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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무도 수행 조영섭(지고·56) - 상

기자명 법보

선천적 시각장애 딛고 일어나
공감·집중력 살려 상담 공부
경제적 자립 성공 후 결혼도
어린 아들 따라 선무도 인연

‘잘 보인다’는 표현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불교와 인연을 맺으려고 시각장애인으로 태어났나 보다. 어릴 적 어머니를 따라 절에 가면 어머니는 항상 “부처님께 눈 밝게 해달라고 부탁드려라” 하셨다. 아들의 눈이 낫길 바라며 향로나 범종, 촛대를 시주하셨고 그런 어머니를 보며 부처님은 ‘중생의 고통을 해결해 주는 영험한 신’이라고 여겼던 기억이 생생하다. 어머니의 간절한 원이 이뤄졌는지 불법과 인연을 맺고 살고 있다.

6살 무렵 어머니는 앞을 더듬는 나를 데리고 경남 함양에서 서울 대학병원까지 찾아다녔지만 “아드님은 곧 실명할 것”이라는 의사의 답은 어딜 가나 다르지 않았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내가 친구들과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친구들이 ‘눈깔병신’이라 놀리면 위축됐고, 지지 않으려 화내고 싸우며 폭력적으로 자랐다. 그러다 내성적이고 말수 없는 아이로 변해갔다. 어릴적 기억은 많지 않다. 상담 받으면서 안 사실이지만 고통스러운 감정을 억누르며 살다보니 잊어버린 것처럼 지낸 것이다. 부모님이 원망스럽고, 세상도 원망스럽고 나를 힘들게 하는 모든 것이 원망스러웠다.

화풀이 대상이 나에게로 향하며 점점 몸이 아파왔다. 병원에선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한다. 아픈데 그 원인을 찾을 수 없으니 괴로움의 연속이었다. 앞을 잘 보지 못한다는 사실을 들키기 싫었다. 한번 갔던 길은 묻지 않고 찾아갈 정도로 기억했고, 새로운 곳을 갈 때면 미리 그 장소를 공부하고 준비했다. 긴장과 불안의 연속이었다. 친구들은 내가 그 정도로 눈이 나쁜 건 몰랐다. 철저하게 나를 감추려 애쓰며 살았다. 칠판을 본 적도 없다. 오직 청각에 의존해 공부했다. 그러다보니 집중력은 참 좋았다. 타인의 감정 변화를 민감하게 알아차릴 수 있어 친구들 사이에선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사람으로 통했다.

경청과 공감으로 상대를 위로해 주는 상담이 내가 나아갈 방향이라 정했다. 상담가가 되려면 먼저 자신의 문제부터 해결해야 다른 사람의 어려움이 왜곡되지 않고 바르게 보인다. 공부를 계속하며 자존감은 많이 회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대학을 졸업했음에도 다른 친구들과 달리 받아주는 곳이 없었다. 

지리산 백장암에서 열린 ‘용타 스님의 동사섭’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불교와 인연은 깊어졌다. 스님에 따르면 세상을 보는 안경이 깨끗해야 바로 보이고 렌즈 색깔에 따라 세상이 보인다. 그렇기에 렌즈, 곧 시선을 바꿔야 고통이 사라지고 마음에 평화가 찾아온다는 가르침을 배웠다. 용타 스님은 “렌즈를 바꾸기 위해선 지금 여기서 일어나는 생각, 감정을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알아차림만으로도 감정의 기복은 많이 줄어들었다. 타인을 원망하고 세상을 비난하는 일도 많이 줄어들었다. 그럼에도 좀 더 행복했으면 하는 마음은 언제나 있었다.

또 하나의 인연은 전남 화순 만연사에서 정조 스님께 참선을 배운 것이다. 일주일간 하루 8시간 참선하고 마지막 날은 철야정진에 들었다. 생각이 너무 많아 집중하지 못하는 내 모습이 한심하기만 했다. 일주일 동안 망상과 혼침을 되풀이했다. 마지막 날 밤을 새워 정진할 때는 졸기만 한 것 같은데 날이 밝자 세상이 달리 보이고 머리는 청명하며 몸은 가벼웠다. 정진 후 친견한 태안사 청화 큰스님은 “심안을 뜨세요”라고 했다. 심안은 어떻게 뜨는 것인지 아직 의문이다.

언젠가 더 이상 앞을 보지 못할 것이다. 서러움과 함께 경쟁 속에서 살아남고자 애쓰고 힘겹게 지내온 날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장애인으로 등록하고 맹학교고등부에 입학했다.  점자, 흰지팡이 사용법을 배우며 나보다 더 앞을 못보는 사람이 훨씬 적극적으로 모든 일을 척척 해나가는 것을 보고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부탁하고 도움 받는 것이 싫어 창피하게만 생각했는데, 이들은 서로 처지에 맞게 돕고 의지하며 살아가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그렇게 시각장애인의 세계로 들어섰다. 맹학교를 졸업하고, 대다수 시각장애인이 선택하는 안마사의 길을 걸어가면서 경제적으로 자립했다. 그럭저럭 결혼도 하고 아들을 낳았다. 아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선무도와 인연이 시작됐다.

[1690호 / 2023년 7월 2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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