교 계율의 영향이었다. 국왕이 10계율을 지키고자 노력하는 상황에서 승려에게 간병계를 포함한 48경계 또한 중요해졌을 것이다.     

신라 승려 자장(590~658)이 승통이 되어 신라 사찰 내에서 계율을 얼마나 잘 지키는지를 돌아보는 포살계를 실시하였을 때, 간병하고 있는 경우 자신의 청정함을 알릴 수 있었다. 이는 계율에 관한 행사를 설명한 ‘사분갈마’의 설계법(說戒法) 가운데 제일 첫 번째가 불법승에 관련된 일이 있거나 병을 앓고 있거나 간병을 하고 있는 경우에 여욕(與欲)을 하고 자신의 청정함을 알리도록 하였던 것에서 알 수 있다. 승려가 행하는 간병의 중요성은 불교 계율에서 일찍부터 강조되었던 것이다.

선덕여왕 5년(636) 3월에 왕이 병이 들자 의술과 기도로 효과가 없었으므로 황룡사에서 백고좌회를 열어서 승려들을 모아 ‘인왕경’을 강론하게 하고, 100명에게 승려가 되는 것을 허락하였다. 불법으로 국왕의 질병을 치료하고자 하는 노력은 지속되었다. 헌강왕 12년(886) 여름 6월에 왕이 병이 들자 나라 안의 죄수를 사면하였고, 황룡사에서 백고좌회를 열었던 것도 이러한 전통 때문이었다. 

그런데 선덕여왕(재위 632~647)의 치병에 대해서 ‘삼국유사’권5 신주(神呪)에서는 좀더 자세한 이야기를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여왕이 병에 걸린 지 오래되었는데, 흥륜사의 승려 법척(法惕)이 왕의 명령으로 병시중을 들어 오래 되었으나 효험이 없었다. 이때 밀본법사가 덕행으로 나라에 명성이 높아서 좌우에서 그를 대신할 것을 청하니 왕이 조서를 내려 궁궐 안으로 맞아 들였다. 밀본은 왕의 침실 밖에서 ‘약사경’을 읽었다. 약사경의 권축(卷軸)이 한번 돌자, 가지고 있던 육환장(六環杖)이 침전 안으로 날아 들어가서 한 마리 늙은 여우와 법척을 찔러 뜰 아래로 거꾸로 내던졌다. 왕의 병이 이에 나았는데, 이때 밀본의 정수리 위에 오색의 신광(神光)이 발하니 보는 사람이 다 놀랐다”는 것이다. 재미있는 옛날 이야기 식으로 전해져 내려오던 설화이기에 믿거나 말거나 식으로 이야기가 윤색되었지만, 주목할 점은 흥륜사 승려가 여왕이 아프자 제일 먼저 차출되어 병 시중을 들었고 치유에 실패하자 당시 유명한 밀본법사가 불려와서 병근으로 보이는 여우와 능력이 없던 법척을 한꺼번에 몰아냈다는 것이다. 밀본은 선덕여왕 뿐 아니라 진골귀족 김양도의 아들도 치료해 주었다. 

또한 ‘삼국유사’는 화랑들을 위한 세속오계를 만들었던 원광(542~640)이 신라왕을 치료하였던 이야기도 전하고 있다. 즉 원광에게 원안이라는 제자가 있었는데, 그는 스승을 이어서 당나라로 유학하였다. “본국 왕이 병환이 나서 의원이 치료하여도 낫지 않아 원광이 입궁할 것을 청하여 별성(別省)에 안치하고 밤에 2시간씩 심법(深法)을 설하여 계(戒)를 받고 참회하게 하니, 왕이 크게 신봉하였다. 어느 날 초저녁에 왕이 원광의 머리를 보니 금빛이 빛나고 일륜(日輪) 모양이 몸을 따라서 이르렀다. 왕후와 궁녀가 함께 그것을 보았다. 이로 말미암아 거듭 승심(勝心)을 발하여 굳이 병실에 머물게 하였더니 오래지 않아 드디어 차도가 있었다”라고 전하였다. 원광은 진평왕 11년(589년) 진나라로 유학을 떠났다가 600년에 뒤국하였으므로, 그가 치료하였다는 신라왕이 누구인지 분명하지는 않지만, 진평왕(579~632)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고대 일본의 경우 ‘속일본기’ 권18에 따르면, 750년 일본 쇼무 덴노(聖武天皇)가 질병에 걸리자 궁중에 어의들이 있는데도 새로 건립한 야쿠시지(藥師寺)로 옮겨가 승려들의 간병을 받았다. 몬무 덴노 역시 신라와 마찬가지로 최고 집권자가 질병에 걸리면 시행하는 의례적인 일들 즉 전국의 고승을 초대하여 왕의 질병치유를 부처님께 기도하는 재를 올리고, 선업을 쌓기 위해 형벌로 고통받는 자들을 사면해 주었다. 오랜 투병 끝에 쇼무 덴노가 사망하자 756년 아들 고켄(孝謙) 덴노는 치료에 가장 공이 많았던 간병선사 법영(法榮)에게 그가 태어난 고향 마을 전체에 세금을 면제해 주도록 하였다. 또한 그동안 간병에 참여하였던 선사 326인에게 집안의 과역(課役)을 면제해주었으며, 특별히 공이 많았던 양변(良辯)·자훈(慈訓)·안관(安寬) 세 법사는 모두 아버지 어머니 양쪽 집안까지 면제해 주었는데, 면제 기간은 해당 승려가 죽을 때까지였다. 또한 당시 일본에서는 이들 선사가 의사 및 관인과 함께 지방에 파견되어 질병에 걸린 무리를 도와 치료해 주었다( ‘속일본기’ 권18, 천평 승보 8년 4월 임자일).

불교의 간병계는 아픈 이를 치료해 주어야 한다는 의무감을 승려에게 갖게 하였으며, 의료가 발달하지 못했던 고대 사회에서 이들의 활약은 빛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현숙 한국생태환경사연구소장 rio234@naver.com

[1677호 / 2023년 4월 1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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