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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할 수 없는 전자소음이 명상 길잡이 되는 순간

  • 문화
  • 입력 2023.05.26 18:45
  • 호수 16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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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5월26일 ‘명상’ 키워드로 ‘다원예술 2023’ 개막
‘백남준과 명상’ 첫 주제 설치미술·소리명상 접목 실험 무대 선보여

‘침묵과 소리로 백남준을 만나다’는 일반인들의 참여 신청을 받아 카이스트 명상과학연구소장 미산 스님이 진행하는 명상 참여 프로그램이다.
‘침묵과 소리로 백남준을 만나다’는 일반인들의 참여 신청을 받아 카이스트 명상과학연구소장 미산 스님이 진행하는 명상 참여 프로그램이다.

침묵이 내려앉자 공간은 순식간에 낮은 전자소음에 점령당했다. 숨소리도, 말소리도, 움직임도 모두 잠시 멈출 수 있었지만 낡은 브라운관에서 새어 나오는 알 수 없는 전자기들의 충돌음, 그리고 어디서부터 비롯됐는지 추측조차 할 수 없는 작은 소음들은 끝내 멈출 수 없었다. 그 미세한 진동이 가득한 가운데 50여명의 참여자들은 다시 깊은 내면으로 고개를 돌렸다. “소리에 집중함으로써 과도하게 활성화된 감각을 재설정해 보자”는 스님의 안내에 따라 참가자들은 낮게 울리는 싱잉볼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소음과 싱잉불의 공명, 구분할 수 없는 두 소리의 일정한 파장이 다시 공간을 채워나갔다.

5월26일 국립현대미술관(관장 직무대리 박종달)에서 첫선을 보인 명상 프로그램 ‘침묵과 소리로 백남준을 만나다’는 현대예술과 명상의 교차점을 확인하고 명상이 현대인들에게 전하는 메시지와 경험의 다양성을 발견하는 실험적인 자리였다. 국립현대미술관이 5월26일부터 2024년 2월25일까지 진행하는 ‘다원예술 2023’의 일환이다. 오프닝 프로그램 ‘침묵과 소리로 백남준을 만나다’를 선보인 카이스트 명상과학연구소장 미산 스님은 프로그램 진행에 앞서 “개념이 해체되고 범주화가 사라질 때 감각이 드러난다”며 “소리명상과 백남준 작품 블루부처의 이미지를 결합해 현대인들에게 새로운 명상을 체험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다원예술은 장르의 경계를 허물어 현대미술의 영역을 확장하고자 국립현대미술관이 진행하는 융복합 프로그램으로 지난 2017년부터 진행해왔다. 올해의 주제는 ‘전자적 숲; 소진된 인간’이다. 고단한 일상에 지친 현대인들로부터 주목받고 있는 ‘명상’이 전체 프로그램을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다. 내면을 성찰해 심신의 평안을 구하고자 명상으로 모여드는 현대인들의 모습과 그 저변에 흐르는 문화 양상을 다양한 장르의 예술과 결합해 분석해 보려는 국립현대미술관의 고민이 돋보인다.

다원예술 2023 공식포스터. 
다원예술 2023 공식포스터. 

이번 기획은 전자매체가 명상의 대중화에도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인식에서 출발하고 있다. ‘3분 명상’ ‘108배’ ‘힐링 음악 플레이리스트’ 등 현대인들이 비교적 쉽게 접근하는 명상 프로그램 대다수가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 플랫폼과 어플리케이션을 기반으로 구축된다는 점에 주목했다. 타이틀인 ‘전자적 숲’은 마음의 평온을 위한 노력이 결국 전자매체와 플랫폼 등에 기반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대한 언급이다. ‘소진된 인간’은 사회라는 큰 구조 안에서 개인의 가능성과 잠재성의 구현이 가능한가에 대한 질문이다.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작가 질 들뢰즈의 에세이 ‘소진된 인간’에서 차용했다. 이는 곧 내면의 건강을 위한 개인의 시도가 성과주의 사회에서 또다시 평가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반문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기반으로 다원예술 2023은 총 4부에 걸쳐 17개의 음악·퍼포먼스·문학·무용 프로그램을 통해 현대적 의미에서의 ‘명상’을 다각도로 고찰한다.

그 시작인 1부 ‘백남준과 함께 (전자)명상하기’는 5월26일~7월16일 5개의 세부 프로그램으로 진행된다. 전자기술과 전자예술을 통해 정신을 집중하고 감각을 확장하고자 했던 백남준은 ‘전자 참선’의 가능성을 언급한 바 있다. 1부는 이러한 백남준의 제안에 관한 현대적 응답이기도 하다. MMCA다원공간에서 5월26~28일, 6월1~4일 매일 1회 진행되는 ‘침묵과 소리로 백남준을 만나다’는 일반인들의 참여 신청을 받아 카이스트 명상과학연구소장 미산 스님이 진행하는 명상 참여 프로그램이다. 예술작품과 명상의 접목이라는 독특한 시도로 백남준의 설치미술품에 사용된 오래된 전자장치에서 발생하는 기계음과 소음 등 미세한 소리들을 명상으로 흡수하는 과정이 흥미롭다. 프로그램 진행 시간 외에도 MMCA다원공간에서는 백남준의 작품 ‘블루 부처’(1992/1996)와 ‘필름을 위한 선’(1964)이 발산하는 여러 신호를 활용한 다섯 개의 감상법과 명상법 등을 접할 수 있다. 전자음악가, 사운드 엔지니어, 퍼포먼스 작가, 전시기획자 등이 참여한다. 6월3일 오후 1시부터는 ‘현대사회에서의 명상의 의미와 역할 변화’를 주제로 미산 스님의 토크콘서트도 진행된다.

다원예술 2023은 2부 ‘자율-쾌락으로서 음악 그리고 플레이리스트’, 3부 ‘노이즈 캔슬링과 앰비언트, 몸과 목소리’, 4부 ‘탐닉의 시대, 웰빙을 숙고하기’를 주제로 내년 2월25일까지 계속된다.

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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