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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마조의 선법 ➁ 평상심시도-상

기자명 정운 스님

마조서 비롯된 조사선 대표사상

일상에서 주체성 잃지 말고
자각적 삶을 일구라는 지혜
조사선 시대 주체의식 강조
인간 중심적 사고 대변한 선

마조 선사상의 중요한 테마는 평상심시도(平常心是道)와 즉심시불(卽心是佛)의 전개이다. 마음이 곧 부처요, 평상일상이 바로 도(道)의 전개인 것이다. 마조가 즉심시불을 강조하면서도 그 즉심시불이라는 언구에 떨어지지 말 것을 강조해 비심비불(非心非佛), 불시물(不是物)이라고 하였다. 마조 선법 가운데 먼저 평상심시도를 만나보자. 

선종사에 무자화두로 유명한 조주(778∼897)가 스승 남전에게 물었다. 조주의 ‘어떤 것이 도입니까?’라고 하자, 남전(748∼834)은 ‘평상심이 바로 도이다’라고 대답하였다. 평상심이 도라고 대답한 남전의 말은 스승인 마조로부터 비롯된 사상이요, 조사선의 대표사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먼저 평상심시도의 정의와 평상심의 수행면모, 마조가 대승경전에서 평상심의 전거를 어떻게 활용하고 수행의 본으로 삼았는지를 살펴보기로 한다.

‘평상심이 도’라는 조사선의 정의는 평범한 일상생활 속에 언제 어디서나 자기의 주체성을 잃어버리지 않고 자각적인 삶을 일구어 나가는 살아 있는 지혜이다. 마조 이후 조사선 시대에 가장 중시되었던 것은 인간 중심의 사상과 주체의식이 강조되었는데, 이 인간 중심 사고를 가장 잘 대변하고 있는 선사상이 바로 평상심시도이다. 평상심이란 인간 누구나가 갖추고 있는 근원적인 본래의 마음이요, 조작하거나 옳고 그름이 없는 평상시의 마음 그대로 도라고 정의할 수 있다. ‘전등록’에 실린 마조의 시중(示衆)을 통해 ‘평상심시도’ 정의를 보자.

“도는 수행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다만 더러움에 오염되지 않도록 하라. 무엇이 오염인가? 다만 번뇌로 조작해 취하고자 하는 분별심이 모두 오염이다. 만약 곧 도를 알고자 한다면 평상심이 바로 도임을 알라. 평상심이란 어떤 것인가? 조작, 시·비, 취사(取捨)가 없으며, 단멸·상주가 없다. 또한 범부라고 할 것도 없고, 성인이라 할 것도 없는 것을 말한다. … 다만 행주좌와와 형편에 따라 움직이고 사물에 접하는 모든 것이 도인 것이다. 그러므로 도라고 하는 것은 법계를 말하는 것이다. 갠지스강가 모래의 묘용(妙用)도 이 법계를 벗어나지 않는다.”

앞의 이 시중은 마조선의 사상을 단적으로 표현한다. 시중에서 살펴본대로 평상심은 인간의 평범한 그 마음을 지칭하는 것으로 자성이 청정하고 본래 구족되어 있는 마음이다. 즉 평상시의 마음이 아니라 이분법적으로 나눠진 분별심이 아니며, 깨닫지 못한 범부라고 할 것도 없고 깨달은 성현이라고 할 것조차 없는 그 마음을 지칭한다. 따라서 평상심, 그 자체가 곧 부처[卽心是佛]이므로 수행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道不用修]고 하는 것이다.

수행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도불용수는 마조가 처음으로 언급한 것이 아니다. 사공본정(667~762)은 도본무수[道本無修, 도는 본래 닦을 것도 없다]라고 하였고, 마조의 제자 백장은 무수무증[無修無證, 닦을 것도 없고, 깨달음도 없다]라고 하였으며, 마조의 제자 대주혜해는 일체법무수[一切法無修, 일체법을 닦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마조는 평상심시도로 제자들의 심지를 깨우쳤고, 후대 선종사에서도 평상심이 마조 사상으로 인식되어 졌지만, 실은 마조가 처음으로 언급한 설은 아니다. 즉 그는 ‘열반경’ ‘유마경’ ‘화엄경’ 등 경전에 근거를 들어 그의 선관(禪觀)을 정립한 것이다. 

마조는 이 평상심시도를 설하면서 일상적인 생활 속에서 불성 보기를 주장하였다. 평상심시도라는 주장은 본래 자성이 청정하고 구족되어 있는 불성이며, 다시 새롭게 수행을 완성시킬 필요가 없다. 그래서 “도는 수행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단지 오염시키지 말아야 한다”라고 정의하는 것이다.

마조가 말하는 평상심은 ‘기신론’ 사상으로 보면, 본각(本覺) 사상에 입각한 자성 청정한 마음이요, 닦아서 부처를 이루는 것이 아닌 깨달은 상태의 돈오(頓悟)에 입각한 마음이다. 곧 자성이 본래 구족되어 있으므로 선과 악의 경계, 옳고 그름, 청정하고 더러움에 대한 분별심만 없다면 그 자체가 도가 닦아져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본원 청정한 마음이기 때문에 수행을 필요로 하지 않는 도불용수(道不用修)라고 한다.

정운 스님 동국대 강사 saribull@hanmail.net

[1689호 / 2023년 7월 1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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