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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삭은 장맛처럼 진하고 달고 묵직한 수좌의 글쓰기

  • 불서
  • 입력 2023.06.12 16:21
  • 수정 2023.06.12 16:23
  • 호수 1684
  • 댓글 0

해제를 꿈꾸며
원상 스님 지음 / 시간여행 / 288쪽 / 1만5000원

33안거 성만 수좌에서
연꽃마을 대표이사로
“장소·자리만 변했을 뿐
글은 자신 살피는 안목”

원상 스님은 수좌다. 연꽃마을 대표이사라는 직함이 따라 붙은지 벌써 햇수로 5년, 하지만 아직 해제의 꿈을 버리지 못했으니 결제에 든 수좌와 다를 바 없다. 1986년 덕산당 각현 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원상 스님은 중앙승가대를 졸업하고 2019년까지 해인사, 통도사, 봉암사, 법주사 등 전국의 제방선원에서 33안거를 성만했다. 눈푸른 납자로 한 길을 걸어온 원상 스님에게 해제는 사무치도록 그립고 목마른 단어였다. 

“흔히 해제는 안거 석 달 정진의 마무리, 즉 한 철의 졸업을 말하죠. 하지만 수행자에게 해제는 용맹정진한 각고의 시간과 열정으로 벼락 치는 깨달음을 얻은 후에야 맞이할 수 있는 선물 같은 단어입니다. 깨달음을 이루지 못한 수행자에게 해제가 없는 이유, 해제를 꿈꾸는 이유입니다.”

세상을 복전 삼아 연꽃을 피우며 불교노인복지를 개척한 은사 각현 스님이 입적한 후 원상 스님이 그 원력을 이어 받았다. 30여년 역사를 자랑하는 불교계 대표 복지법인, 그 선두에 서자 자의 반, 타의 반 글 쓸 일들이 많아졌다. 법인 소식지를 비롯해 이곳저곳에 수록했던 글들이 어느새 책 한 권 분량이다. 2019년 첫 책 ‘토굴가’에 이어 두 번째로 펴낸 ‘해제를 꿈꾸며’는 연꽃마을 대표이사라는 소임 틈틈이 적어 내려간 또 한 편의 수행록이다.

“토굴에 혼자 살던 시절에는 하루를 마무리하는 의미로 글을 썼습니다. 하루라도 무의미하게 지나가지 않도록 기록하며 점검하는 방편이었습니다.”

하지만 세납 마흔이 되기 전까지 글을 쓰지 않았다. 책 읽는 것을 무엇보다 좋아했지만 선뜻 글로 옮기지 않았다. 수좌에게는 밖으로 드러내는 글보다 안으로 익히는 숙성의 시간이 중요하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충분히 익고 곰삭은 후에야 펴 보인 스님의 글은 깊은 장맛처럼 진하고 달고 묵직하다.
 

수행납자의 길을 걸어온 원상 스님은 현재 복지법인 연꽃마을 대표이사다. 자리는 바뀌었지만 해제를 기다리는 수행자의 마음은 변함없다. 
수행납자의 길을 걸어온 원상 스님은 현재 복지법인 연꽃마을 대표이사다. 자리는 바뀌었지만 해제를 기다리는 수행자의 마음은 변함없다. 

은산 철벽 뚫겠다는 기백으로 선방에서 정진하던 젊은 수좌시절의 당당하고 다소 까칠했던 모습부터 그 길에서 만났던 스승들과 도반들에 대한 회상이 차곡차곡 담겨있다. 줄을 서야 얻을 수 있는 선방의 누룽지를 한 번도 받지 않으시던 선덕스님에게 누룽지 한 덩이를 얻어다 슬쩍 건내자 어린아이같은 웃음 보이시는 모습을 보며 ‘선가에서는 꽉 막힌 상태를 은산 철벽이라는 단어로 가끔 쓰기도 하는데, 그 은산 철벽의 문을 열었다’는 회상에서 혈기 왕성한 수좌의 당돌함이 엿보인다. 

부처님의 가르침과 마음에 대한 헤아림은 때론 너무 쉬운 말과 흔한 주변의 일상에 빗대어져 있어 교리와 수행에 관한 이야기라는 흔적조차 없이 스며든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부분이기도하고 전부이기도 한 것입니다. 고정된 실체가 없다는 것은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하며 건강한 관계를 유지해야 생명과 문명이라는 기적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역설인 것입니다.- ‘불교란 무엇인가’ 중에서.

단조로운 일상에 마디를 새기고 매듭을 맺고자 시작한 글쓰기를 통해 스님은 한 걸음 떨어져 자신을 살피는 또 하나의 안목을 얻었다. “어쩌면 이 세상에서 나를 가장 모르는 사람이 자기 자신일 수 있다”며 “소소한 글에서 이 사람이 이런 생각을 하는구나, 이런 모습을 갖고 있구나 하며 알아가는 시간이었다”고 회고한다. 그렇게 발견한 스님의 모습을 따라가는 사이 독자도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자신과 몰록 대면할 수 있다.

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1684호 / 2023년 6월 1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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