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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심칭명(一心稱名)

기자명 법보신문

아미타불 염하면 한없는 공덕 성취
원효부터 근대선지식 모두 염불 강조

일심칭명(一心稱名)은 『아미타경』 에서 “사리불아, 만약에 선남자 선여인이 아미타불에 대한 말씀을 듣고 명호를 잡아 지녀(執持名號), 혹은 일일 혹은 이일 삼일 사일 오일 육일 칠일 동안 한마음으로 흐트러지지 아니하면(一心不亂)” 하신 데서 나온 말입니다. 『무량수경』에서는 염불할 때 보리심, 원생심(願生心), 지성심으로 행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런데 원효는 『아미타경소』에서 집지명호 일심불란은 정토왕생의 조인(助因)을 밝히는 것이라고 하고, 이유는 아미타불의 불가사의한 공덕을 성취한 명호이기 때문이라 하였습니다. 정토에 왕생하는 정인(正因)은 발보리심, 조인(助因)은 칭명염불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또한 범부는 선근공덕으로 염불법에 대한 진실한 믿음을 일으키는 그것이 곧 발보리심이라고 하였습니다. 불법을 깊이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진실한 믿음을 씨앗으로 정토에 왕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칭명염불은 일심으로 명호를 생각하고 부름으로써 믿음을 성취하는 방편이며, 안심법입니다. 일심칭명으로써 자비광명에 대한 결정신심을 성취하여 본원력에 힘입어 윤회를 벗어난다는 확신으로 안심(安心)을 얻고, 인과법을 믿어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합니다. 바로 여기서 복과 지혜는 증장합니다.

원효는 아미타불의 본원력에 대한 진실한 믿음을 일으켜서, 명호를 잡아 지녀 일심으로 부르면, 저 “나무아미타불”이라는 진실한 음성에 보리심, 원생심, 지성심이 더불어 실려 있다는 것입니다. 칭명염불은 오로지 명호를 부르는 일심칭명 뿐입니다. 염불법을 이와 같이 간단 명료하게 밝히고 실천하도록 한 것은 오직 범부가 행하기 쉽도록 가르쳐 믿음을 성취하고 안심을 얻도록 보이신 자비의 방편입니다.

일심칭명하여 염불삼매를 성취하면 가히 헤아릴 수없는 무량한 이익을 얻습니다. 염불은 장애가 없으며, 무량한 이익을 보장합니다. 다만 언제나 “나무아미타불” 혹은 “아미타” 일구를 끊이지 않고 생각하고 부르는 정진을 기다릴 뿐입니다.

1915년 10월 통도사에서 경봉스님 등이 발기하여 승속 함께하는 대규모 염불만일회를 조직하여 칭명염불 및 관상염불을 실천하였는데 그 목적은 “염불수심(念佛修心)으로써 견성성불하여 광도중생하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1925년 1월 해인사에서도 대규모 염불만일회를 조직하여 실천하였는데 그 취지문에 “일심불란하고 칭명염하면 즉득왕생한다”고 하였습니다. 원효로부터 근대의 선지식들까지 염불은 깨달음을 얻는 방편으로 실천되었습니다.

여기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교학은 방대하지만 실천법은 간단 명료하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방편이라는 이름 아래 수행법이 너무 많고 복잡한 것을 보면 그 곳에서는 깨달음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염려를 놓을 수 가 없습니다. 일구의 화두를 들고 정진하는 것처럼, 염불도 일심칭명을 명심하여 아미타의 뜻을 깊이 인식하고 오로지 “나무아미타불“ 만을 생각하고 불러야 염불의 참맛을 느낄 것입니다.

정목 스님
춘천 정토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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