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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도 생각도 일어나면 사라지는 것

기자명 하림 스님

세상은 언제나 번뇌로 가득해
무엇을 택할지는 스스로 결정
걱정했던 일들 대부분은 기우
부처님 가르침 공부하는 이유

비가 많이 오는 날입니다. 아침공양 후 절 앞 명상센터에 앉아 창문으로 밖을 바라봅니다. 일찍부터 용두산을 오르는 사람들이 쓴 우산이 심심찮게 지나갑니다. 하늘에는 구름이 가득하고 비가 쏟아집니다. 그런데 이 공간에서는 누군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노래를 불러주고 비도 바람도 없이 무척 편안합니다. 벽 하나 사이로 다른 세상입니다.

세상은 늘 이렇게 함께하는가 봅니다. 번뇌가 가득한 세상과 번뇌가 없고 지극히 편안한 세상이 동시에 실재합니다. 주의를 어디에 두는가는 자신의 선택입니다. 빗속으로 나아갈지 편안한 이곳에 머물지는 내가 선택함에 따라 결정됩니다.

갑자기 방문을 열어 두고 나온 것이 생각납니다. 그 순간 걱정이 시작됩니다. ‘비바람이 들이칠 텐데 어떡하지! 방에 빗물이 들어올 텐데!’ 지난번 창문을 열어 두었다가 비가 들이쳐서 방에 물이 잔뜩 했던 장면도 떠오릅니다. 지금 가서 창문을 닫지 않으면 또 그런 경험을 하게 될 거라는 걱정과 염려가 머릿속에 가득합니다. 

바로 일어나서 문을 닫으러 갈까 하다가 그냥 이대로 앉아 있습니다. 잠시 그 생각들이 지나갈 때까지 기다려 보려고 합니다. 그랬더니 신기하게도 급했던 마음이 조금 진정됩니다. 창문을 닫지 않으면 큰일이 날 것 같았는데, 그 마음이 지나가고 나니 그렇게 급하고 큰일은 아니라는 통찰이 일어납니다. 물론 물이 들이칠 수도 있고 방 안이 빗물로 흥건해질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비록 그때 큰일이 있었어도 다시 생각해 보면 방에 들어온 물을 걸레로 닦아 냈던 장면이 떠오르고 며칠을 말렸더니 예전처럼 별문제가 없었던 것도 떠오릅니다. 걱정만 있는 줄 알았는데 돌이켜보면 그렇게 큰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삶을 돌아봅니다. 나를 편안한 이곳에서 험난한 바깥으로 끌고 갔던 일들의 거의 90%는 길게 보면 큰 문제들이 아니었습니다. 실제로는 일어나지 않은 일들이거나 지나친 걱정이었습니다. 이렇게 글을 쓰는 사이에 어느덧 비가 쉬고 있습니다. 바람도 심하게 불지 않습니다. 조금 전 쏟아지던 비도 결국 계속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됩니다. 

세상의 오랜 경험이 후손들에게 전해지고 전해진 지혜들이 있습니다. 부처님의 말씀도 그런 흐름 속에 있습니다. 누구든지 내가 고생한 길을 나의 동료나 후배들은 가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들이 지혜의 길을 잘 배우고 간다면 더 멀리 안전하게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세상의 경험이 담긴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일어난 것은 사라진다.” “생긴 것은 사라진다.” 부처님께서는 깨닫고 난 후 당신이 알아낸 만고불변의 진리를 말씀하십니다. 당연히 이해할 수 있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내가 그 관점으로 세상을 보는지에 대해 매번 점검해야 합니다. 조금 전에도 비가 오는 것을 보고 방문이 열렸다는 생각이 들자마자 과거의 생각을 떠올리고 걱정하고 미래에도 그렇게 될 거라고 걱정을 했습니다. 지금 현재에서 떠나려 했습니다. 이때 그 상황을 마주하며 ‘아! 이 생각도 번갯불처럼 일어나지만 사라질 거야!’라고 알아차렸던가 살펴보면 그러지 못했습니다. 다행히 잠시 멈추어서 그 마음을 바라보았더니 생각은 금방 지나간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겪는 수많은 번뇌는 생겨난 것이고, 생겨났기에 사라지는 것임이 틀림없다는 믿음으로 본다면 바깥으로 끌려가는 번뇌와 함께하는 시간은 줄어들 것입니다. 요즘 특히 주의를 끌고 가려는 게 너무 많습니다. 지금 이순간도 나타나는 그들에게 말해 봅니다. ‘나는 너의 정체를 알고 있다. 너는 생겼다가 사라지는 존재다. 그러니 나는 더이상 너의 손짓에 따라가지 않겠다. 나는 그때마다 부처님을 생각하고 가르침을 생각하며 함께 공부하는 도반들에 의지해서 살아갈 것이다.’ 

이것이 비 오는 날, 비를 맞지 않고 편안한 곳에 머무는 힘이 아닌가 싶습니다. 모두 붓다의 그늘 아래 평온하시길 기원드립니다.

하림 스님 부산 미타선원장 whyharim@hanmail.net

[1689호 / 2023년 7월 1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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