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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서 만난 친절과 배려

기자명 황산 스님

마음 괴로워 행동 거칠어질 때
이해·배려한다면 자비심 유지
화 내지 않겠다는 목표 세우고
뭇 중생 부처로 모시고 살아야

나이가 들면 더 너그러워지고, 자비로워지며, 이해해주고, 사랑해주고, 양보와 희생의 일상이 되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왜 더 예민해지고, 감정적이며, 짜증이나 화를 자주 내게 될까요?

여름방학을 맞아 청소년들과 탐험 활동으로 한라산 등반을 하였습니다. 3박4일 일정으로 삼천포에서 저녁 배를 타고 아침 일찍 제주에 도착하여 평화통일 사리탑을 친견했습니다. 

비 때문에 야외 활동 대신 아쿠아리움 관람 후 약천사에 들어갔습니다. 이튿날에는 비를 홀딱 맞고 한라산을 등반했습니다. 정상을 목표로 삼았으나 악천후로 진달래 대피소까지 다녀오게 되었고 17.5km의 산길을 걸었습니다. 산방산과 송악산을 걸을 때는 오히려 삼복더위라 무척 더웠습니다. 돌아올 때는 다시 배를 탔습니다. 

7시간이라는 제법 긴 시간을 바다 위에 있어야 했습니다. 3박4일간 동행한 12명의 청소년은 정말 화합이 잘 되었습니다. 덥고 힘든 상황에서 마음에 맞지 않거나 오해가 있을 법도 한데 그런 것은 금방 잊고 다시 친하게 지냈습니다. 

약천사는 웅장하고 아름다운 절이면서 인심도 넉넉한 도량이어서 청소년들과 활동할 때 항상 숙소로 삼는 사찰입니다. 넓은 대방과 세면시설도 잘 되어 있고 무엇보다 부처님 도량이라 좋습니다. 청소년들은 시시때때로 왁자지껄하고, 예의 없는 행동을 보이거나, 정리정돈이 정갈하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그래도 약천사 스님과 불자님들께서는 늘 너그럽게 봐주십니다. 

여행의 마지막 날 새벽예불 후 주지스님을 뵈었습니다. 스님께서 먼저 인사해주셨고 아침 공양을 마친 뒤에는 청소년들에게 차를 직접 내려 주시며 재미있는 이야기도 들려주셨습니다. 또 범종각에 올라가 종을 치고 소리를 들으며 소원을 비는 경험도 하도록 배려해 주셨습니다. 스님의 말씀과 행동마다 겸손과 소탈함이 묻어나와 편안하고 좋았습니다. 

사실 어른들은 일상에서 한마디 말의 오해로 관계가 소원해지거나 화를 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말과 행동에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한 탓입니다. 반면 아이들끼리는 서로 욕을 하거나 놀려도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갑니다.

우리는 각자 살아온 세월만큼 생각의 틀도 다릅니다. 똑같은 물도 지옥에서는 피고름, 천상에서는 감로수, 사람에게는 강으로 보인다고 했습니다. 상이 높을수록 무시당하면 화가 끓어 오릅니다. 만약 자신이 그 상황에 놓였다면 감정을 조절하고 ‘나의 업장이 두텁구나’ 하며 더 열심히 수행하는 계기로 삼아야 합니다. 생각의 틀을 없애는 것이 수행이기 때문입니다. 

상대가 예의 없을 때 같이 화를 내고 감정표출을 하면 나 자신도 예의 없는 사람이 됩니다. 상대에게만 예의를 차리라 하고 자신은 예의를 차리지 않으면 어찌 사람이겠습니까? 물론 바쁠 때는 상대방에 대한 예의나 감정을 살피기 어렵습니다. 몸이 아프거나 마음이 괴로울 때, 너무 덥거나 추울 때도 말과 행동에 여유가 없어지고 거칠어집니다. 그런 상황을 이해하고 조금씩 더 배려한다면 감정적이지 않고 자비심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린 시절을 지나왔습니다. 그 당시에는 서로 욕하기도 하고 놀리기도 하며 거짓말이나 장난, 농담을 심하게 했던 적도 있습니다. 그때는 아랑곳하지 않고 서로 웃으며 잘 화해하고 지냈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 왜 그리 이기적이며 폐쇄적인 모습이 되는지 스스로 말과 행동, 생각과 감정의 원인을 점검해야 하겠습니다.
 

무엇보다 세상 사람들이 다 그렇더라도 불제자들은 달라야 합니다. 업장 소멸을 위해 수행하지 않습니까? 깨달음을 위해 정진하지 않습니까?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상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화를 내지 않겠다는 목표를 가져야 합니다. 보현행(普賢行)의 원력을 세워 중생을 부처로 모시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 청소년들을 배려해 주시고 친절하게 인도해 주신 약천사 주지스님께 감사드립니다. 청소년들과 탐험 활동을 계획하고 준비하는 과정은 힘들었어도 제주도를 떠올리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가장 큰 이유입니다.

황산 스님 울산 황룡사 주지 hwangsanjigong@daum.net

[1691호 / 2023년 8월 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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