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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삶에서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시점

기자명 법보신문
생명의 生-死를 순리에 맡기면

비로소 자연이 되고 인간이 된다


인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시점이 있다. 하나는 생명의 잉태에서부터 탄생으로 이어지는 시기이고, 다른 하나는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이다.

현대 의학에서는 두 가지 시점을 유물론적 관점에서만 설명할 뿐이다. 생명의 잉태는 단지 정자와 난자의 결합만으로 이루어지고 죽음 역시 육신의 죽음이 전부인 듯이 말해진다.

2002년에 태어난 신생아는 48만4625명으로 50만 명이 조금 못되지만, 낙태당한 숫자는 2백만 명 이상으로 추정된다. 한 해 동안 잉태되는 생명 가운데 약 80%인 200만 명은 낙태 수술에 의해 희생되고, 신생아 약 48여 만명 중 40.5%(우리나라의 제왕절개수술 비율) 약 20만 명은 제왕절개 수술을 통해 태어난다. 약 248만여 명 가운데 낙태당하지 않고 제왕절개 수술에 의하지도 않고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태어나는 신생아는 약 30만 명, 12%에 불과한 실정이다.

생명이 태어나는 과정에 다양한 형태의 폭력이 개입되어 있듯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병원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있는 요즈음 따뜻한 보살핌과 간병을 받지 못하고 병실 한 구석에서 차가운 의료 기계에 둘러싸인 채 여러 가지 튜브를 몸에 꽂고 있는 모습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더구나 임종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의료관계자가 죽음에 대한 적절한 교육을 받았는지, 또 스스로 죽어가는 환자를 돌보는 방식이라든가, 자기 자신의 죽음에 대해 얼마나 생각해 보았는지 궁금하다.

죽어갈 때 우리 모두의 육신은 존중받으면서 치료받을 권리가 있다. 우리 영혼 역시 그보다 더욱 존중받으면서 치유받을 권리가 있다. 현대사회는 냉혹하게 편의주의에 빠져 어떤 영적 가치도 부인하기 때문에, 시한부 인생 선고를 받은 사람은 자신이 아무 쓸모도 없는 물건처럼 내팽개쳐진 듯한 느낌에 몸서리치게 된다.

티베트에서는 죽어 가는 사람을 위해 기도하고 그를 영적으로 돌보는 일이 아주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현대사회에서 죽어 가는 사람에게 대다수가 표하는 유일한 관심이란 그의 장례식에 참석하는 것뿐이다. 가장 상처받기 쉬운 바로 그 순간 세상 사람들은 거의 아무런 보살핌이라든가 통찰력도 제시받지 못하고 내팽개쳐진다. 이는 비극적이고 치욕적인 상황으로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

누구든지 어느 정도 마음의 평화를 느끼면서 죽음을 맞이할 수 없다면, 적어도 이것을 가능하게 하려는 어떠한 노력도 진행되지 않는다면, 권력과 성공만을 지향하는 현대 사회의 허세는 공허해질 뿐이다. 죽어 가는 사람을 돕는 일은 마치 쓰러진 사람을 향해 손을 뻗어 일으켜 세우는 것과 같다고 말해진다. 우리의 힘, 평화, 자비로 그에게 큰 관심을 표함으로써, 그는 자신의 힘을 일깨울 수 있는 도움을 입을 것이다.

그처럼 상처받기 쉽고 극단적인 순간에 우리가 어떤 자세로 죽어 가는 당사자에게 임하느냐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와 같이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시점, 생명이 잉태되어 태어나는 과정과 죽어가는 과정은 우리 사회에서 너무도 허술하게 다루어지고 있다.

생명의 탄생은 이 세상에서 삶이 시작됨을 뜻하고, 죽음은 삶의 종결을 의미한다. 생명의 탄생과 죽음이 이치에 맞게 시작되고 존엄하게 끝을 맺을 수 없다면, 그 사이에 걸쳐 있는 우리의 삶마저도 제대로 인간답게 산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따뜻한 보살핌 속에서 태어나지도 못하고, 인간답게 살지도 못하고, 품위 있게 죽지도 못한다고 말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한림대 철학과 오진탁 교수
jtoh@hally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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