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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수행이론의 총망라(62)-성불 관련; 각론⑨

보살이 갖춰야 할 10가지 인

범어 ‘크샤티’의 번역인 인은
확실하다 인정되는 특수지혜
운허 스님은 ‘무생인’에 대해
‘죽살이 없는 지혜의 인’ 번역

‘화엄경’ 본문 속으로 편집된 당시 3세기까지 인도와 중앙아시아지역 불교계에 유행하는 ‘이론’ 중에서, 수행과 관련한 ‘이론’의 주제가 여섯이라는 설명, 나아가 그 여섯 중에서도 특히 깨달음이라는 수행에 특정하여 ‘이론’을 다루는 품(品)이 ‘십정품’ ‘십통품’ ‘십인품’ ‘아승기품’ ‘수량품’ ‘제보살주처품’이라는 소개도 했다. 제71회에서 소개한 ‘십통품 제28’을 이어 오늘은 ‘십인품 제29’를 주제로 올린다.

설법 장소는 부처님께서 정각을 이루신 보리수 근처 보광명전으로, 설주(說主) 보현보살이다. ‘화엄경’ 구성 작가가 당시까지 축적된 불교의 가르침[敎]들을 구성하는 방식은 크게 두 축이다. 한 축은 ‘문수’이고 한 축은 ‘보현’이다. 제7회차에 해당하는 보광명전 법회는 그 중 ‘보현’을 축으로 한 법문이다. 당시의 ‘화엄경’ 구성 작가 눈에 ‘관세음’ 계통은 주목받지 못했다.

‘화엄경’은 보현보살의 입을 빌려 당시 ‘보살 운동’을 하는 당사자들에게, 보살이 갖추어야 할 ‘열 가지 인(忍)’에 대해 설명한다. ‘열 가지 인’을 얻으면 일체 보살의 걸림 없는 인에 이르러 온갖 불법이 장애가 없고 또 다함이 없다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인(忍)’은 범어 ‘크샤티(kśāti)’를 번역한 말인데, 확실하다고 인정하고 인가하는 특수한 지혜의 일종이다. 중국의 법장 스님은 “인자지조관달(忍者智照觀達)”이라 했고, 다음 세대의 청량 국사는 “인위인해인가, 즉지조관달(忍謂忍解印可, 即智照觀達)”이라 했다. 이렇게 법장의 교학을 계승하려는 청량의 경전 해석 방법은 ‘화엄경 청량소’ 도처에서 발견된다.

우선 ‘열 가지 인’의 명칭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①음성인(音聲忍), ②순인(順忍), ③무생인(無生忍), ④여환인(如幻忍), ⑤여염인(如焰忍), ⑥여몽인(如夢忍), ⑦여향인(如響忍), ⑧여영인(如影忍), ⑨여화인(如化忍), ⑩여공인(如空忍). 번역된 한문만 보아도 작가가 무엇을 전하려는지 짐작할 수 있다. ①~③은 인명(因明)의 논리로 말하면 법(法)에 해당하고, ④~⑩은 유(喩)에 해당하는 것으로, 내용은 초기 불교경전에 자주 등장하는 ‘무상’ ‘무아’ ‘공’ ‘연기’를 연출하고 있다. ‘허깨비 같다느니’ ‘꿈 같다느니’하는 말은 ‘금강경’ 4구게로 많이 들어보셨을 것이니 그것으로 대치하기로 하고, ③무생인(無生忍)에 주목하기로 한다.

독자 여러분께서 경전 본문의 맛 즉 문미(文味)를 운허 스님의 ‘한글대장경’을 통해 맛보시도록 인용한다.

“불자들이여, 어떤 것을 보살마하살의 죽살이 없는 지혜의 인이라 하는가. 불자들이여, 이 보살마하살이 조그만 법이 나는 것도 보지 않고 조그만 법이 사라지는 것도 보지 않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나지 않으면 사라짐이 없고, 사라짐이 없으면 다함이 없고, 다함이 없으면 때를 여의고, 때를 여의면 차별이 없고, 차별이 없으면 처소가 없고, 처소가 없으면 고요하고, 고요하면 탐욕을 여의고, 탐욕을 여의면 지을 것이 없고, 지을 것이 없으면 소원이 없고, 소원이 없으면 머물 것이 없고, 머물 것이 없으면 가고 옴이 없나니,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셋째 죽살이 없는 지혜의 인이라 하느니라.”

‘죽살이 없는 지혜의 인’. 생소할 수도 있겠지만 운허 스님께서는 ‘무생인(無生忍)’을 그렇게 한글화했다. 철학은 사유로, 그리고 그 사유는 언어와 그것의 기호화로 세상과 관계 맺는다. 철학이 보편학임을 자부하지만, 그것에 종사하는 학자는 구체적이고 역사적이고 지역적인 ‘사람’이다. 그런 면에서 제 문화의 제 지역의 제 말로 생각을 표현하는 것은 중요하고 당연하다. 불교가 비록 외국에서 들어왔지만, 우리 화(化)하는 과정에서 되새겨 우리 글로 표기할 필요가 있다. 세제(世諦)는 언어와 사유로 환원할 수 있고 그래야만 한다. 언어나 사유 이전 소식인 진제(眞諦)의 환원 불가능성만 고집해서는 안 될 것이다. 

‘열 가지 인’ 각각에 10(首)의 게송이 붙어 있다. ‘무생인’도 그런데 필자가 좋아하는 열 번째의 게송을 운허 스님의 ‘한글대장경’으로 소개한다.

삼세 모든 법 고요하고 청정함 알아(了達三世法 寂滅淸淨相)
중생들을 교화해 좋은 길에 두나니(而能化衆生 置於善道中)  

신규탁 연세대 철학과 교수 ananda@yonsei.ac.kr

[1690호 / 2023년 7월 2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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