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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났지만 태어나지 못한 아이들

기자명 진원 스님

우리는 누군가의 죽음을 보고난 후에야 부랴부랴 호들갑을 떤다.

세상은 늘 사건사고로 시끄럽지만 그 중 가장 안타깝고 가슴이 찢어지는 사건은 영아들이 유기 또는 아무도 모르게 죽임을 당해 냉동고나 쓰레기장에서 방치되는 일이다. 이에 업둥이라는 명목으로 아이들이 절에 버려지고 절에서는 그 아이들을 내치지 못해 길러주는 일들이 있었다. 물론 필자도 그런 경험이 있다. 갓난아이를 병원에 입원시키고 돌보고 있는 비구니스님의 모습에 사람들은 이상한 눈초리를 보냈고, 설명하느라 진땀을 흘렸다. 어떤 비구스님은 베이비박스를 운영하겠다고 문의를 해 극구 말렸던 기억도 있다. 이런 경우는 그래도 아이가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는 경우다.

나는 10여년 전부터 이 세상에 태어났지만 행정적으로 존재하지 않았던 아이들이 있음을 지적해왔다. 미혼모이거나 사실혼관계의 아이, 성폭력으로 낙태의 시기를 놓친 일 등 여러 사례들을 봐왔다. 출산은 했지만 출생신고를 미룬 이유들은 다양했다. 사실혼 관계의 남성이 아이의 양육을 거부한 경우, 동거남과의 이별, 원나잇, 성폭력 등이다. 그렇기에 때때로 출생신고 기간을 놓친 이에게 벌금을 대신 내주고 출생신고를 돕기도 했다. 이런 경우는 드물지만, 지금도 우리 주변에 만연한 준비가 안 된 부모에게서 태어난 아이들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설혹 낙태를 선택한다 해도 성폭력이 아닐 경우 낙태는 사실상 불법이다. 여성에게 오롯이 책임을 묻고 있는 것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이 아이는 태어나고, 태어난 아이를 들쳐 업고 보호시설을 떠도는 여성들을 우리는 무슨 자격으로 비난한단 말인가. 겨우 여성을 설득해 주민등록상에 아이의 존재가 드러나지 않게 출생신고를 한다 해도 입양은 친부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그 다음 아이와의 생계는 오로지 여성에게 달렸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들이 어찌 여성 개인의 문제이고 여성에게 모성애를 강요할 문제인가? 아이들을 데리고 이리저리 보호시설을 떠도는 게 안쓰러워 상담해 보면 대부분 태어났지만 환영받지 못하는 아이들이었다. 이 아이들은 BCG를 시작으로 B형 간염, DTaP, 폴리오, 뇌수막염 등등 맞아야 할 주사조차 맞지 못해 질병으로 목숨을 잃더라고 전혀 이상하지 않았고, 학대나 범죄로 죽임을 당한다 해도 그 죽음조차 드러나지 않을 확률이 더 높았다.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여러 번 지적했지만 대부분의 공무원들은 현행법과 여성들을 탓했다. 

출생병원에서 출생신고를 의무화하는 정책을 주장했던 기억도 있다. 이제라도 공론화 되어 ‘태어났지만 태어나지 않은 아이들’이 관심을 받으니 천만다행이다.

국회에서 한창 ‘보호출산제’ ‘출생통보제’에 대해서 활발하게 논의 중이다. ‘보호출산제’는 산모가 신원을 숨기더라도 의료기관에서 출산할 수 있도록 보장하며 지방자치단체가 아동의 출생신고를 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이다. 임신과 출산으로 어려움을 겪는 여성을 보호하고, 안전한 양육환경을 보장해주자는 취지이다.

그런가하면 ‘출생통보제’는 출생신고의무자의 신고와는 별개로 출생이 있었던 의료기관에서 신생아의 출생사실을 지방자치단체에 통보하도록 의무화하는 내용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런저런 부작용도 있겠지만 최우선은 아이가 이 세상에 태어남과 동시에 안전이 확보돼야 한다. 또 미혼모이든 미혼부이든 이들이 우리와 함께 살아 갈 수 있도록 경제적인 뒷받침이 되어야 한다. 겨우 목숨부지 수준으로 지원할 것이 아니라 직장을 잃게 되더라도 아이와 함께 생활할 수 있도록 충분하지는 않지만 필요한 만큼은 지원돼야 한다. 돈이 얼마가 들더라도 가장 우선돼야 하는 건 생명이다. 인구증가 정책도 중요하지만 태어난 아이부터 잘 키워보자.

진원 스님 suok320@daum.net

[1690호 / 2023년 7월 2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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