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30. ‘안과 밖이 없는 허공처럼’ (虛通無內外)

기자명 승한 스님

무명의 삶 다비 위한 거룩한 탄생

첫 문단부터 자유와 통쾌 선사
아기부처님 일곱 걸음 걸은 건
안팎이 없는 허공 이치와 상통
허공 돼 살았는지 성찰 이끌어

하늘을 휘둘러 이불 삼고 땅을 베개 삼노니
어느새 빈 허공은 안과 밖이 없도다.
벌떡 일어나 이불 베개 둘 다 모두 밀치자
석가모니 마야부인 배에서 벗어난 듯하다.
휘천위금지위침(揮天爲衾地爲枕) 
전전허통무내외(轉轉虛通無內外)
홀기쌍추금여침(忽起雙推衾與枕)
석가해탈마야두(釋迦解脫摩耶肚)
-화담법린(華曇法璘, 1843~1902)

불기 2567(2023)년 부처님오신날이다. 코로나19 팬데믹에 꽁꽁 묶여 있던 지난 3년이 때마침 오늘 마야부인의 배를 나와 선암사 영산홍·자산홍으로 만개한 듯하다.

화담법린 선사의 시를 따라 그 시절로 되돌아가본다. ‘벌떡 일어나 이불 베개 둘 다 모두 밀치자/ 석가모니 마야부인 배에서 벗어난 듯하다.’ 

참말로, 통쾌하다. 시원하다. 자유롭다. 이 대자재, 이 대자유를 무엇에 비길손가.

화담 선사는 그것을 ‘안과 밖이 없는 허공’이라고 했다. 언뜻 보면 주관 같다. 관념 같다. 그러나 이보다 더 객관적이고 개념이 확실한 도단(道斷)은 없다. 허공의 어디가 안이고 어디가 밖이겠는가. 어디가 내부고 어디가 외부이겠는가.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태어나시자마자 사방으로 일곱 걸음을 걸으시며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 하늘 위 하늘 아래 오직 나만이 홀로 존귀하다)”라고 외치신 것도 바로 안과 밖이 없는 허공의 이치를 꿰뚫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선시를 보면, 화담 선사는 그 대자유를 제대로 누리고 살았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어머니 마야부인의 배에서 처음 나와 텅 빈 허공에 두 팔과 두 다리를 아무 걸림 없이 쭉 뻗으며 탄생게를 읊던 그 대자유의 심경을 화담 선사는 이미 체(體)하고 용(用)하고 있었던 거다. 그래서 단도직입적으로 ‘휘천위금지위침(揮天爲衾地爲枕, 하늘을 휘둘러 이불 삼고 땅을 베개 삼노니)’라고 첫 행부터 치고 나간 것이다.

인류의 스승은 많다. 석가모니 부처님을 비롯해 공자, 예수, 소크라테스, 마호메트 등 저마다 인류의 스승으로 추앙받고 있다. 그러나 허공이 안과 밖이 없음을 통찰하신 분은 부처님 밖에 없다. 그것은 곧 모든 인간은 결국 허공과 이퀄이라는 선언과 같은 것이다.
이 대목에서 필자는 생각해본다. 그동안 필자는 얼마나 허공이 되어 살았는가. 너와 내가 ‘한 꽃[일화(一花)]’이 되어 살았는가. 겉으로는 하얀 척, 그러나 안으로는 검게 살진 않았는가.(솔직히 이런 대목에 부닥치면, 필자는 항상 미완의 삶에 한계를 느끼곤 한다. 죄[업], 없는 모든 사람에게, 부디, 복이 있을진저.)

불기 2567년. 때마침 부처님오신날에 화담법린 선사의 이 선시를 만난 것은 우연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 필자는 너무 많은 이불과 옷과 베개를 가지고 살았다. 허공이 무거워 가라앉는 줄도 모르고 살았다. 55세에 해탈의 대자유를 안고 입적한 화담 선사보다 더 많은 갈애와 욕망의 삶을 살았다. 그 무명의 삶을 다비하기 위해 화담법린 선사는 불기 2567년 부처님오신날 필자에게,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이 선시로 화해 나타나셨다. 

이 기회에 우리 모두 다시 하늘을 휘둘러 이불로 삼고 땅을 펼쳐 요와 베개를 삼으면 어떨까? 그것마저도 갑갑하다면, 아예 허공이 되어버리면 어떨까. 더 이상 ‘십악참회’를 안 외워도 되지 않을까.(그러나, 필자도 솔직히 장담은 못하겠다. 부디, 필자의 이 우매함을 용서해주시길.)

이 시의 원제는 ‘금침와기송(衾枕臥起頌, 이부자리에서 누웠다 일어나는 노래)’다. 그러고 보면 화담법린 선사도 게으름 좀 피다가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화다닥 깨어 일어나며 한 생각 크게 깨치신 것은 아닐까.(선사님, 이 후학의 불손을 용서하소서.)

승한 스님 빠리사선원장 omubuddha@hanmail.net

[1683호 / 2023년 5월 3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