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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한 마음 있나, 없나

기자명 한산 스님

번뇌 긴급 처방은 ‘감사’ 알기
​​​​​​​아프지 않은 몸은 최소 51억
하루에 860만원 벌며 살아가
당연한 것이 가장 귀한 선물

‘감사한 마음으로 오늘 하루를 살고 있나?’ 스스로 살피는 시간은 소중하다. 며칠 동안 나는 번뇌에 빠져 무기력한 날을 보냈다. 해야 할 일을 자꾸 미루고, 무얼 하고 싶은 의지도 생기지 않았으며, 하기 싫다는 마음만 부풀어 올랐다. 이것저것에 괜스레 트집 잡으며 남을 탓하려는 나를 마주하자 분노가 이미 치성함을 알아차리고 그제야 번득 정신 차렸다.

내 마음대로 되게 하려는 기대와 욕심이 먼저 일어났음은 물론이고 어리석은 마음이 눈앞을 흐리며 모른 척, 아닌 척 시간이 흘러왔음을 뒤늦게야 바로 보고, 인정하고, 항복했다. 한 생각 내려놓으니 아무 일 없는 지금 여기로 오롯이 되돌아와 안심되었다. 

번뇌에 깊이 빠져 허우적거릴 때는 빠져 나오기가 쉽지 않다. 부정적인 상태에 옴팡 빠져 있거나 불만족스러운 마음이 온 세상을 적시고 있다면 긴급 처방으로 유용한 것이 ‘감사’를 알아차리는 것이다. 감사한 마음과 불만족스러운 마음은 공존할 수 없으니까 말이다. 

박완서 작가의 ‘일상의 기적’이라는 글을 보면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기적과도 같은 일인지 깨닫게 된다. 작가는 허리를 삐끗하면서 하룻밤 사이에 사소한 일들이 굉장한 일임을 경험하며 “기적은 하늘을 날거나 바다 위를 걷는 것이 아니라, 땅에서 걸어 다니는 것이다”라는 중국 속담을 절실히 느끼게 된다.

작가는 몸의 불편함을 몸소 경험하며 이 몸을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큰 비용이 드는지 계산해 놓았다. 한쪽 안구 구입이 1억, 눈 두 개면 2억, 심장 바꾸는 데는 5억 등…. 눈, 코, 입은 물론 멀쩡한 다리를 가지고 살아가는 우리는 매일 51억짜리 몸을 가지고 하루에 860만원을 버는 셈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이 몸을 가지고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그 소중함을 느끼기가 평소에는 참 어려운 것 같다. 처음부터 있었고 당연하게 쓰고 있는 것들이니까 말이다.

며칠 전에 손가락에 조그만 상처가 났다. 별거 아니라 생각했는데 계속 신경이 쓰였다. 상처가 나고 보니 여기저기에 계속 닿으면서 쓰라림이 커졌다. 손가락 한 귀퉁이에 이렇게 많은 닿음으로 신경들이 반응하고 있는 줄 이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다. 이제껏 피부의 존재감조차 느끼지 못하고 살았는데 피부가 몸을 보호하는 대단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감사할 거리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매번 새롭게 등장한다.

명상 클래스를 진행할 때 열심히 참석했던 한 법우님이 생각난다. 불교 공부를 오랫동안 했고, 현재도 꾸준히 기도 수행을 이어가는 신심 있는 불자였지만 마음은 편해 보이지 않았다. 법우님에게 명상과 함께 감사 일기 쓰기를 권하자, 그는 “평소에 감사한 일이 없어요. 감사한 일이 없어서 지금은 쓰지 못하겠어요. 감사하지 않은데 감사 일기를 쓰는 건 가식처럼 느껴져요”라며 자신의 솔직한 마음을 표현했다. 나는 “감사 일기는 특별한 일에 감사한 마음이 절로 생기는 것만 쓰는 것이 아니에요. 평소 당연하게 바라보던 대상에 대한 관점을 바꿔 감사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연습을 하는 것이 감사 일기랍니다”라고 말했다.

명상 클래스 3주 차 때 한층 밝고 편안해진 얼굴로 자리에 앉아 있는 법우님을 만날 수 있었다. 한 주 동안 어떻게 지내셨냐고 물으니 지인의 49재에 참석한 이야기를 하셨다.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접하고 나니 지금 이렇게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를 진심으로 깨닫게 되었다며 눈을 반짝이셨다.

우리는 가진 것이나 건강을 잃을 때, 누군가의 죽음을 마주할 때, 그제야 지금껏 누리고 있는 것들이 당연한 것이 아닌 값으로 매길 수 없을 만큼의 귀하고 감사한 선물임을 깨닫는다.

무언가를 잃고 나서가 아닌 지금 당장 감사한 마음으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산다면 그것이 행복한 삶 아닐까. 지금 바로 눈앞에 보이는 대상을 감사하게, 사랑스럽게 바라보자. 평범해 보이는 기적 같은 일상을 감사하며 사랑하며 삽시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한산 스님 일상다감사 지도법사 happyhansan@naver.com

[1680호 / 2023년 5월 1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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