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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선수행 홍준석(37) - 하

기자명 법보

명상힐링캠프 인연 이어가며
선칠수행 참가해 수행법 배워
화두 집중하며 두려움 해소돼
삼학·선지식 의지처 삼아 정진

한 친구는 이렇게 표현했다. ‘무해한 사람들’. 그 표현에 동의한다. 청년명상힐링캠프에서 마음 맞는 친구들을 사귀게 됐다. 여정을 마친 뒤에도 인연을 이어갔다. 배움과 성장의 여정을 함께하며 지지해 주는 벗은 의지를 발휘하게 했다.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의지, 나 역시 도움을 주고 싶다는 의지.

도반들과 선무도선요가강남센터를 찾아 채희걸 법사의 지도로 수련을 시작했다. 세계명상마을에서의 수업이 새로운 경험이었다면, 센터에서의 수련은 동작 하나하나의 의미와 느낌을 섬세하게 이해하고 느끼는 과정이었다. 온라인으로 명상 모임을 이어가기도 했다. 수요일 밤마다 각자 명상한 뒤 대화를 이어갔다.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명상을 바탕으로 어떤 삶을 살아가고 싶은지 등의 질문을 주고받았다.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당연하게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람들이 함께 한다는 건 정말이지 신선한 자극이고 고마운 일이었다.

세계명상마을 선칠수행에 참가하며 문경에 다시 방문했다. 8일간 오로지 참선과 법문만으로 일과를 보내며 핸드폰도 반납하고 묵언으로 지내야 했다. 하루 종일 스마트폰을 쥐고 사는 내가 해낼 수 있을지 망설여졌다. 그러나 더없이 소중한 기회였다. 청년캠프에서의 고양된 감정을 되살리며 별도 비용 지불 없이 무료로 지낼 수 있다는 것과 세계명상마을 선원장 각산 스님에게 수행 점검까지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은 다른 모든 걱정들을 사소하게 만들었다. 바쁜 일상에서 수행을 각오하고 온 사람들은 눈빛부터 다르게 느껴졌다. 이러한 분위기는 게으름과 태만의 충동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됐다. 끝끝내 규율과 침묵을 지키는 사람들, 옆자리와 뒷자리에서 오래도록 자리를 지키며 집중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몸과 마음을 다잡게 했다.

 본격적으로 안반선 수행을 시작했다. 숨을 지켜본다는 건 간단하면서도 어려운 일이었다. 숨에 닻을 내릴만하면 금세 또 다른 생각이 치고 들어왔기 때문이다. 일, 가족, 인간관계, 과거, 미래 걱정 등 주의는 대상과 시점을 초월해 나비처럼 날아다녔다. 그렇게 좌선하고, 걷고, 좌선하기를 반복하며 호흡을 관찰하던 어느 오후, 문득 입에 침이 고이기 시작했다. 숨이 달았다. 문경의 공기라서 더욱 달았을 것이다.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피었다. 느리지만 분명하게 앞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드디어 간화선을 배우는 날이 다가왔다. 어찌나 신났는지 노트 한 켠에 ‘드디어 간화선!’이라고 적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첫날부터 완전히 지쳐버렸다. 아무리 움켜쥐려 해도 주먹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 같았다. 다음날 각산 스님의 법문에서 특별한 실마리를 얻었다. 바로 ‘알고자 하는 마음’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나는 화두를 그저 골치 아픈 수학 문제를 풀듯이 머리를 싸매고 해결하고자 했다. 

화두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자 자연스레 몰입하게 됐다. 이 숨 쉬는 것을 지켜보는 놈은 누구인지 진심으로 궁금해졌다. 화두에 집중하던 어느 순간, 숨이 가빠지기 시작했다. 익숙한 감정이 시작됐다. 불안이다. 어디서부터 비롯되었는지 모를 기억과 감정의 덩어리가 의식에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두렵지 않았다. 나는 불안해하는 사람이 아니라, 불안을 지켜보는 사람으로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때는 나와 세상의 불완전함에 탄식하며 초월적 존재가 모두를 구원해 주길 원했다. 이제는 모든 것이 나로부터 시작된 것임을 명백하게 납득하고 있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기적을 일으킬 구원자가 아닌, 한발 앞서 걸으며 길을 보여줄 선각자였다. 계, 정, 혜 삼학을 닦으며 팔정도를 따라 걷는 선지식의 뒷모습이 곧 등대이자 의지처다.

지금도 종종 우울과 불안에 흔들리곤 한다. 세상의 부조리함과 삶의 무의미함에 냉소적이고 무기력해질 때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내 것이 아님을 안다. 잠시의 고요함에 머문다면 결국 지나쳐갈 감정의 조각일 뿐이다. 

어느 날 나에게 무엇이 몰아치든, 그날의 나는 무소의 뿔처럼 의연하고 자유롭게 흘려보낼 수 있을 것이다. 긴 시간을 지나왔지만 돌이켜보면 결국 머리에서 출발해 몸에 이르는 멈춤의 여정이었다. 그 모든 순간에 마음이 있었다. 

의도가 아닌 의지를 품고, 이 마음 하나를 부지런히 닦으며 살고 있다.

[1687호 / 2023년 7월 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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