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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구니스님들은 권리 없고 의무만 있나

기자명 진원 스님

‘미래한국 불교를 위해서 제언하고자 한다’는 전국비구니회와 ‘샤카디타 코리아’가 공동으로 주관하는 제18회 샤카디타 한국대회에서 발표할 필자의 논문 제목이다. “위기의 세상 속에 깨어있기”를 주제로 6월23일부터 닷새간 봉은사 일원에서 열리는 이번 대회는 논문발표, 워크숍, 전시, 명상, 문화공연 등 세계 각국 불교여성들이 준비한 다채롭고 풍성한 프로그램을 선보일 예정이다. 

최근 우리는 우리가 발전시켜온 문명과 작금의 세계정세가 얼마나 ‘무상(無常)’한 것인지를 뼈아프게 실감했다. 우리는 늘 깨어있어야 하고, 지혜와 통찰력을 길러야 한다. 샤카디타 세계대회는 세계 여성 불자들의 지혜를 모아 위태로운 세상 속에서 우리의 유한성을 분명히 인식하는 동시에 우리가 얼마나 가치 있는 존재인지 잊지 말아야 함을 알리는 자리다. 

지난 샤카디타 호주대회에 처음 참여했을 때 비구니스님들과 여성 불자들의 역량이 크게 결집되는 것을 보았다. 대소승과 승속을 떠나 대동제처럼 하나의 축제의 장이 되어, 여성불자들이 비구니승가를 리드하고 또 비구니승가가 여성불자들을 리드하는 등 서로 협력하는 모습에 크게 감동 받았다. 

불교계에서는 1994년을 ‘종단개혁의 해’라고 부른다. 당시 나는 거대한 담론을 제기하기보다 다른 문제를 제기하며 개혁에 참여했었다. “비구니스님들과 재가불자들이 종단의 중요정책에 참여할 수 있게 하고, 비구니 본사도 설립해 비구니스님들의 도제양성과 권익을 위해서 힘쓰자”는 것이었다. 종단의 이부대중으로, 또는 양성인 비구·비구니 차별을 두지 않는다는 명분은 나를 그 현장의 한가운데 서게 했다.

그러나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비구니스님들의 수행환경이나 권익의 문제에 있어서는 큰 변화가 없다. 여러 약속들이 흐지부지 된 것을 보고 내 안에서는 가끔 반골기질이 다시 일어났다. 종단 안에서도 간헐적으로 참종권의 문제, 선거의 문제에 대한 욕구가 분출되었고, 여기에 참여를 권유받기도 했으나 섣부르게 종단의 문제에 나서거나 또 다시 속고 싶지 않았다.

다만 이렇게 장황하게 글을 쓰게 된 이유는 샤카디타 대회에서 논문 발제자 역할을 덜컥 승낙하는 바람에 고민이 커졌기 때문이다. 영어 발표는 두렵지 않다. 발음이 좋지 않으면 대본을 보면 된다. 종단 내 양성평등의 문제를 다룰 것인가, 결코 드러내고 싶지 않은 치부인 성폭력 문제를 다룰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컸다. 이런저런 고민 끝에 결국에 이 모든 것들은 종단운영의 기본 틀이 되는 종헌·종법의 문제에 도달하게 되었다.

종헌은 내 나이와 같이 제정된 지 환갑을 넘겼고 옷을 25번이나 갈아입었지만, 한 번도 비구니승가를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고 더 가부장적이고 남성중심적으로 견고해져 갔다. 종헌과 종법이 비구니스님들에게 불리하게 기울어져 있는 정도가 아니라 애초에 비구니스님들은 진입자체가 불가능했다. 물론 대부분 종교가 가부장적이고 남성중심의 시대에 탄생했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현재는 여성이 남성의 보호 아래 있어야 하는 대상이 아닌, 한 인간으로서 독립적인 존재로 인정받는 시대이다.

이미 사회에서는 남녀의 성역할의 구별이 없어진지 오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종단의 최고 리더자 또는 종무행정수반이 총무원장, 의결권을 가지고 있는 종회의원, 가장 민주적인 절차를 가지고 있다고 하는 산중총회, 주지 선출 등에 있어서도 비구니스님들은 진입할 수가 없다.

현대사회는 남녀노소 모든 계층 구성원들은 각자의 고유한 권리가 있다. 그럼에도 아직도 한국불교의 종단에는 비구스님들의 권한과 권리가 충만한 반면 비구니스님들은 의무만 있다는 생각이 자꾸 드는 것은 나만의 문제일까. 그래서 제18회 샤카디타 한국대회에서 ‘미래 한국불교를 위한 제언’을 하고자 한다.

진원 스님 계룡시종합사회복지관장 suok320@daum.net

[1685호 / 2023년 6월 2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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