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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불교사상과 개인주의-하

기자명 허남결

불교사상이 개인주의라는 지적은 무의미한 비판

유럽‧아메리카와 아시아‧아메리카 불교도 사이 작은 차이 존재
개인주의로 양 집단 구분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방식
개인적인 깨달음과 공동체 위한 보살행은 새의 양 날개와 같아  

개인주의와 집단주의는 배타적인 개념이 아니라 서로를 포괄하는 개념일 수 있다.  [법보신문]
개인주의와 집단주의는 배타적인 개념이 아니라 서로를 포괄하는 개념일 수 있다.  [법보신문]

‘개인주의’를 서구의 특정한 불교도 집단과 연관시키려는 움직임도 나타났다. 웬디 캐지(Wendy Cadge)는 유럽과 아시아 조상을 둔 미국 테라바다 불교단체들을 비교, 연구한 바 있는데, 그것은 개인주의와 집단주의의 민족지학적 원형들(ethnographic archetypes)을 찾으려는 시도였다. 그녀에 따르면 유럽·아메리칸 불교도들은 아시아·아메리칸 불교도들 못지않게 자신들의 집단 내·외부에서 활발한 인간적 유대관계를 맺으며, 사회문제의 개입과 해결에도 적극적이다. 그런 점에서 이들은 아시아·아메리칸 불교도들보다 더 개인주의적인 것은 아닌 셈이다. 유럽·아메리칸 불교도들은 개인의 선택을 강조했지만, 수행을 하는 동안 점차 공동체 지향적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개인의 자유를 중시한다는 입장에서 보면 변함없는 개인주의자들이다.

 케네스 타나카(Kenneth Tanaka)도 민족지학적 데이터에 바탕을 둔 2007년의 한 논문에서 유럽·아메리칸 불교도들과 아시아·아메리칸 불교도들의 종교적 특성을 분석한 바 있다. 그는 ‘개인주의’를 집단적 소속감과 제도적 수행보다는 재가 수행 및 개인의 종교체험을 더 우선하는 관점으로 정의한다. 타나카는 아시아·인종으로 구성된 불교도들이 유럽·아메리칸 불교도들보다 자신들의 영성 훈련을 개인이 아니라 집단으로 더 많이 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후자는 상대적으로 집에서 혼자 명상하는 경우가 많았고, 개인적 차원의 수행방식을 선호함과 동시에 교단이 요구하는 의무의 이행을 가볍게 여겼다. 다시 말해 아시아·아메리칸 불교도들은 공동체 지향적이었던 반면, 유럽·아메리칸들은 개인 지향적이었다. 타나카의 표현을 빌리면 유럽·아메리칸 불교도들은 외부 종교의 가르침들을 맹목적으로 수용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더욱 의미 있게 만들려는 진지한 성찰을 계속 시도했다. 

 한편, 스코트 미첼(Scott Mitchell)은 자신의 저서 ‘미국의 불교(Buddhism in America)’에서 여러 세대 동안 미국에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유럽·아메리칸 불교도들은 개인주의적이었지만 아시아·아메리칸 불교도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들이 제시한 데이터는 두 집단의 불교도들이 ‘개인주의적’이라고 불릴만한 많은 특징을 공유하고 있었다. 아시아·아메리칸 불교도들의 개인주의적인 측면을 다루고 있는 폴 눔리치(Paul Numrich)와 조셉 탐니(Joseph Tamney)의 저술도 두 인종집단의 공통성을 환기하고 있다. 이런 연구결과들은 ‘개인주의’가 인종집단의 종교적 성향 차이를 구분하기 위한 잠재적 근거로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함축했다.

 이 와중에 우리는 페미니스트 학자들 역시 개인주의란 개념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리타 그로스(Rita Gross)는 1993년에 출판된 ‘가부장제 이후의 불교(Buddhism After Patriarchy)’라는 책에서 남성적인 가치들과 여성적인 가치들을 가리켜 각각 ‘개인주의적’이자 ‘공동체주의적’이라고 설명한다. 그녀는 서구의 근대불교가 개인의 명상수행을 앞세우고, 개인 단위의 ‘자립(self-reliance)’을 강조하다가 불교 공동체의 ‘유지와 지원’을 외면하는 부작용을 낳았다고 비판했다. 그로스는 ‘개인주의’를 전근대 혹은 아시아 불교를 근대 및 서구 불교와 구별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현재의 비사회적 불교를 미래의 사회·지향적 불교와 분리할 목적으로 사용해야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이와 관련하여 앤 클라인(Anne Klein)은 ‘개인주의’가 비사회성과 자립 및 청정성(authenticity)을 지향한다고 서술한 바 있다. 글라이그(Ann Gleig)에게도 불교 근대주의자들은 ‘지극히 개인주의적’인 것으로 비쳤던 것 같다. 그것은 부당한 사회질서의 개혁에 도전할 용기가 없는 소극적 개인주의였다. 말하자면 근대불교는 개인적 자아의 사회문화적 배경과 근본적 부정의에서 나오는 집단적 고통을 무시하고, ‘다양성과 포괄성’을 도모하지 않으려는 종교적 태도였다. 이는 인종적인 것과 무관한 정의로운 일이나 사회·참여적인 외부로부터의 마음집중(external mindfulness) 등에 관심이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런데 학자들의 공통적인 의견에 따르면 근대불교와 포스트모던 불교는 개인주의적인 요소들을 상당 부분 공유하고 있다. 글라이그가 말하는 포스트모던 불교도들은 합리적인 개인주의를 떠올리게 한다. 그들은 무엇보다도 개인의 자유와 인격적 권위를 높게 평가했다. 요른 보럽(Jorn Borup)은 2020년의 한 논문에서 포스트모던 불교도들이 추구하는 집단주의가 역설적으로 개인주의적일 수도 있다는 논평을 한 적이 있다. 보럽은 포스트모던 불교도들의 ‘집단주의’가 새로운 버전의 포스트모던 개인주의일지도 모른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개인주의’의 역사는 논쟁의 연속이었다. 대부분의 서구 불교도는 그들의 정체성과 수행의 양식이 무엇이든 간에 합리적이고 다양한 측면의 개인주의적 가치를 모색한다. 그들은 상황에 따라 명상수행이나 신자유주의적 신념들을 포기할지 몰라도 개인의 자유와 권위 및 자기표현과 청정성은 끝까지 유지하려고 했다. 그들은 누구보다도 공동체와 사회적 참여의 가치를 기꺼이 승인한다. 그리고 자신들이 어떻게 범주화되든 간에 각자가 속한 영역에서 말 그대로 다양성과 융통성을 표방하고 있다. 이는 우리가 ‘개인주의’라고 불리는 관점을 토론의 주제로 삼았던 이유이기도 하다.

 어떤 불교도들은 공동체의 일을 자신의 다른 일보다 더 진지하게 고려한다. 또 다른 불교도들은 개인 차원의 수행을 승가 수준의 신행보다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렇다면 그들은 집단주의적인가? 아니면 개인주의적인가? 대답하기에 앞서 우리는 이 두 요소가 서로 배타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서로 포괄적일 수 있음을 전제할 필요가 있다. 이쯤에서 우리는 스스로 개인주의적인가? 라는 물음을 던져 볼 때가 아닌가 싶다. 진정한 불자라면 누구나 깨달음이라는 개인적 목적을 추구함과 동시에 다른 뭇 생명을 향한 보살행의 실천을 서원하고 있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어쩌면 불교사상이 ‘개인주의’라는 지적은 실로 무의미한 비판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허남결 동국대 불교학부 교수 hnk@dongguk.edu  

[1685호 / 2023년 6월 2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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