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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마조의 선법 ➁ 평상심시도-하

기자명 정운 스님

본래 갖춰져 있기에 닦을 것도 없다

원래 청정심 갖추고 있으니
본래 상태로 돌리는 게 수행
일상에서 오염시키지 말라는
생활선을 정립하게 된 단초

지난주에 이어 평상심시도의 ‘수행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道不用修]’는 말을 살펴보자. 본래 성불인 무생법인을 얻었으므로 좌선을 논하기 전에 본유의 불성열반이 갖추어져 있음을 의미한다. 평상심이므로 닦고자 하는 수행이 필요치 않은 것이며 오염시키지만 않으면 되는 것이다.

평상심시도에서 평상심은 도의 용(用)이며, 도는 평상심의 본체(本體)라고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 도라는 것은 보리·열반과 같은 뜻이기 때문이다. ‘열반경’에서 말하는 상락아정도 물론 보리·열반에 대한 설명이며, 열반의 체(體)가 본래청정이므로 마조는 이것을 단막오염(但莫汚染)이라고 하였다. 이 본래청정의 체의 용이 조작도 없고[無造作], 시비조차 분별하지 않기 때문[無是非]에 임운무작(任運無作)에 나타난 평상심[言語動作]이라고 불리게 된 것이다. 

다시 언급하지만 마조는 본래부터 내재된 불성을 그대로 지견(知見)하면 불과(佛果)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니 수행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한다. 즉 수(修)란 결손된 곳을 보완(補完)·보수(補修)·수선(修繕)하는 것이다. 본래 완전한 것인데 어떤 이유로 결여되어 있고 파손되어 있으므로 거기를 수복(修復)해서 본래의 완전한 상태로 되돌리는 작업이 수행이다. 마조의 스승 남악 회양도 처음 6조 혜능을 만났을 때, ‘단지 오염시켜서는 안 된다’라는 말을 하였다. 

혜능이 물었다. 

“어디서 왔는가?”
“숭산 혜안화상으로부터 왔습니다.” 
“어떤 물건이 이렇게 왔는고?”
“한 물건이라고 하여도 맞지 않습니다.” 
“다시 수행하고 증득해야 할 것이 있는가?”
“수증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만, 다만 오염시켜서는 안 됩니다.”

‘한 물건이라고 해도 맞지 않다[說似一物卽不中]’는 불성이니 자성이니 하면서 깨달음의 당체는 어떤 무엇이라고 지칭해도 맞지 않음을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자성 청정한 자리를 오염시켜서는 안 된다고 하는 것이다. 

오염시키지 말라는 것은 자성청정심에 근원을 둔 평상심을 전제로 한 것이며, ‘이입사행론(二入四行論)’에서 달마가 말한 교위(巧僞)나 ‘임제록’에서 임제가 표현한 인혹(人惑)과 같은 의미이다. 곧 인위적인 조작과 분별심으로 마음이 곧 부처임을 알지 못하고 밖에서 구하려는 어리석은 마음을 말한다. 남악은 수증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만 오염해서는 안 된다고 하였으며, 마조가 도는 수증이 필요 없다[道不用修, 無修無證]고 한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주목해야 할 것은 ‘도를 닦지도 말고 좌선을 하지도 말라’고 해서 증오(證悟)할 불성이 없다고 하는 것이 아니다. 먼저 본래성불로 무생법인을 갖추고 있으므로 다만 오염시키지 말라는 끊임없는 실천사상이 담겨 있다. 이 오염이란 바로 조작하고 취사선택하는 인위적인 분별심의 마음이기 때문이다. 곧 오염시키지 않는 것이 바로 도불용수인 것이다. 

이와 같이 마조는 원래부터 인간 그 누구라도 구족하고 있는 자성청정심이라는 철저한 본래성의 자각을 견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달마의 이론적인 안심에 대하여 ‘이입사행론’은 일상적인 실천 속에서 수행할 것을 강조하듯이 마조의 평상심도 일상생활 속에서 도의 전개를 강조하고 있다. 일상생활,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진(眞)이라고 긍정하는 점은 ‘화엄경’의 성기(性起) 사상의 선적(禪的) 수용이라고 본다. 화엄의 성기 사상과 마조의 즉심시불은 모두 인간을 보는 관점이라고 할 수 있는데, 양자 모두 인간을 자성청정심의 존재라고 보고 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마조의 평상심은 일상성으로 전개되면서 방거사나 대주혜해 등 많은 제자들을 통해 행동으로 연출되었다. 뿐만 아니라 후대까지 마조의 평상심은 일상 속에서 도를 추구하는 생활 속의 선을 정립한 단초가 되었다. 한편 평상심시도라는 일상성의 선을 전개한 맥락에서 교단사적으로 백장의 청규는 자연적으로 형성될 수 있는 사상적인 전거가 되었던 것이라고 생각된다.

정운 스님 동국대 강사 saribull@hanmail.net

[1690호 / 2023년 7월 2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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