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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병원과 의원의 기원, 불교의 병방-4

기자명 이현숙

인도 마가다국 복덕의약사가 오늘날 병원의 기원

법현 스님 인도서 마주한 복덕의약사 상세히 관찰하고 기록
수말당초 혼란기에 가난한 이 위해 보시하는 비전 행위 유행
비전원이 치료도 겸하면서 당 현종대 비전양병방 전국 확대

1577년 건립된 일본 오이타 시의 후나이 병원 자리를 기념하는 청동상(좌). 1623년 ‘직방외기’를 쓴 줄리오 알레이니.(우)
1577년 건립된 일본 오이타 시의 후나이 병원 자리를 기념하는 청동상(좌). 1623년 ‘직방외기’를 쓴 줄리오 알레이니.(우)

5세기 초 중국 동진의 승려 법현(337~ 422)은 399년 장안을 출발하여 13년 4개월에 걸쳐 인도 여러 나라를 여행하면서 보고 들은 이야기를 기록한 ‘고승법현전’을 남겼다. 그는 당시 갠지스강 남쪽에 있는 중인도 최대 왕국 마가다(Magadha)국의 수도 파련불읍 즉 파탈리푸트라(Pātaliputra)에 머물면서 부유한 장자들과 불교도인 거사들이 가난하고 돌보아 줄 가족이 없이 병든 이들을 위해 운영하는 복덕의약사(福德醫藥舍)를 둘러본 뒤 “중인도에서는 이 나라의 도성인 파련불읍이 제일 컸다. 성안 사람들은 부유하고 융성하며 다투어 인의(仁義)를 행했다…이 나라의 장자와 거사는 각각 성안에 복덕의약사를 세워 중인도에서 궁핍한 이, 고독한 이, 장애인과 일체의 병자들은 모두 이 복덕의약사에 와서 여러 가지 것을 공급받았다. 여기서 의사는 병을 진찰하고 음식과 탕약을 주어 안락하게 하고, 차도가 있는 사람은 스스로 돌아가도록 하였다”라고 기록하였다. 부유한 불교도들에 의해 운영되던 빈민병원 또는 자선병원이라고 할 수 있는 마가다국의 복덕의약사는 오늘날 병원의 기원이라고 할 수 있다.

법현이 복덕의약사를 소개하면서 중국의 부유한 불교도들이 이를 본받기를 기원하였을 것이다. 실제 가난하며 병든 비전(悲田)을 돌보라는 불교의 가르침은 중국 남북조 시대에 큰 영향을 끼쳐, 승려와 불교도들이 가난하며 병든 자를 보살피는 것은 상례가 되었다. 위나라 영원장군 후막진인(侯莫陳引)은 본래 한나라 중산정왕(中山靖王)의 아들로서 한나라가 멸망한 뒤에 풍국(豊國)을 소유하여 후(侯)로써 성씨를 삼았는데, 인도의 기원정사를 본받아 기원사를 만들어 항상 재(齋)와 강(講)을 영위하고, 가난한 자들을 위한 비전(悲田)을 베풀도록 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변정론’4권) 또한 수말당초의 승려 정묵은 열반할 때 자신이 가진 재산을 제자 덕미에게 위탁하여, 덕미는 이를 바탕으로 가난한 자들을 위해 비전을 하였고, 또 늦여름이면 동이 가득 돈을 담아 널리 보시하였다.(‘법원주림’86권) 이외에도 당나라 초기 장안의 보광사(普光寺) 법상(法常)은 자신이 입고 먹는 의복과 음식은 낡고 거칠었으나 해마다 장안에서 비전(悲田)을 위한 보시 모임을 열었다.(‘속고승전’ 15권) 

이처럼 수말당초의 혼란기에 승려들 사이에서 가난한 자들을 위해 먹을 것이나 입을 것을 보시하는 비전 행위는 매우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가난하여 굶주린 자들은 대부분 병자이기도 하였으므로, 비전원은 점차 병자 치료도 겸하게 되면서 비전양병방이 되었다. 즉 당 왕조가 안정되자 장안과 낙양 지역을 중심으로 국가적인 재정 지원 하에 상설화되었으며, 당 현종대 전국적으로 확산된 것이 바로 비전양병방 제도였던 것이다. 

서양의 경우, 고대 로마 제국에서 전투 중 발생한 아픈 병사를 치료하기 위한 병원[valetudinarium]을 운영하였으나, 인도나 중국처럼 가난한 병자의 치료를 위해 숙식을 제공하는 자선 병원은 기독교가 보편화되면서 시작되었다. hospital의 어원은 라틴어의 hospitalis에서 유래하였으나, 로마시대에는 여행자들이 묵는 숙소를 의미하였다. 여행하다가 병에 걸리면 머무르고 있던 숙소에서 치료 받을 수 밖에 없었으므로, 게스트 하우스라는 뜻에서 점차 병원이라는 의미로 쓰였던 것으로 보인다. 

16세기 들어 기독교를 선교하기 위해 동아시아에 파견되었던 선교사들 가운데 1557년 포르투갈의 제수이트 교단 소속의 루이스 데 알메이다(Luis de Almeida)는 후나이(府內, 현재 오이타현 오이타시)에 서양식 병원을 세웠는데, 이는 일본 최초의 병원으로 알려져 있다. 드 알메이다는 포르투칼의 해외거점에 있던 인도 고야에서 8년간 향신료 무역에 종사하며 자산을 축적하였는데, 외과의사이기도 하였다. 그는 분고노쿠니(豊後國)의 영주 오토모 소린(大友宗麟)의 허가를 받아 후나이 병원을 설립하였는데, 내과 환자와 나병 환자를 위한 병동으로 나누었다고 한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본을 통일한 이후 일본 내에서 병원의 설립이 이어졌다. 1585년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가 통치하던 사카이 지역에 나병원(癩病院)이 설립되었으며, 1591년에는 나가사키에도 나병원이 설립되었다. 당시 나병원이란 나병 환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성 나자로 병원이라는 의미였다. 이처럼 유럽에서 온 의료선교사들은 일본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진료기관을 건립하면서 ‘병원’이라는 용어를 자연스럽게 사용하였다.  

그런데 제수이트 교단의 선교사로서 중국에 파견되었던 줄리오 알레니(Giulio Aleni, 1582~1649)가 1623년에 편찬하였던 ‘직방외기(職方外紀)’권2에서, “[유럽에는] 또 병원이란 것이 있으니 큰 성에서는 많아 그 수가 10여 곳에 이른다. 중하원은 중하의 사람들이 거처하며, 대인원은 귀인들이 거처한다. 귀인과 나그네, 국왕의 명을 받드는 사신 같은 사람들이 질병을 만나면 이 원(院)에 들어온다. 원은 일반 집들보다 배나 아름다운데, 필요한 약물은 모두 우두머리가 관장한다. 미리 이름난 의사들을 갖추어 날마다 병자를 진료한다. 옷과 이부자리 장막 등과 간호하고 돌보는 사람들이 여럿 있다. (환자는) 병이 나으면 떠나는데,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양식과 여비를 지급한다. 이는 국왕과 대가(大家)들이 설립하는데 혹 성 안의 사람들이 모두 힘을 모아 만들기도 한다. 달마다 돌아가며 한 명의 대귀족이 그 일을 총괄하는데, 약물과 음식은 모두 친히 스스로 점검하고 살핀다”라고 유럽의 hospital을 소개하였다. 

줄리오 알리니는 1613년 중국에 파견되어 36년간 선교하다 1649년 복건성에서 사망하였다. 그는 유럽의 지리학적 지식과 문물을 중국에 소개하기 위해 한문으로 ‘직방외기’를 썼는데, 유럽의 대도시 모습을 소개하면서 국왕과 귀족의 후원 하에 운영되었던 hospital을 ‘병원’이라고 번역하였다. 그는 병원의 개념으로서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가 있으며, 약을 공급하고, 공간적으로는 일반 집보다 배나 좋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요컨대 16세기 동아시아에 온 제수이트 선교사들은 유럽의 문물을 소개하는 책을 저술하거나 유럽식 hospital을 선교하는 지역에 만들면서 이를 ‘병원’이라고 이름하였다. 이는 고대 불교 사찰 내에서 아픈 승려를 치료하던 ‘병원’이라는 공간에 유래하여 당나라 때 가난하고 병든 자들을 위해 승려들이 국가적 지원을 받아 ‘양병원’을 운영하던 역사적 발자취에 따른 것이었다.
      
이현숙 한국생태환경사연구소장 rio234@naver.com

[1686호 / 2023년 6월 2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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