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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무도 수행 조영섭(지고·56) - 하

기자명 법보

몸·마음 조화 강조하는 선무도
육체 혹사 인생에 전환점으로
‘실명’ 의사 진단 현실 됐지만
반야지 얻는 날까지 정진 거듭

불교에서는 인연이 얼마나 소중한지에 대해 수없이 강조한다. 나에게는 선무도가 그렇다. 
한창 쑥쑥 자라나는 아들이 어떤 운동을 해야 건강하고 강인한 사람으로 자랄지 고민하던 어느 날이었다. 태권도, 합기도, 유도, 검도, 특공무술 등 무술이란 무술은 다 할 수 있는 전직 청와대 경호원에게 조언을 구했다. 그러자 그는 “어린이가 하기에 다른 운동은 많이 다치지만, 선무도는 다칠 위험이 적을뿐더러 마음을 함께 수련할 수 있어 좋다”며 선무도를 강력 추천했다. 

그렇게 아들이 먼저 선무도와 인연을 맺었다. 집에서 도장까지 모자가 즐겁게 다니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싱글벙글하는 아들에게 “무엇을 배웠니”하고 물으니 궁금하면 아빠도 배우란다. 결국 나도 선무도와 인연을 맺게 됐다.

선무도는 불가에서 내려오는 수행법으로 정신과 육체의 조화를 통해 궁극적으로 해탈에 이르는 방편이다. 항상 ‘정신이 육체를 지배한다’ ‘일체유심조,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려있다’고 생각하며 정신세계만 중요시했다. 아무리 힘들어도 억지로 움직이지 않으면 도태될 것이란 두려움에 육체를 혹사시키며 살아온 내게 ‘몸과 마음의 조화’를 강조하는 선무도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인생의 전환점이 된 것이다.

‘육체가 건강해야 정신도 건강해진다’ ‘조화가 깨지면 병이 생긴다’ ‘조화를 이루는 도구가 호흡이다’ 이 삼박자가 균형을 이뤄야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고 배웠다. 강남 선무도요가센터에서 처음 시작한 것이 ‘발가락 운동’이다. 손목운동, 발목운동은 수없이 해봤지만 발가락 운동은 처음이었다. 슬슬 주변 눈치를 보며 법사님을 따라 발가락에 힘을 주기 시작했다. 하지만 발가락이 마음처럼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구부렸다 폈다만 해도 온 몸에 잔뜩 힘이 들어갔고, 단순한 동작도 생각대로 잘 되지 않았다.

흥미가 돋았다. 의지를 다잡고 법사님의 지도에 따라 한 동작 한 동작 몸을 움직였다. 몸짓에 맞춰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법도 배웠다. 그렇게 시간이 갈수록 평소 잘못된 자세로 굳어져 있던 몸이 쭉쭉 펴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도장을 나서면 발걸음이 가볍고 정신은 맑아 상쾌했다. 나중에서야 선무도가 부처님의 수행법으로 알려진 ‘아나파나사티’를 중심으로 이뤄졌다는 것을 알았다. 법사님이 왜 항상 선무도가 ‘단순한 운동이 아니라 반야지를 이루는 수행’이라고 강조했는지 이해됐다.

아들의 손을 꼭 잡고 선무도를 시작할 때만 해도 흐릿한 시야 속에 사람과 사물이 있고 없음은 구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점점 빛이 없어져 엉뚱한 방향으로 나아가곤 했다. 도반들과 함께 수련하는 게 민폐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용히 그만둬야하나 수없이 망설였는데, 그때마다 법사님의 자상한 지도와 도반들의 친절에 다시금 용기를 냈다. 그만두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나날이 좋아지는 건강과 심리적 안정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다. 지금 이 순간을 알아차리게 하는 선무도의 힘을 내 것으로 만들고 싶었다.

언젠가는 닥치리라 예상했던 순간이 찾아왔다. 이제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생각보다 많은 변화가 찾아왔다. 아차하면 부딪치고 가려던 방향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걸어갔다. 작은 소리에도 깜짝깜짝 놀랐으며 빈 공간에 홀로 있으면 두려움이 몰려왔다. 집을 나서면 몇 발짝 내딛지 못하고 그 자리에 머물러 있기가 일수였다. 어릴 적 ‘곧 실명할 것’이라는 의사선생님의 진단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빛이 전혀 없는 암흑세계는 차원이 다르다. 조금 보인다는 이유로 반은 비장애인으로, 반은 시각장애인으로 살아왔다. 그동안 생각과 추측으로만 이해한 것들을 직접 경험하니 시각장애인이 살아가려면 얼마나 많은 힘겨움과 불편함을 겪어야 하는지 여실히 알게 됐다.  

이런 힘겨운 날을 견디게 해준 것이 선무도이다. 몸과 마음과 호흡의 조화. 대상이 아닌 나에게 집중하는 연습이 생활화 되면서 시시때때로 변하는 마음을 관찰하는 힘이 생긴 것이다. 심안이 열리면 어떻게 될지, 무엇이 보일지 궁금하다. 마음근육을 키우며 반야 지혜를 얻는 그날까지 불교금강영관 선무도를 방편삼아 정진을 거듭할 것이다.

[1692호 / 2023년 8월 1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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