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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으로 가는 길에 없는 ‘문’을 만들다

  • 불서
  • 입력 2023.07.05 17:42
  • 호수 1687
  • 댓글 0

한권으로 읽는 무문관
무문혜개 편저‧혜원 역해 / 김영사  / 376쪽 / 2만원

선종 3대 공안집 ‘무문관’, 강의 실력 버무려 현대 언어로 해설
학문적 깊이에 교육현장서 터득한 전달 방식 ‘여래지’로 이끌어

선으로 들어가는 문을 문 없는 문, 즉 무문(無門)이라 한다. 안거 동안 방문을 걸어 잠그고 수행하는 선방을 보통 무문관(無門關)이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문을 닫아걸었으니 문이 없는 셈이고 그래서 붙은 이름이다. 그러나 대도무문(大道無門)이라는 말이 있듯이 큰길에도 또한 문이 없다. 선의 길을 대도무문이라 말하는 것은 깨달음이나 진리에 이르는 데에는 정해진 길이나 방식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의 길은 문 없는 문을 찾는 무문(無門)의 길이다. 그래서 선은 백척간두진일보(百尺竿頭進一步)까지 나아간 뒤 벽을 부수어 문을 만들거나, 아니면 문 없는 큰 길에서 스스로의 문을 찾아야 하는 역설이다.

‘한 권으로 읽는 무문관’은 국내 비구니 박사 1호이자 반세기 넘도록 선학연구에 매진해온 정통 선학자 혜원 스님이 전문 선학자로서의 학문적 업적과 귀에 쏙쏙 박히는 뛰어난 강의 실력을 버무려 선종의 3대 공안집인 ‘무문관’을 현대적인 언어로 해설해 냈다. 

여기서 공안(公案)이란 스승과 제자 사이에 주고받은 깨달음의 대화를 채집하여 수행의 교본으로 삼은 정형화된 선문답이다. 그리고 이를 한데 모은 것을 공안집이라 한다. 선종의 3대 공안집으로 꼽히는 ‘벽암록’과 ‘종용록’이 공안의 비평과 재해석을 통해 선의 이치를 밝힌 것이라면 ‘무문관’은 공안 하나에 온몸과 정신을 집중하여 본래면목을 막힘없이 환하게 꿰뚫게 하는 실천성이 강한 공안집이다. ‘벽암록’과 ‘종용록’처럼 문학적 기교가 강한 문학작품의 성격을 최대한 배제하고 오직 공안 참구에만 충실할 수 있도록 내용을 단순하면서도 명쾌하게 구성해 남송대 간화선이 크게 유행하는 계기가 됐다.

‘무문관’은 1228년 무문 혜개 스님이 하안거 동안 고금의 고승전이나 어록에 있는 고칙 48칙을 묶어 편찬했다. 특히 무문관의 첫 번째 관문인 ‘무(無)’자 공안은 공안의 백미이자 정점으로 48칙 공안의 완결판이다. 무문 혜개 스님이 떠난 지 800년이란 세월히 흘렀지만 지금도 선을 닦는 납자들은 ‘무’자 화두를 통해 오로지 한길로 가고 있다. 이를 통해 ‘무’자 공안이 선에 미친 지대한 영향을 미뤄 짐작할 수 있다.
 

국내 비구니 박사 1호이자 반세기 넘도록 선학연구에 매진해온 전통 선학자 혜원 스님이 '무문관'을 현대적 언어로 해설해 출간했다. 
국내 비구니 박사 1호이자 반세기 넘도록 선학연구에 매진해온 전통 선학자 혜원 스님이 '무문관'을 현대적 언어로 해설해 출간했다. 

무문 스님은 자신의 견해에 따라 공안을 선택한 뒤 각각 설명(評)을 붙이고 다시 짧은 시(頌)로 골수를 드러냈다. 그러나 한자로 된 설명과 시는 요즘 사람들에게 크게 도움이 되지 못하고, 무엇보다 800년이라는 세월의 먼지가 쌓이다보니 과거와 현재에 큰 간격이 생겨, 뜻이 서로 닿지 않게 됐다. 이런 ‘무문관’을 혜원 스님은 지금의 우리 말과 생각으로 풀어내, 선에 이미 들어섰거나 들어서려는 사람들에게 출입구를 열었다. 그러면서도 무문관이 가지고 있는 단도직입(單刀直入)의 단박하면서도 웅혼한 기상은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멀리 산 정상만을 바라보다보면 발밑의 개울이나 눈앞의 수목을 놓치기 쉽고, 변화무쌍한 풀 나무에 정신 팔다보면 길을 잃고 정상을 놓치기 쉽다. 그러나 깊은 학문적인 지혜와 교육현장에서 터득한 구수하면서도 핵심을 놓치지 않는 스님의 전달 방식은 정상으로 가는 내내 풀 한포기 놓치지 않으면서도 길 없는 길에서 미끄러지지 않고 끝내 여래지(如來地)에 이르게 하는 놀라운 안목을 제시한다.   

스님은 이미 선종 3대 공안집 중 ‘한 권으로 읽는 벽암록(2018년)’ ‘한 권으로 읽는 종용록(2021)’을 펴낸바 있다. 따라서 이번 책은 3대 공안집 강설 시리즈의 대미를 장식하는 의미 외에도 3권을 차례로 읽다보면 각각 기풍이 다른 공안집의 색다른 묘미를 맛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김형규 대표 kimh@beopbo.com

[1687호 / 2023년 7월 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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