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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경수행 송창임(원각성·37) - 하

기자명 법보

통증 참으며 한 글자씩 사경 시작
1000일 기도 회향 후 허무감 들어 
목표 두지 않고 매일 정진하기로
충분히 정진해 당당한 불자 될 것

평소에 걷거나 앉고 설 때 허리와 다리 통증이 상당했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2020년 봄, 결국 길에 주저앉고 말았다. 

초기에 치료받지 않은 게 결국 곪아 터진 것이다. 선천적 일자허리로 인한 디스크 증상과 더불어 ‘무릎 힘줄염’진단을 받았다. 도저히 다리를 땅에 딛을 수 없었고, “당장 입원치료를 하지 않으면 수술을 해야 한다”는 의사의 간곡한 권고에 2달간 병상에 눕게 됐다.

입원을 위해 짐을 챙기기 시작하며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은 절망에 빠졌다. 수술이라도 하게될까봐 무서웠다. 혹시나 잘못하면 ‘다시는 걷지 못 할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과 ‘혹시나 완치가 되지 않으면 어쩌지’하는 망상도 몰려왔다. 차가운 병실에서 시간을 보내기 위해 이것저것 챙기려던 것들을 모두 내려놓고 그토록 지겨워했던 사경지를 찾아 가방에 넣었다.

치료받는 동안 시간이 날 때마다 사경을 했다. 어릴 적 했던 사경은 힘들고  재미 없었는데, 통증을 참고 한 글자씩 새겨나가자 그 어떤 기도보다 몰두할 수 있었다. 한 스님께 ‘다른 사람을 위한 기도를 하면 그 기도 원력의 70%는 내게 돌아온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있다. 그 덕분이었는지 2달을 넘길 것이라 예상했던 치료일정이 1달 반으로 앞당겨졌다. 1000일 기도도 무사히 마칠 수 있었고, 역시나 덕분이었는지 엄마도 무탈히 삼재를 넘겼다.  

1000일 기도를 회향하니 어딘가 허전했다. ‘나를 위한 기도’는 손에 잡히지 않았고, 돌아가신 친구의 아버지를 위하거나 심리적으로 힘들어하는 친구의 평안을 바랄 때만 겨우 손에 잡혔다. 가끔씩 짧게 수행할 때는 잠깐이나마 집중할 수 있었으나 조금만 길어져도 정신이 흐트러졌다.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정진을 계속하는 게 맞는지 의문이 들었다. 스님들께 자문을 구해보았지만 “잠시 쉬어가는 것도 좋다”는 말씀뿐 명쾌한 답이 되진 않았다. 스님의 조언대로 잠시 쉬어가는 것도 방법일 것이다. 그러나 모두 내려놓고 싶진 않았다. 무엇이든 시도해야만 했다. 

수개월을 고민하고 방황하다 내린 결론은 아무런 목표를 정하지 않는 것이다. 단순히 목표를 정해두고 수행하면 목표를 이뤘을 때 성취감이 오지만 반면 그만큼 허탈함도 커졌기 때문이다. 특별한 목표를 두지 않고 매일매일 정진하는 것에 목적을 두자 사경하는 것이 당연해지고 행복해졌다. 

최근에는 오래전 잠시 시도해봤던 불화가 생각나 사경과 함께 사불을 하고 있다. 경전을 필사하며 부처님을 손으로 그리고 색을 입힌다. 부처님의 오롯한 형상을 내 눈에 새기는 게 곧 수행이라 여기면서 말이다. 

마음 한 편에는 한 스님이 들어앉아 힘들 때마다 나를 어루만지며 기운을 북돋아 주신다. 초등학교 3학년 무렵 엄마가 전래동화처럼 얘기해주던 큰스님이다. 풍채가 아주 좋고, 법문 중에도 거침없이 호통을 치는 분이었다. 엄마에게 귀가 닳도록 스님 칭찬을 들으며 그렇게 대단한 스님을 언젠가 뵙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엄마를 따라 실제로 그 스님을 직접 뵙고 법문을 들었을 때, 눈앞에서 천둥을 맞이한 것 같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언젠간 스님께 꼭 따로 3배를 올리고 싶단 생각을 할 정도로 존경스러웠다. 

스님은 내게 항상 게을리 말고 정진하라고 강조했다. 

“하루에 반드시 30분 이상 꾸준히 정진하지 않는다면 진정한 불자가 아니요, 미신을 믿는 것과 같고 사찰은 산책 삼아 다니는 것과 마찬가지다.”

스님의 일성은 나를 수행의 길로 안내했다. 청년회에 다니며 지도법사로 모셨다. 당연한 듯 곁에 계실 줄 알았던 스님이 입적하신지 올해로 10주기가 된다. 스님께서 항상 강조하던 수행의 경지에는 한참 못 미치고 있기에 나는 아직 진정한 불자는 아닐지 모르겠다. 원력 높은 거사님, 보살님들처럼 한 가지 방법을 정해 수행하지도, 수십 년씩 꾸준히 정진하지도 않았기에 감히 수행자라는 단어를 입에 담을 수 없다는 생각도 든다.

누군가에게 나 자신을 설명할 때 부처님 가르침을 새기고 실천한다고, 절에 다닌다고 소개하지만 충분히 정진하지 않았음에 아직은 부끄러운 마음이다. 불자로써 당당해질 수 있도록 더욱 열심히 정진할 것이다.

[1685호 / 2023년 6월 2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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