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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학자가 써내려간 사찰역사와 인물

  • 불서
  • 입력 2023.08.14 16:21
  • 수정 2023.08.18 06:46
  • 호수 1682
  • 댓글 1

그곳, 寺
정종섭 지음 / 선 / 408쪽 / 2만5000원

유산기(遊山記)는 조선시대 선비들이 산행했던 내용을 써내려간 기록 산문이다. 유산기에는 당대 사대부들이 다녀갔던 절에 대한 소상한 기록과 그들의 불교관도 확인할 수 있다. 산에 놀러가 스님에게 술을 요구하고 가마를 메게 하는 일이 잦았지만 스님을 존중하고 도를 주제로 환담을 나누는 모습도 나타난다.

한국국학진흥원장인 저자는 헌법재판소 헌법연구관, 건국대·서울대 법대 교수, 행정안전부 장관, 국회의원을 역임한 학자이며, 관료이고, 정치가다. 저자가 그간 자주 찾았던 11곳 사찰에 대한 다양한 얘기를 풀어내고 있는 이 책은 유산기를 많이 닮아 있다. 저자가 공부해온 불교와 그 이외의 문제를 놓고 씨름한 지식체계를 바탕으로 사찰 순례를 하면서 생각한 사유의 조각들이 오롯이 드러난다. 문화사학을 따로 전공한 게 아닐까 싶은 정도로 역사와 사상에 해박하고 사찰에서 마주하는 문화유산을 읽어내는 깊이가 탁월하다. 그러면서도 우리의 삶과 현실의 문제를 떠나지 않는다.

책은 한국불교의 시원지라 할 수 있는 도리사에서 시작한다. 이곳 사찰 역사와 함께 어떻게 한반도에 불교가 전해졌는지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를 이어간다. 만백성이 진리에 눈을 뜨고 평등하고 행복하게 사는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들고자 뛰어난 불교철인들과 지식인들이 탐구의 길에 뛰어들었음에 주목하고 이 시대 지식인과 정치인들의 위치를 돌아본다. 낙산사에서는 의상 스님이 쓴 ‘백화도량발원문’ 해석과 보살사상의 성립과 의미를 궁구한 뒤 보살의 등장으로 인해 불교가 비로소 중생이 필요로 하는 종교가 될 수 있었다는 견해를 조심스레 밝힌다. 그렇게 저자의 발걸음은 부석사를 거쳐 진전사, 억성사, 전등사, 보경사, 백련암, 다솔사, 개심사, 봉은사로 이어진다. 특히 봉은사 주지 원명 스님의 요청으로 ‘백곡처능선사비’의 전면 글씨를 쓰기도 했던 저자는 잔학한 유생들에 의해 순교한 보우 스님과 불교가 바람 앞의 촛불 같은 상황에 직면했을 때 장문의 ‘간폐석교소’를 써서 이를 막아냈던 처능 스님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도리사에서 내려다본 풍경. [선 제공]
도리사에서 내려다본 풍경. [선 제공]

저자의 글에는 스님들뿐만 아니라 각 시대의 위정자들 얘기가 자주 등장한다. 단순한 서술이 아니라 공자의 춘추필법이 그랬듯 정권을 찬탈하거나 자신의 권력 보존을 위해 타인을 희생시켰던 이들에 대해 혹독한 평가를 마다하지 않는다. 그들이 왕이나 이름난 유학자라도 예외 없으며, 그리 큰 이름을 남기지 않았더라도 백성을 위하고 충과 의를 견지했다면 ‘선생’이라는 칭호를 붙인다. 저자가 서문에 언급했듯 그 배경에 ‘인간은 존귀한 존재로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과 ‘모든 인간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실현 방도가 무엇인가’하는 질문이 늘 뒤따르기 때문이다.

동서양의 역사와 사상에 두루 밝고 특히 유교와 불교에 해박한 저자는 조선 시대 다산 정약용 선생이나 추사 김정희 선생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그와 떠나는 사찰 순례는 사찰에 대한 이해 차원을 넘어 우리 역사와 현실에 대한 새로운 안목을 선사한다.

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1692호 / 2023년 8월 1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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