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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오니, 더위가 찾아오는구나

기자명 하림 스님
  • 세심청심
  • 입력 2023.06.19 16:06
  • 수정 2023.06.19 16:07
  • 호수 1685
  • 댓글 0

선한·바른 일이라 믿었던 것도
돌아보니 나를 힘들게 한 갈애
지금껏 갈애가 삶 끌어왔으니
이제 수행 대상으로 삼아 정진

갑자기 날씨가 덥습니다. “왜 이렇게 덥나요?” 그랬더니 옆에 계시던 분이 간단하게 말씀하십니다. “여름이니까요.” “그래요? 지금이 여름인가요?” 하니 “6, 7, 8월은 여름이고 3, 4, 5월은 봄이지요.” 합니다. 그러고 보니 지금이 봄인지 여름인지도 모르고 살아가는 저를 알아차리게 됩니다. ‘세월 가는지 모른다’는 말을 몸소 경험하고 있습니다. 

왜 이러고 사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한 번 들여다보았습니다. 제가 즐겁고 기분 좋은 장면이 어떤 것인지 찾아보았습니다. 얼마 전 공양간을 지나는데 밝은 웃음소리가 들립니다. 무슨 일인가 싶어 유리문으로 들여다보니 종무회의를 하고 있었습니다. 사제인 주지스님과 종무소 직원분들이 둘러앉아 즐겁게 대화하며 의견들을 나누고 있습니다. 그 모습을 본 저는 무척 기분이 좋아집니다. 드디어 나의 삶이 완성된 것 같았습니다. 보람이 있고 뿌듯했습니다. 

물론 사람마다 경험이 달라서 자기의 업식에 따라 다르게 느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의 과거를 돌아봅니다. 이런 기분을 언제 느꼈는가 살펴보니 대여섯 살 때쯤입니다. 먹을 것이 귀하던 시절 어느 날 엄마가 쑥떡을 해와 큰 양푼에 담아 식구 모두 방 한가운데에 둘러앉았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 큰형, 작은형, 누나와 남동생까지 일곱 식구가 둘러앉아 손으로 조금씩 떡을 뜯어 콩고물을 묻혀 먹고 먹여주고 했습니다. 이 장면이 가장 행복했던 저의 기억으로 가슴에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그런 모습이 아닌 상황을 너무 힘들어합니다. 사람 사이에서 다투거나 불편한 분위기가 있는 때에는 그 자리가 너무 고통스러워 도망가거나 아니면 차라리 나서서 그 일을 해결하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제 삶이 힘든 사람들을 찾아가서 그 관계들을 원만하게 하려 하고 그 일이 이루어졌을 때를 보람으로 삼고 살아가는 자신을 보게 됩니다.

삶을 다시 돌아보니 어릴 적에도 그랬던 장면이 떠오릅니다. 남원 실상사에서 초등학교로 통학할 때 학교에 가기 위해서는 넓은 논길을 걸어가야 했습니다. 모내기 철이면 논에 물이 필요해 멀리서부터 냇가의 물이 굽이굽이 흘러들어 옵니다. 논을 가득 채웠던 물은 모가 뿌리가 내려 벼가 익어갈 즈음이면 다시 빼기 위해서 물길을 닫아버립니다. 그동안 그 물에서 잘 놀던 작은 물고기들은 그때부터 물이 없어서 햇빛에 말라 갑니다. 논길을 걸어가는 등굣길에 그 물고기들을 보고 그냥 갈 수 없습니다. 물이 낮은 곳에서 깊은 곳으로 계속 옮겨 줍니다. 그러다 보면 점심때가 지나고 학교는 이미 늦어버립니다. 그래도 그것이 제겐 학교 가는 것보다 더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고등학교에서도, 대학에 가서도, 졸업하고 뉴욕에 가서도, 부산에 와서도 그런 역할들을 하기 위해서 열심히 살아왔던 것입니다. 

알고 보니 이것이 저를 끌고 가는 마차였습니다. ‘타인을 불편하지 않게 하고자 살아가는 삶’은 분명 좋은 방향이긴 하지만 그것이 과도하면 집착이 되고 애쓰게 되면 힘들어집니다. 그것이 나의 삶을 힘들게 하는 갈애(욕심)라는 것을 이제야 알았습니다. 선한 일이고 바른 일이라는 생각에 제가 속고 살았던 것입니다. 

권투 선수는 상대의 주먹이 올 때 그것을 분명히 보고 알 수 있다면 지혜롭게 대처할 수 있습니다. 어떤 상황을 볼 때 또 그런 갈애가 일어난다면 이제는 알아차리고 멈추어서 따라가지 않고 돌아서려고 합니다. 잠시 멈추어서, ‘이것이 또 나의 갈애가 나타난 것이고, 갈애가 힘을 쓰려고 하는 것이구나’ 하고 잘 알아차립니다. 그리고 갈애가 지나갈 때까지 잠시 멈춥니다. 지금까지는 그 갈애가 나의 삶을 끌고 가는 목표였다면 이제는 갈애를 수행의 대상으로 삼고 갈애를 벗어나는 삶을 살아가리라 다짐해 봅니다. 
 

이제야 정신이 차려집니다. “갈애야! 나타나거라! 나는 너의 정체를 분명히 알고 있으니 더이상 너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자신감이 듭니다. 그리고 지혜가 납니다. 

오늘은 이런 마음으로 하루를 살아가겠습니다.

하림 스님 부산 미타선원장 whyharim@hanmail.net

[1685호 / 2023년 6월 2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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