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석종사 금봉선원장 혜국 스님

번뇌망상 붙들지 말고 그저 손님처럼 맞았다가 떠나게 하라

이미 흘러가 없는 것을 붙들고 네편 내편 나누는 게 번뇌 망상
우리의 삶 역시 오온개공이라고 하는 조건에 따라서 변해갈 뿐
나와 다르다고 적이 아니라 생각이 다를 뿐임을 알아 삶 바꿔야

혜국 스님은 “우리 모두는 평등함에도 습관의 차이 때문에 서로 다를 뿐”이라고 설명했다.
혜국 스님은 “우리 모두는 평등함에도 습관의 차이 때문에 서로 다를 뿐”이라고 설명했다.

저는 ‘10년 앞을 내다보면 10년 동안 외로울 수밖에 없고, 100년 앞을 내다보는 사람은 100년 동안 홀로 일 수밖에 없다’는 말을 참 좋아합니다. 진병길 원장이 10년, 100년을 내다보고 이 신라문화원에서 문화 관련 일을 시작한 것을 처음부터 지켜봤습니다. 마음이 좀 아릴 때가 있었고 조마조마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니 진 원장님 아버지, 어머니, 가족들이 볼 때 얼마나 마음이 힘들었을까 싶습니다. 저렇게 이해관계가 없는 순수성을 가지고 가는 길은 정말 어렵습니다. 진병길 원장님이 30년이라는 세월을 해온 문화 사업이 모두에게 마음의 농사가 돼서 이 나라에 문화의 꽃이 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는 오늘 나와 남이 둘이 아닌 서로 다름을 인정해 주는, 그러한 문화를 활용하는 방법을 부처님 법에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어느 학인이 육조 스님께 ‘어떻게 하면 나와 남의 갈등을 뛰어넘을 수가 있고, 어떻게 하면 온 인류가 평화의 꽃을 피울 수 있습니까?’ 하고 묻자, 육조 스님 대답은 ‘앞생각을 끊어버려라’였습니다. 저는 전에는 앞생각을 끊어버리라 하면 저게 무슨 말인가 뜬구름 잡는 소리처럼 들렸고, 왜 그렇게 어렵게 말씀을 하시나 하고 생각을 했습니다. 성철 큰스님 모시고 해인사에서 그렇게 오랫동안 살 때도 무슨 도를 물으면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하면서 알쏭달쏭하니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은 저런 어려운 말씀을 할까 했는데, 지금 와서 보면 그게 정답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육조 스님께서 한 앞생각을 끊어버려라 하는 말은 무엇일까요. 오늘 여기 오면서 낙동강을 건너왔습니다. 제가 이제 여러분에게 낙동강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하고 물으면, 모두들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없습니다. 그 낙동강은 벌써 바다로 흘러갔습니다. 오늘 아침 오면서 본 그 강물은 없어졌습니다. 그 강물만 없어진 것이 아니라 내가 보던 모든 산천 경계나 내 얼굴이나 여러분 얼굴이나 시시각각 흘러간 강물과 같습니다. 어제까지 있었던 것은 지금 없는데, 우린 이미 흘러가서 없는 것을 가슴에 딱 붙들고 있습니다. 그게 네 편과 내 편으로 나누는 번뇌 망상입니다. 그렇게 번뇌 망상이라고 하는 생각의 감옥이 있다면, 우리는 그 놈을 붙들고 있는 것을 놓는 의식개혁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신라문화원의 문화운동으로 이어져야 할 것입니다. 

육조 스님이 말씀하신 ‘앞생각을 끊어버려라’는 말을 아랍의 유명한 시인 잘랄루딘 루미의 ‘여인숙’이라는 시에 비춰보면 인간의 존재는 여인숙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매일 아침 새로운 손님이 찾아옵니다. 때로는 기쁨, 때로는 슬픔, 때로는 절망 그 모두를 정성을 다하여 맞으라.’는 것인데, 내 안에 들어오는 모든 번뇌 망상 감정이라는 손님을 손님으로만 맞아들이면 번뇌 망상은 떠나게 돼 있습니다. 갈등도 떠나게 돼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떠나는가? 내 마음 안에 있는 모든 갈등과 근심, 걱정은 흘러가버린 강물인 줄 모르고 내가 붙들고 있기 때문에 갈등‧근심‧걱정인 것입니다. 흘러가서 이미 없는 것을 붙들고 있는 나에게 원인이 있다는 것을 아는 순간, 내 안에 있는 모든 감정은 주인이 아니고 손님인 것입니다. 손님은 붙들고 있지 않으면 떠나게 돼 있습니다. 

그러면 그러한 것이 이 경주의 찬란한 문화 속에 사는 사람들의 정신문화까지 이어지려면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나라에서, 도에서, 시에서 지켜주기를 바라는 것들을 내가 가정에서 먼저 실천하면 됩니다. 내가 하나씩 해 나가면 시, 도, 국가까지 이어지게 될 것이고, 내가 하지 않으면 그것은 곧 공염불이 되고 말 것입니다. 나부터 달라지자는 말입니다. 

여러분이 가정에서 겪는 갈등은 나는 내가 옳다고 하고, 아들 딸은 자신들이 옳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옳다는 것을 인정받으려면 아들 딸이 옳다는 것을 먼저 인정해 주면 됩니다. 참새 다리와 황새 다리가 길고 짧고의 차이는 있지만 그것이 평등하다는 것을 알고, 우리가 마음의 눈을 뜰 때 ‘크고 작고’ ‘너다 나다’ 하는 것이 있는 그대로 평등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지금까지 나만 옳다고 생각을 했다면 그것은 내 고집일 뿐입니다. 

우리는 전쟁을 겪은 후 험난한 길을 헤치고 이만큼 성장했습니다. 여기에 문화적으로 마음을 돌려서 내 마음에 ‘나는 어떤 문화를 가꾸고 있는가’ 하는 생각을 해야겠습니다. 내 정신은 ‘문화라고 하는 조상들의 얼’을 우리가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그에 따라 세상을 보는 가치관과 인생관도 달라질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일평생 사는 것이 눈 딱 감는 날 정말 바둑 한 판입니다. 지금처럼 아들 딸 꽉 붙들고 안 놓아주면 안 됩니다. 아들 딸에게 집착하지 말고 ‘내가 누구인가’를 찾는 마음 농사를 짓고, 문화야말로 내가 직접 실행해야 하는 것이구나 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다면 내 가정이라고 하는 한 가정을 어떤 문화로서 씨를 심어 놓을 것인가? 이런 고민을 해야 합니다.

우리 중생들은 씨앗은 안 심고 열매만 찾으려고 합니다. 여러분들이 아들 딸에게 조금 더 행복하고 좋은 나라의 이 허공을 느끼도록 하려면 자녀들에게 내가 너희를 인정하듯이, 너희들도 네 것만 옳다고 하는 것은 고집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지금 각자 자기 생명이 있으니까 이렇게 말을 하고 또 듣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생명은 지금까지 내가 만들어 온 것이 아닙니다.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가 만들어 놓은 산소를 호흡을 통해 빌려 쓰고 있는 것입니다. 이 생명은 그렇게 빌려다 쓰는 생명이고 물에서 빌려온 생명이고 대지에서 나온 음식과 태양에 준 열량을 빌려다 쓰고 있는 것입니다. 그 생명의 원천에서 볼 때 우리가 빌려 쓰는 생명이나, 꽃 같은 생명이나 한 생명입니다. 하물며 가족들이 내 마음대로 되길 바라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내 몸도 늙고, 아프고, 죽는 것을 내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가족이 내 마음대로 되겠습니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뿐이고, 되고 안 되는 것은 흘러가는 강물처럼 인연법으로 두어야 합니다. 이게 앞생각을 끊어내는 생각입니다.

그 앞생각을 끊어낸다고 하는 것은 부처님 법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온 인류가 문화라는 조상들의 얼을 되살려서 우리 몸을 살려가는 것입니다. 저는 가만히 내 몸을 돌아보면 너무나 신비롭습니다. 이 조그마한 몸뚱이의 혈관 길이가 지구를 두 바퀴 반을 더 돈다고 생각을 하면 내 몸 안에 우주가 다 들어있는 것과 같습니다. 이 우주가 들어 있는 이 에너지가 한번 성을 낼 때는 그 온 에너지가 불타게 됩니다. 또 한 번 행복감을 느껴 “고맙소” 할 때는 내 몸 안에 있는 우주가 미소를 띠게 됩니다. 그러니 내 마음의 강물은 영원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조상의 얼과 내가 둘이 아니고, 나와 남, 나와 남편, 나와 가족이 둘이 아닌 그 이치를 바로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물은 H분자 두개와 O분자 한 개가 합쳐진 것입니다. 그런데 영하라고 하는 기후조건이 이 주위에 오면 이 물은 얼음이 됩니다. 그리고 영상이라고 하는 기후 인연이 오면 다시 물이 됩니다. 100도가 넘는 기온이 오면 이건 수증기가 됩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저놈이 ‘나쁘다 좋다’ ‘있다 없다’ 이런 개념으로는 인류 문제는 해결이 안 된다고 했습니다. 물이 ‘있다 없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조건에 따라서 물이 되기도 하고 얼음이 되기도 하고 수증기가 되기도 하기 때문에 얼음이라는 게 없는 게 아니라 얼음이 분명히 있지만 실체가 없고 물이 분명히 있지만 물이 실체가 없기 때문에 그것을 공이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이 가정생활하고 이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갈 때, 오온 개공이라고 하는 조건에 따라서 변해나가는 것이지 나쁜 사람이라고 영원히 나쁜 게 아니고 좋은 사람이라고 영원히 좋은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너무 멀리 보지도 말고 너무 가까이 보지도 말아야 합니다. 내면은 완벽하게 평등한데 습관의 차이이기 때문에 서로 다름일 뿐이지 저놈이 나쁜 놈이 아닌 것입니다. 

따라서 어떠한 경우든지 나라에서든 국회에서든 도에서든 시에서든 나와 생각이 다른 내 형제인 것이지, 나와 전혀 틀린 없애버려야 할 적으로 보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생각이 다른 내 형제들이라 생각해야지, 없애버려야 할 적은 이 지구상에 없습니다. 오늘은 이 마음 하나만 분명하게 갖고 집에 돌아가서 이러한 문제를 내가 점점 내가 삶으로 바꾸려 노력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진병길 원장님의 노력을 이해하고 참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문화재를 활용하는 일에 직접 참석을 해 보면 ‘조상들이 저러한 길을 걸었을 때는 그게 바로 내 안에서 내가 했던 일이구나, 경주 천년의 역사는 조상들이 한 게 아니라 내 안에 있는 내 DNA가 했다’는 것을 분명하게 믿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 경주가 있음으로 인해서 우리나라 모든 백성들이 경주 천년의 도시가 있다는 그 행복감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삶의 불편함을 이겨내고, 또 밖에서는 경주 사람들이 일상을 살아가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해주면서 서로를 존중해 나갈 때 천년의 문화는 우리 삶과 하나가 되고, 조상과 나도 하나로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부디 문화가 내 삶이 돼서 정신문화로 이어지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오늘 얘기를 끝내도록 하겠습니다.

정리=윤지홍 지사장 fung101@beopbo.com 

[1686호 / 2023년 6월 2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