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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기독교 음악론과 범패

기자명 윤소희

로마교회 음악은 인간이 신에게 다다르는 도구

만해 스님 불교의례·음악 비판 후 대안 없이 의례 퇴출
로마교회는 논의 통해 사제·신학자가 직접 성가대 지도
영혼은 천계의 노래가 그물처럼 짜여진 것이라고 믿어

‘A’ ‘B’ ‘C’ ‘D’ ‘E’ ‘F’ ‘G’음을 퉁겨보는 보에티우스(左)와 무게를 달아가며 종을 쳐보는 피타고라스(右). [케임브리지대도서관 소장 12세기 그림]
‘A’ ‘B’ ‘C’ ‘D’ ‘E’ ‘F’ ‘G’음을 퉁겨보는 보에티우스(左)와 무게를 달아가며 종을 쳐보는 피타고라스(右). [케임브리지대도서관 소장 12세기 그림]

한국의 불교음악을 연구하면서 가장 안타까웠던 점은 ‘불교음악론의 부재’였다. 그러다 보니 굿판의 푸닥거리나 장터 각설이와 어울려 노는 듯한 악곡이라도 뭔가 분위기가 찜찜하다는 정도였지, 그것이 왜 무슨 근거로 불교음악답지 못한지 논리적으로 설명하지 못하였다. 만해 스님이 “불교의례와 음악이 도깨비 장난과 같이 저속하여 말할 가치도 없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이후 난잡하고 복잡한 의례를 폐지하고 범패승들을 퇴출시켰을 뿐, 어떻게 의례와 율조 체계를 바로 잡을지에 대한 논의는 없었고 대안이나 해결책은 더더욱 없었다.

이에 반해 로마교회는 수많은 신학자, 사제, 수도자들의 진지한 논의를 통하여 어떤 노래를 어떻게 부를 것인지, 그 음악을 들었을 때 정신과 마음의 반응은 어떠한지에 대하여 성찰하고, 사제와 수도사 신학자들이 직접 성가대를 지도하며 이끌었다. 그들은 음의 아름다움이나 즐거움을 위해서 혹은 연주나 감상에 따른 쾌감을 자극하는 음악들을 엄격하게 배제시켰다. 그리하여 춤이나 유희의 관습이 배어있거나 이교도적인 광경을 연상시키는 음악들은 교회에 발을 붙일 수 없었다. 이러한 노력이 그레고리오성가에 담겨있으므로 기독교신자가 아니어도 그레고리오성가를 들으면 숙연해지는 분위기가 있다.

보에티우스(Boethius, 470~524)는 ‘음악의 원리(De institution musica)’를 통하여 음악을 세 가지로 분류하였다. 첫째는 우주의 움직임과 4계절의 변화와 같은 자연법칙에 의한 것으로 인간의 청각으로는 들을 수 없는 무지카 문다나(musica mundana)로, 단테의 ‘신곡’ 중 ‘낙원의 구조’에 등장하는 바로 그 음악이다. 두 번째는 인간의 정신과 육체의 조화에서 발현되는 무지카 후마나(musica humana)인데, 이 또한 그 소리는 들을 수 없는 것이었다. 세 번째가 흔히 말하는 인간의 귀에 들리는 음악으로써 노래하거나 악기로 연주되는 보통의 음악인 뮤지카 인스트루멘탈리스(musica instrumentalis)이다. 

플라톤의 이데아와 아리스토텔레스의 음악관을 통하여 기독교의 인식론과 개념의 보편화를 이끈 보에티우스는 스콜라 철학에 크게 영향을 미쳤다. 그는 상식에만 기초한다면 ‘신’의 존재를 설명하는 신비주의 교리가 설 자리가 없어지는 것을 고민하였다. 신격에 대한 신비주의적 개념을 상식으로도 부인하기 어려운 보편적 개념을 정립하고 나아가 세계 보편 종교로서의 입지를 구축할 수 있도록 부단히 노력하였고, 그 신비를 감각으로 느끼게 하는 최상의 도구가 음악이라고 여겼다. 아우구스티누스와 보에티우스는 상식적 인식과 신비주의적 인식에 대한 대중적 감화를 위해 음악을 활용하였고, 그 효용성이 상상 이상이었기에 “한번 찬송이 세 번 기도”라는 말이 생겨났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성가를 부르거나 들을 때 환희심이 나더라도 그것이 행여 음악적인 쾌감에 의한 것이라면 죄를 지은 것”이라며 끊임없이 성찰하였다. 보에티우스가 저술한 ‘음악의 원리’에도 이런 사상이 수렴·반영되었고, 음계와 음정의 원리에는 피타고라스의 이론을 수용하되 사상적인 측면에서는 반 피타고라스적인 논지를 펴기도 하였다. 신학자들의 이러한 노력의 결과 당시 교인들은 이 세상과 우주는 음악으로 만들어졌다고 믿을 정도였다. 특히 교회 악사들은 천계(天界)의 노래와 멜로디가 그물처럼 짜여진 것이 사람의 영혼이라고 믿었으므로 심연을 통해 들려오는 그 울림을 듣고자 열렬히 기도하였다. 따라서 당시의 창작은 우주의 하모니를 자신들의 내면으로 듣고 발현하는 것이었다.

교황 그레고리우스(540?~604)는 암브로시우스, 아우구스티누스, 보에티우스로 이어지는 교회철학과 음악론을 전례를 통해 실현하였다. 그는 아우구스티누스가 쓴 ‘신국론(De civitate Dei)’을 토대로 이상적인 그리스도교 사회를 고안하였고, 그것을 통해 교황의 권위와 통솔력을 극대화하였다. 그의 미사 개혁은 가톨릭 전례음악인 그레고리오성가(Gregorian chant)를 낳게 했다. 당시 로마교회에서의 음악은 곧 전례와 직결되는 것으로, 인간이 신(神)께 다다르는 도구였다. 이러한 현상은 우파니샤드시대 힌두사제들이 찬가를 바치는 음성을 범아일여의 매개로 삼은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그리스 선법의 명칭인 도리아, 리디아, 믹소리디아, 프리지아에 각각 정격(장조)과 변격(단조)선법으로 이루어진 선법이 모여 8선법이 되었고, 그 명칭은 고대 그리스의 특정 지역 선율을 지칭하던 것이었다. 이를 한국식으로 표현하면 황해도의 서도토리, 호남의 육자배기토리, 경상도의 메나리토리와 같은 것이다. 로마교회는 그리스 선법의 음정 체계는 그대로 따르되 선법 명칭은 제1이라는 뜻의 쁘로투스, 제2라는 뜻의 데우테우스, 제3이라는 뜻의 뜨리투스, 제4라는 뜻의 떼뜨라투스에 각각 정격과 변격이 있는 8선법이다. 여기서 필자는 교회선법 명칭을 이탈리아 발음에 가깝도록 ‘쁘로투스’ 등으로 표기하였지만 영어권에서는 ‘프로투스’라고 표기하는 경우가 많다.

초기교회의 작곡이란 기존의 선율에 댓구를 달아 새로운 곡을 만들었는데, 이는 고려가요의 일부 선율을 편작한 조선조 궁중음악의 창작 방식과 비슷하기도 하지만 기존선율과 댓구의 선법적 관계를 치밀하게 계산했던 점에서는 차이가 크다. 로마교회는 하루일과에 따라 새벽, 아침, 오전, 오후, 초저녁, 늦은 밤의 시간에 맞추어 찬송기도를 바쳤으므로 동일 선율에 약간의 변화를 준 수많은 성가들이 창작되었다. 

이를 노래할 때는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특유의 말투와 억양이 있듯이 각 지역마다 독특한 시김새가 있었다. 인도의 라가(Rāga), 아라비아의 마캄(Magam), 비잔틴 그리스의 에코(Echos), 히브리의 모드(Mode)도 마찬가지 현상이 있었는데, 어쩌다 로마교회 음악이 세계를 제패하게 되었는지 계속 이어가 보자.

윤소희 음악인류학 박사·동국대 대우교수 ysh3586@hanmail.net

[1689호 / 2023년 7월 1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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