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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해병대원의 어이없는 죽음

구명조끼도 없이 수해현장에 투입되었던 해병대 일병이 급물살에 휩쓸렸다가 끝내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는 안타까운 사건이 일어났다. 경북 예천의 내성천 일대에서 부대원들과 함께 실종된 주민들을 수색하던 와중에 발생한 불의의 사고였다. 상병 진급과 함께 보국훈장 광복장이 추서된 채모 일병은 결혼 10년 만에 어렵게 얻은 외동아들이자 집안의 장손이어서 주위 사람들을 더욱 먹먹하게 했다. 올봄에 입대한 그는 기본훈련을 마치고 해당 부대에 갓 전입한 신병에 불과했다. 사고를 당한 해병대원은 포항의 해병 1사단 포병대대 소속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해병 1사단은 국가전략기동부대로 내가 43년 전에 국방의 의무를 완수했던 곳이기도 하다. 고인이 소속되었던 포병대대는 주로 후방에 머물면서 전방에 전개된 상륙군의 화력지원을 담당한다. 부대의 성격상 대부분 차량으로 이동하기 때문에 팀스피리트와 같은 대규모 한미연합훈련 당시 무거운 군장을 메고 하염없이 걸어야 하는 보병들의 화를 돋우는 부대이기도 했다. 하지만 대형 폭발사고의 위험성이 상존하는 포병부대의 특성상 기합이 세기로 유명했다. 어쨌든 대민지원 활동은 우리 같은 보병 연대의 당연한 몫인 줄로만 알았다. 그래서 하는 말이다. 주둔지인 포항에서 멀리 떨어진 예천의 수해현장에 하필이면 포병 부대원이 실종된 마을주민 찾기에 동원된 까닭을 도무지 모르겠다. 

아마도 하늘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을 것이다. 사고 소식을 전해 듣고 정신없이 한걸음에 달려왔을 부모가 부대장에게 ‘왜’ 구명조끼를 입히지 않았느냐고, 그렇게 ‘비싼’ 것이었냐고, 울부짖는 모습을 TV 화면으로 지켜보면서 나 자신이 한없이 무기력해지는 기분이었다. 시커먼 흙탕물이 허리까지 차오르는 데도 ‘해병대’라는 글자가 한눈에 띄는 빨간 운동복을 깔 맞춤한 병사들이 오직 발바닥의 감촉만으로 강 언저리를 이리저리 훑고 있는 모습이 클로즈업된다. 극한 호우로 엄청나게 불어난 강물이 강의 지형을 어떻게 바꿀지도 모르는 위험천만한 사정은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은 듯했다. 그 순간 발밑의 땅이 꺼졌고 당황한 20살 청년은 사나운 강물에 떠내려가면서 ‘살려주세요’라는 외마디 말을 서너 번 반복하다가 금방 시야에서 사라져버렸다고 했다. 

잘 모르긴 해도 이번 사고의 근본적인 원인은 해병대 지휘부의 공명심이 빚은 인재이자 참사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작년 이맘때 태풍 힌남노가 포항을 강타했을 때 해병대는 상륙 돌격 장갑차(KAAV)를 동원한 구호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한몸에 받은 적이 있다. 그것은 누가 봐도 주둔지가 포항인 해병대가 나설만한 일이었고, 작전이 성공적이었던 만큼 큰 박수를 받아 마땅한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경우 경북 예천의 수해현장에 뜬금없이 상륙 돌격 장갑차를 3대나 파견한 것은 다분히 매스컴을 의식한 일종의 홍보성 이벤트로 비쳤다. 백번 양보해서 해병대가 수해 지역의 실종자 수색에 꼭 필요한 부대였다고 하더라도 거기에는 상륙용 고무보트인 IBS와 훈련받은 정예요원만 보내면 충분했다. 굳이 포병대원까지 끌고 간 이유를 해병대 측은 국민에게 소상하게 설명할 의무가 있다. 

뉴스를 보는 며칠 내내 가슴이 저렸다. 황당하기 짝이 없는 사고로 하나뿐인 아들을 잃은 부모님의 심정은 오죽할까 싶어서였다. 슬그머니 핸드폰에 저장된 22살 시절의 내 군복 입은 사진을 검색해봤다. 저 나이가 되기도 전에 허무하게 목숨을 잃은 후배 해병의 늠름한 얼굴이 자꾸만 겹쳐졌다.

고(故) 채수근 해병 상병! 당신은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해병이었다. 이곳에서 미처 못다 이룬 꿈, 저곳에서는 부디 성취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대에게 무한한 경의와 조의를 담아 해병대의 영원한 구호인 ‘필승!’ 인사를 작별 인사로 건넨다.

허남결 동국대 불교학부 교수 hnk@dongguk.edu

[1691호 / 2023년 8월 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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