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32. 불교사상과 개인주의-상

개인 수행 중심인 불교는 정말 개인주의일까

부처님 당시 여성출가는 자유와 개인성 확보 등 희망적 개인주의
불교가 기독교 문화와 다르다는 이유로 반사회적 개인주의 매도
서양 개인주의가 사회 향상시켰다 주장에는 식민주의 사관 보여   

유럽의 개인주의는 능동적인 반면 동양의 개인주의는 미신에 사로잡혀 있다는 시각은  동서양의 서사를 정반대로 구성하기 위한 도구였다.
유럽의 개인주의는 능동적인 반면 동양의 개인주의는 미신에 사로잡혀 있다는 시각은  동서양의 서사를 정반대로 구성하기 위한 도구였다.

개인 중심 수행과 깨달음을 추구하는 불교가 비사회적인 ‘개인주의(individualism)’로 비치는 것은 어느 정도 감수해야 할 지적일지도 모르겠다. 거기에는 ‘개인주의’란 용어가 갖는 부정적인 뉘앙스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서구에서 유통되던 ‘개인주의’란 용어는 다양한 지적 배경과 의미의 편차를 가지고 있었다. 불교사상을 ‘개인주의’로 규정할 수 있는가의 문제는, 복잡하지만 흥미로운 담론이기도 하다. 때마침 도나 린 브라운(Donna Lynn Brown)의 “불교는 개인주의적인가:용어상의 혼란(Is Buddhism Individualistic? The Trouble with a Term)”(Journal of Buddhist Ethics, vol. 28, 2021)이란 논문이 그런 주제를 다루고 있어 함께 읽어 보기로 한다.

리스 데이비스(C. A. F. Rhys David)는 불교가 당시 여성이 희망했던 종류의 개인주의, 예컨대, 사회적 구속으로부터의 자유, 개인성의 확보 및 자신이 선택한 길을 따라 발전할 동등한 기회 등을 제공했다고 평가한다. 1909년 자신이 번역한 ‘장로니게(Therīgāthā)’의 해설에서, 여성들은 가족 및 사회적 구속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 출가한다고 썼다. 그들은 사회와 가정의 속박을 버림으로써 자유, 즉 비로소 ‘한 개인의 지위'를 얻게 된다고 말했다. 호르너(I. B. Horner)도 불교는 개인을 사회적 구속으로부터 자유롭게 한다는 점에서 개인주의적이라고 정의한다. 그녀는 불교가 여성들을 ‘개인들’로 만들고, 그들에게 인간적 선택지를 제공함으로써 다양한 인격성을 자각하도록 유도한다고 쓰고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불교는 여성들에게 존중과 자유, 독립성, 권리, 평등성 및 자기계발의 기회를 부여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녀는 ‘장로니게’가 여성들이 자신의 목표를 추구하고, 인격성을 표명하며, 원력을 함양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칭송한다. 여기서 호르너는 불교가 소극적인 형태의 개인주의가 아니라 적극적인 형태의 개인주의일 수 있음을 넌지시 암시하는 듯하다. 

시간이 지나면서 학자들이 불교가 기독교 문화나 서구의 문화와 다르다는 이유로 비판함에 따라 개인주의와 관련된 서사(narratives)도 바뀌었다. 이러한 접근법은 루이 데 라 발레 뿌신(Louis de La Vallée-Poussin)의 1917년 책 ‘열반으로 가는 길(The Way to Nirvāṇa)’에서 처음으로 발견된다. 이전의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는 불교의 형이상학에서는 어떠한 개인주의도 발견하지 못했다. 다만 행동을 논의할 때 그는 불교를 “개인주의적”이라고 부른다. 출가 수행자들은 “이웃이나 죽은 자들을 배려하지 않는다. 그들은 비사회적이었으며 반사회적이기도 했다. 그들은 결혼을 비난한다.” 이처럼 불교는 관계성과 상호원조 대신에 진실이 의심스러운 이기적 해탈을 가르친다. 라 발레 뿌신은 그가 불교적 개인주의라고 인식했던 것과 기독교적 사회성이라고 생각했던 것 사이의 구별을 특히 강조했다.

막스 베버(Max Weber)의 책 ‘인도의 종교: 힌두교와 불교의 사회학(The Religion of India: The Sociology of Hinduism and Buddhism)’이 불교를 가리켜 윤리학뿐만 아니라 형이상학에서도 개인주의적이라고 일갈했던 것은 유명한 이야기다. 베버의 말에 따르면 “서양의” 개인주의는 자립과 합리성 및 정직성을 함양하고 표현하도록 권유하며, 사회를 실질적인 방식으로 향상시키는 행동을 장려하는 문화를 추구했다. 이는 불교권 사회들이 가지고 있지 못한 실천적 부분이다. 말하자면 불교는 정반대의 것, 즉 비사회성과 불참여를 함축하는 소극적인 개인주의임을 드러낸다. 

베버와 마찬가지로 듀몽(Louis Dumont)도 동양과 서양이 다르게 발달한 이유에 관심을 가졌는데, 그 해답을 생산적인 개인주의와 비생산적인 개인주의의 차이에서 찾는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체제 순응적인 사회임을 전제할 때 인도인들은 오직 종교적 은둔을 통해서만 ‘개인들’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세상 밖에 사는 수행자들은 서양의 개인들과는 달리 생산적으로 행동하지 않았다. 불교의 형이상학과 관련하여 듀몽은 해탈을 자아의 소멸이라거나 자아의 환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자아의 재발견이라고 본다는 점에서 베버의 관점과 다르다. 결과적으로 불교적 수행이 제공했던 ‘개인주의’는 아무런 실질적인 진보를 가져오지 못했다는 것이다.

문화인류학자인 멜포드 스피로(Melford Spiro)와 비교종교학자인 윈스톤 킹(Winston King)도 불교적 수행을 종교적 개인주의라고 분류했다. 두 사람 역시 불교 윤리를 개인주의적이라고 평가하는데, 그들은 이를 사회적인 활동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사용한다. 불교는 일련의 진취적 활동들, 곧 도덕적인 모순과 사회적인 질서를 바로잡는 일, 사회봉사에 참여하는 일, 부정의나 착취의 정체를 밝히고 제거하는 일, 계급의 차별을 중단시키는 일, 돈 많은 사람을 불공정하다고 불평하거나 그들의 특권을 공격하는 일, 토지를 재분배하는 일, 가난한 사람들을 물질적인 방식으로 돕는 일 등을 시도하지 않았다. 아울러 불교는 고통을 사회적 차원이 아니라 개인적 차원에서 언급할 것, 사랑보다 거기에 집착하지 않는 것을 선호할 것,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돕기 위해서는 신성한 것과 그 외의 다른 정신적인 접근을 통해 개인의 도덕성과 정신적 진보 및 덕의 발휘에 초점을 맞추고 비물질적인 행위만 수행할 것을 권고한다. 이런 구속과 제안들은 사회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보다 개인적인 것과 비물질적인 것을 중시하는 말이자 불교가 개혁을 지지하지 않는 소극적인 개인주의를 모색해왔다는 것을 뜻한다.

여기서 우리는 도날드 로페즈(Donald Lopez)의 말을 의미심장하게 받아들인다. “서양은 동양보다 더 발전했다는 식민주의적 사관을 버리지 않았다. 왜냐하면 유럽인들은 외부세계에 대해 외향적이고 능동적이며, 호기심이 많았던 반면에 아시아인들은 내향적이고 수동적이며, 미신적인 것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개인주의'는 동양과 서양의 서사를 정반대로 구성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였다는 의심을 해본다.

허남결 동국대 불교학부 교수 hnk@dongguk.edu  

[1680호 / 2023년 5월 1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