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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종 원로회의의장 자광 스님

부처님 말씀 전하는 것이 칠보를 보시하는 것보다 공덕이 큽니다

일체 존재하는 모든 것은 상호의존관계 속에서 존재
불자들에게 진정한 성공은 육도 윤회를 초월한 성불
불교 역사 왜곡되는 현실 막으려면 전법도생 나서야

자광 스님은 “인류 평화를 위한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할 수 있도록 모두가 노력할 것”을 당부했다.'
자광 스님은 “인류 평화를 위한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할 수 있도록 모두가 노력할 것”을 당부했다.'

불심이 깊기로 소문난 부산 불자님들을 만나게 되어 기쁩니다. 오늘은 여러분께 부처님 가르침을 간단하고 명료하게 정리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우리의 역사 속에서 불교는 삼국시대부터 고려 말까지 흥하며 이 나라의 정신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핍박을 면치 못했고 다시 일어서는가 싶더니 현대사회에 들어 유독 불교가 축소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불교가 옛 영광을 되찾으려면, 나아가 이 시대의 등불이 되려면 스님들과 불자들이 정신을 바짝 차려서 포교를 열심히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저 역시 고등학교 졸업 후 지리산 화엄사로 출가한 지 60년이 지난 지금도 오직 포교의 원력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부처님의 가르침이 무엇인지 그 핵심을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이 세상은 누가 만들었습니까?”라고 여러분께 묻겠습니다. ‘삼라만상 두두물물 존재하는 모든 것은 누가 만들었는가?’라는 질문입니다. 신이 만들었다고 믿는 분이 계십니까? 단언컨대 이 세상은 신이 만들지 않았습니다. ‘인연법(因緣法)’이라고 들어보셨습니까? ‘일체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상호의존관계, 협력관계, 상관관계 속에서 존재하는 것이다.’ 이것이 인연 연기(緣起)의 법칙입니다. 여기에 있는 물 컵 하나가 존재하기까지는 무수한 인연이 관계되어 있습니다. 우주가 동원됐고 태양계가 동원됐고 대지가 동원됐고 지구의 80억 인구가 동원되어서 이 물 컵 하나를 만든 것입니다. 

이 세상은 신이 만들지 않았음을 확실하게 정의하고 가야 합니다. 신은 우리와 동격입니다. 신들도 깨우치도록 이끌어서 부처님을 만들어 제도해야 할 존재입니다. 신은 인간을 창조하는 절대적인 창조주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나는 누가 만들었습니까? 간단합니다. 여러분의 부모가 만드셨습니다. 어느 날 남녀가 만났습니다. 이 만남을 인연법이라고 합니다. 만나고 연애해서 결혼하는 과정을 통해서 여러분이 태어났습니다. 여러분을 만든 건 확실하게 부모님입니다. 그렇다면 부모님은 무엇으로 나를 만들었습니까? 순전히 마음 하나로 만들었습니다. 부처님이 만드신 것도, 예수님이 만드신 것도 아닙니다. 부모님의 마음이 여러분을 만든 것입니다. 그리고 온갖 사랑 쏟아 부어서 키워내셨습니다. 지금도 부모님께서는 여러분을 걱정하고 계실 겁니다. 그러니 나의 창조주는 부모님입니다. 

이렇게 태어난 나는 이런저런 행동으로 살아갑니다. 이 행동에는 반드시 업보(業報)가 따릅니다. 일거수일투족,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이 업력으로 형성되어서 내세에 그 업보를 받는 것입니다. 불교는 윤회(輪廻)를 주장합니다. 다른 종교에는 없는 개념입니다. 이렇게 살다가 한 생을 마치면 또 다른 생명으로 태어난다는 윤회의 법칙은 정말 희망적인 메시지입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인연으로 태어났지만 살면서 자기의 행동은 반드시 업력이 형성되어 윤회 법칙에 따라 내생에 다른 생명의 몸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여름이면 전국 사찰에서는 백중 기도를 올립니다. 백중 기도는 윤회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습니다. 다음 생을 위한 발원이기에 그렇습니다. 사람으로 태어나 살아가는 동안 나쁜 행동을 많이 했다면 다음 생에는 지옥에 떨어진다고 합니다. 나쁜 행동의 업력이 형성된 결과입니다. 그 다음 혼자 호의호식으로 생활한 사람은 다음 생에 아귀도에 떨어진다고 합니다. 굶주림의 세계가 아귀의 세계입니다. 그 다음으로 축생 세계가 있습니다. 지혜로운 행동을 하지 않고 멍청하게 행동하면 다음 생에 축생 세계로 떨어집니다. 말초 신경의 쾌락적인 생활을 일삼는 사람, 육체가 전부라고 주장하면서 육체에만 몰입해서 사는 사람은 축생 중에서도 아주 기분 나쁜 축생으로 떨어지는 겁니다.

네 번째는 아수라 세계가 있습니다. 싸움을 잘하는 사람이 다음 생에 아수라 세계로 갑니다. 법당에 와서도 싸우는 사람이 있습니다. 공양을 받는 순서로 시비를 거는가 하면 신발을 벗어놓는 것으로도 싸움을 일으킵니다. 부부지간에도 싸움을 자주 하는 사람들은 다음 생에 아수라의 세계에 떨어집니다. 부처님께서는 화합을 강조하셨습니다. 그래야 자비도 나오고 선행도 나오고 공덕도 쌓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사람 노릇을 제대로 하면 비로소 인간으로 태어납니다. 여러분께서는 천신만고 끝에 인간으로 태어나신 겁니다. 여기서 퇴락하지 않으려면 지금 잘 살아야 합니다. 인간 몸 받기 어렵고 부처님의 진리를 만나기 어려우며 진리 중에서도 정법을 만나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께서는 다 만났습니다. 여기서 후퇴하지 말고 정진하셔서 인간으로 진정한 성공을 이루시기 바랍니다. 

불자들에게 진정한 성공은 무엇입니까? 불교가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표는 육도 윤회를 초월하는 세계입니다. 성문, 연각, 보살, 불(佛), 이렇게 네 단계가 더 있습니다. 깨달음의 네 단계는 조금씩 차원이 다릅니다만 이 단계에 올라가면 불생불멸의 해탈 세계가 전개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극락세계이고 궁극에는 성불(成佛)을 목표로 하는 것입니다. 

나는 부모님의 인연에 의해 만들어졌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이것과 저것이 상호 의존하고 협력하는 관계로 존재한다, 거기에는 윤회도 있고 업보도 따른다, 좋은 곳에 태어나려면 착하고 성실하게 살아야 하며 부처님 가르침을 따라 열심히 수행하라,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이것이 불교입니다.

한 가지를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불교의 기본 사명은 전법도생(傳法度生)입니다. 말 그대로 법을 전하는 것입니다. “포교합시다”라는 표현과 같은 말입니다. 부처님께서 성불하신 뒤 제자들을 모아놓고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내 말을 이해했는가? 너희도 부처님과 똑같은 경지에 도달했는가? 그렇다면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지금부터 일어나 중생교화로 나서라.”

그런데 바로 옆 마을은 악인들이 사는 나라였습니다. 그 나라의 백성은 성질이 포악하고 험해서 서로 가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그때 부루나 존자가 앞장섰습니다. “부처님이시어. 저를 그곳으로 보내주십시오. 제가 가겠습니다.” 부처님께서 물으셨습니다. “그곳 백성들은 포악하다는데 욕을 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부루나 존자는 대답했습니다. “돌멩이와 창으로 때려죽이지 않은 것만 해도 고맙게 생각하겠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다시 물었습니다. “칼로 찌르고 돌멩이를 던져 죽이려 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부루나 존자는 다시 대답했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려다가 죽게 된 것이니 감사히 여겠습니다.” “그러면 됐다. 가거라.” 부루나 존자의 원력을 부처님께서도 인정하신 겁니다. 

포교하기 어려운 나라로 앞장서서 가겠다고 하신 부루나 존자의 원력과 결심이 우리에게도 서 있는지 스스로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삼천 대천 세계를 칠보로 보시하는 것도 무수한 공덕이지만 그보다 더 큰 공덕은 부처님의 한 말씀이라도 전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법을 전하러 나섭시다. 불교를 다시한번 일으킵시다.

조선시대에 불교는 엄청난 탄압을 받았습니다. 스님들을 천민으로 취급했고 도성 안으로 출입도 할 수 없도록 막았습니다. 그렇게 핍박을 받으면서도 나라가 위태로울 때는 승병을 조직해서 왜적을 물리쳤습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서산대사, 사명대사, 영규대사입니다. 스님들의 목숨을 건 나라를 위한 활약은 호국(護國)을 넘어 구국(救國)이었습니다. 

충남 금산에는 칠백의총기념관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 기념관은 금산전투의 역사를 기리는 곳입니다. 금산전투에서 영규대사와 800여 명의 승병은 목숨을 내걸고 구국에 나섰습니다. 그런데 기념관에 승병을 위한 추모는 빠져 있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입니다.

이뿐만 아닙니다. 경기도의 광주 천진암, 여주 주어사라는 사찰이 있었습니다. 스님 20~30명이 함께 공부하는 수행처였습니다. 조선 후기 그곳에는 천주교를 믿다가 정부군이 잡으려고 하자 숨어들어온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스님들은 그 사람들이 다른 종교를 믿는다고 해서 절 밖으로 쫓아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감싸주었습니다. 불교가 천주교를 보호하고 살려준 장소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천진암과 주어사의 불교 역사를 지우고 천주교의 성지로만 만들려고 했다니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선대 불교도들은 목숨을 걸고 부처님의 지혜로 구국을 실천했으며 종교를 초월해 자비를 펼치셨습니다. 이토록 소중한 불교의 가르침을 자신의 마음속에만 넣어놓고 주위에 전하지 않는다면 기존의 역사마저 지워지고 왜곡되는 현실에 직면해야 합니다. 불교도가 더 적극적으로 전법도생에 나서야 할 이유입니다. 

불교를 누구에게 전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막막해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여러분, 자녀들이 있습니까? 부모님이 계십니까? 친척이 있습니까? 가장 먼저 가족들에게 전하시기 바랍니다. 절에 혼자 오지 마시고 이왕이면 아들, 딸과 함께 오십시오. 형제, 자매들과 함께 오십시오. 남편은 부인, 부인은 남편,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손주들의 손을 잡고 함께 도량으로 향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해서 다시 한번 한국불교가 자존심을 되찾고 나아가 인류 평화를 위한 희망의 메시지를 전할 수 있도록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노력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정리=주영미 기자 ez001@beopbo.com

이 법문은 7월12일 부산불교신도회 법계정사에서 봉행된 부산불교신도회 로터스불교대학총동문회(회장 이호열) 주최 ‘대한불교조계종 원로회의 의장 자광 대종사 초청 대법회’에서 자광 스님이 설한 내용을 요약한 것입니다.

[1689호 / 2023년 7월 1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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