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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는 성평등 종교인가

불교는 성 차등을 근본으로 하는 종교인가? 아니면 출가 승단에서만 성 차등을 인정하는가? 수행자로서 남성과 여성은 근본적으로 차등이 있는 것일까? 성 평등을 근본으로 하는 현대 사회에서 불교가 답해야 할 문제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답을 미루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문제의 뿌리는 출가 승단 안에서 비구와 비구니의 엄격한 차별에 있다. 출가자의 공동체인 승단은 어떤 의미에서는 가장 이상적인 조직사회이며, 재가자들이 본받아야 할 모범적인 공동체라는 성격을 지니고 있기에 이 문제는 더더욱 근본적인 물음이 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애매모호하게 넘어가고 있는 것은 종교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계율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계율을 정면으로 부정하거나 의심하는 것은 종교의 바탕을 흔드는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계율의 묵수는 건강한 종교를 이루는 장애물일 수 있다. 지범개차의 중요성은 불교 안에서 가장 중요한 일로 여겨져 왔으며, 현실적 조건에 맞는 적절한 변용을 통하여 교단이 유지되고 불교가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한 가운데는 정말 근본적인 혁신도 있었다. 모든 힘을 수행에 쏟는 출가자가 생계를 위한 노동을 한다는 것은 근본 계율을 어기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지만 백장 회해선사는 ‘노동하지 않으면 먹지 말라’는 청규를 통해 동북아의 바뀐 현실에 알맞은 변혁을 이룩하였다. 소금을 저장해 놓고 먹는 것이 무소유의 계율에 어긋나지 않는가를 따졌던 계율논쟁의 역사가 있다. 우리의 승단이 수많은 재산을 지니고 있는 것은 이런 계율의 역사에 비추어보면 얼마나 큰 변용을 거친 것일까? 현대의 발달된 연구를 통해 밝혀진 것에 비추어 본다면 모든 계율이 부처님의 입에서 바로 나온 것이라는 ‘금구직설(金口直說)’의 믿음은 오히려 맹신에 가까운 것이다. 계율 또한 시대적 산물이다. 그렇기에 바뀌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오직 비구와 비구니의 엄청난 차별에 대한 계율은 절대로 바꾸면 안 되는가?

‘유마경’에는 “그대는 그렇게 신통과 변재가 뛰어난데 어찌 여전히 여자의 몸을 지니고 있는가?”하고 묻는 사리불을 여자의 몸으로 바꾸어 놓고 “스님은 왜 여자의 몸을 하고 계십니까?”하고 묻는 천녀(天女)가 있다. 여성, 남성이라는 것이 환술사가 빚는 꼭두각시와 같다는 위대한 발언이 나온다. 그것이 우리 현실을 바꾸어 나가야 할 근본적인 원리이며 불교의 입장이다. 당시에는 극심한 남존여비라는 조건에 제약받아 그 원리를 다 실현하지 못하였다 하자. 그런데 남녀평등이 온전하게 실현되고 있는 이 현실의 조건 속에서도 여전히 그 원리를 실현하지 못할 이유가 무엇일까? 

여성이 사람 취급 받지 못하던 시절, 여성 수행자를 받은 일은 성평등 역사에 혁명이 아니었을까? 당시 조건에서는 덥석 받아들이지 못해 몇 번의 시험과 조건이라는 관문을 내걸어, 그것으로 당시 사회의 반발을 무마시킨 부처님의 고심이 있으셨던 것은 아닐까? 이런 필자의 생각이 주관에 치우친 혐의는 있을지라도, 한 번쯤 우리의 불교 현실을 뜯어보는 작은 시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비구니스님들은 권리 없고 의무만 있나”(법보신문 6월 21일자)라는 진원 스님의 글을 읽고부터 계속 필자의 뇌리를 사로잡고 있는 문제들에 대한 소견을 밝혀본 것이다. 상당히 어려운 조건 속에서 그러한 글을 쓴 스님은 얼마나 큰 용기를 냈을까. 또 그 글 때문에 곤욕을 치르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해 작은 성원이라도 보내드려야 할 것 같은 의무감 또한 있었다. 참으로 어려운 문제이기에 쉽게 결론을 내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문제 제기조차 거의 없다는 것은 참으로 우리 불교의 미래를 암울하게 만드는 것이다. 비구니스님들의 큰 활동이 필요한 이 시대에, 그분들을 의기소침하게 하는 현실에 대한 근본적인 검토의 필요성이 부정되어서는 안 된다.

성태용 교수 tysung@hanmail.net

[1687호 / 2023년 7월 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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