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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불교사상과 AI윤리-중

선한 의도 넘어 역설적 결과 방지 위한 가치 필요

개인이라는 자유주의적 개념은 하나의 철학적 허구에 가까워
궁극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서로 간의 관계적 역학 속에 가능
가상현실에서도 윤리 문제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자세 필요

2012년 영화 인류멸망보고서. 깨달음에 이른 로보트가 등장하는데 방향은 다르지만 인간을 넘어서는 AI에 대한 우려와 맥을 같이한다.
2012년 영화 인류멸망보고서. 깨달음에 이른 로보트가 등장하는데 방향은 다르지만 인간을 넘어서는 AI에 대한 우려와 맥을 같이한다.

테오도르 리차드: 오늘 당신은 AI에 관한 윤리적 논쟁에서 매우 본질적인 쟁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윤리적 고려의 기본단위였던 ‘개인’ 개념을 비판함으로써, 여러 세기 동안 서구의 사고를 지배해온 개체화와 깨달음이란 이상(ideal)의 관련성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AI가 추동하는 소셜 미디어 온라인 플랫폼에서 목격되는 작금의 영향력은 끊임없는 개인적 선택을 극대화하는 데서 나온다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습니다. 이는 우리를 두 가지 서사 즉, AI가 움직이는 시스템들의 자극을 받는 개인적 선택이 우리의 욕망을 끊임없이 충족시킬 수 있다는 서사와 우리가 이런 서사에 깊숙이 관여하는 과정에서 서로의 번성을 기원하거나 그와 같은 인식을 공유하지 않는다는 서사 사이의 긴장 속에서 멈칫하게 하는 하나의 역설을 만들어냅니다. 이 두 가지 서사는 우리의 뇌리와 우리를 둘러싼 세계 속에서 동시에 변주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은 스마트폰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이미 우리의 일상적 삶 한가운데로 깊숙이 들어왔습니다.

여기서 문화의 개념과 삶의 방식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에 대한 관념이나 세상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가에 대한 이념들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봅니다. 우리는 일찍이 요한 헤르더(Johann Herder)가 18세기에 ‘민중(folks)’ 문화는 한 공동체와 국가의 국경도 규정한다고 주장한 이래, 분리와 차별에 바탕을 둔 문화적 상호작용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해 왔습니다. 그때부터 우리는 우리와 다른 그들 및 나와 당신 사이의 경계선에 의해 결정되는 문화 정체성을 당연하게 생각했습니다. 이런 문화개념은 문화가 유동성(mobility)과 네트워킹(networking), 더 나아가 혼합(hybridization)을 통해 형성되어 왔다고 보는 역사적 관점으로부터 신랄한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독일 철학자 볼프강 벨쉬(Wolfgang Welsch)가 제시한 ‘문화교차성(transculturality)’의 이론에 따르면, 문화는 국경에 의해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과 무관한 문화적 요소들 속에서 나만의 것과 낯선 것 사이를 애써 구별하지 않는 태도로부터 결정적인 영향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벨쉬는 문화 간의 갈등에 토대를 두는 것이 아니라 두 문화가 공유하고 있는 공통 공간의 영역을 재발견하려는 노력이야말로 인류의 미래 과제가 될 것으로 보는 듯합니다. 이런 시대에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실천하면서 살아야 할까요?

피터 허쇽: 당신이 알고리즘에 의해 재단되고 있는(tailored) 개인의 선택을 비판한 부분은, 실제로 지적 기술이 처한 곤경 중의 하나인 이해관계와 그것의 중심에 놓여있는 가치들 사이의 갈등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실 ‘개인(the individual)’이라는 자유주의적 개념은 하나의 철학적 ‘허구(fiction)’에 가깝습니다. 그것은 ‘평등’이라는 허구와 더불어 그 안에서 규정되거나 부여되기도 하는 우리의 역할과 정체성, 그중에서도 젠더와 인종이 포함된 역할과 정체성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공간을 열어줬습니다. 그러나 허구가 아무리 강력하게 보인다고 하더라도 그것들은 타고난 수명이 정해져 있게 마련이며 제가 보기에 개인이란 개념은 머지않아 퇴장할 시점이 다가올 것입니다. 이런 상황은 지구가 태양계나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압도적인 증거와 부딪혔던 코페르니쿠스의 입장과 매우 유사하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이런 과학적 사실을 수용했던 인류는 천체물리학과 우주항공 분야에서 눈부신 성과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물론 아직도 우리는 태양은 아침에 ‘뜨고’ 저녁에 ‘지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누구도 지구가 자신의 축을 돌면서 동시에 태양을 선회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지 못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과학적 발견과 일치하도록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법을 배웁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지금 ‘개인적 실재(individual entities)’가 기껏해야 추상이거나 개념적 편의에 불과하다는 무수한 증거와 만납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궁극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서로 간의 ‘관계적 역학’이지 그 ‘관계’ 속에 들어있는 어떤 ‘사물들’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는 우리를 당신의 질문으로 되돌아가게 만듭니다. 우리는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요? 우리는 지적 기술이 가져온 곤경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우리는 평등한 인간의 미래를 과연 실현할 수 있을까요? 여기서 저는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한 의도로 포장되어 있다’라는 금언을 떠올려 봅니다. 

알다시피 선한 의도를 갖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갈등으로 가득 차 있거나 역설적인 결과를 초래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삶이 구조화되지 않는 가치 체계를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 여기서 불교는 우리 자신의 가치와 그 가치들의 의도적인 실천을 안내하고 지도하는데 필요한 수행법들을 제공해줍니다. 기본적으로 이러한 실천들은 일단 ‘의도의 자유(freedom-of-intention)’를 보장합니다. 그리고 자유롭게 관계를 맺는 일의 의미에 대한 가상현실적인 설명에서 ‘주목의 자유(freedom-of- attention)’를 허용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선택의 자유가 있다는 것은 어떠한 선택도 하지 못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은 일입니다. 다만 자유롭게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단지 선택을 하고 그것에 따라 행동하는 것만을 지향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에 대한 세심한 주목 및 그들과 다른 우리의 권리를 그들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우리 자신의 의무와 한 쌍이 되도록 하는 것을 포함합니다. 

우리 모두 기후변화나 지적 기술 등이 낳은 곤경을 극복하기 위해 불교적 지혜를 모을 때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가상현실 속에서도 윤리적 임기응변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자세와 사고의 대전환을 요구받고 있습니다. 불교 수행의 목표는 보살 곧 ‘깨달음을 추구하는 존재’라는 인격완성의 이상에 오롯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는 붓다의 가르침이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세상을 자유롭게 만드는 ‘관계적 역학’을 훌륭하게 수행해 왔다는 것을 거듭 확인하게 될 것으로 믿습니다

허남결 동국대 불교학부 교수 hnk@dongguk.edu  

[1689호 / 2023년 7월 1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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