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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 수행이론의 총망라(65)-깨친 이의 능력; 총론 ①

닦아서 생기는 부사의함을 말하다

소제목을 <깨친 이의 능력>으로 바꾸었다. 이 대목에서 다시 한번 과목을 점검하고 향후의 진도를 도모해야겠다. ‘화엄경’은 무수한 ‘문-답’으로 이루어졌다는 이야기, 또 그 ‘문-답’들이 서로 다발을 이루어 결속되었다는 이야기, 그리고 그 다발이 모두 넷이라는 이야기, 여러 번 반복했다. 

   ⑴첫째(제1회) 다발에서는 부처님을 포함한 중생들의 무리와 그런 무리가 의지해서 사는 세계 설명이 핵심 주제이고, ⑵둘째(제2회~제7회) 다발에서는 다양한 수행과 그에 따른 결과를 이론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핵심 주제이고, ⑶셋째(제8회) 다발에서는 이상의 이론에 입각한 실천 수행이 핵심 주제이고, ⑷마지막 넷째(제9회) 다발에서는 ‘선재’라는 가상의 젊은 수행자를 등장시켜 수행의 효과[德]를 직접 체험하게 하는 것이 핵심 주제이다.

이상의 네 다발 중에서 현재 필자는 ⑵둘째 다발을 진행하는 중인데, 경학에서는 둘째 다발을 크게 세 과목으로 가닥 친다. ㉮첫째는 답소의과문(答所依果問; 수행자가 의지해야 할 대상이 무엇이냐에 대한 답변)이고, ㉯둘째는 답소수인문(答所修因問; 수행자가 실천할 요소는 무엇이냐에 대한 답변)이고, ㉰셋째는 답소성과문(答所成果問; 수행을 완성하면 어떤 능력이 나타나는가에 대한 답변)이다. 

지금의 진도는 지난 호에서 ‘여래수량품 제31’과 ‘제보살주처품 제32’를 끝으로, ⑵ 중에서 ㉯ 즉, 신(信)-해(解)-행(行)-원(願)-증입(證入)-등불(等佛)을 소략하게나마 설명해 마쳤다. 

이번 호부터는 ㉰셋째의 답소성과문(答所成果問; 수행을 완성하면 어떤 능력이 나타나는가에 대한 답변)에 해당하는 본문을 살필 차례이다. 

그래서 본 연재의 제목을 <깨친 이의 능력>으로 바꾸어 달았다. ㉰에는 총 다섯 품이 배속되니, ‘불부사의품 제33’ ‘여래십신상해품 제34’ ‘여래수호광명공덕품 제35’ ‘보현행품 제36’ ‘여래출현품 제37’이다. 

이 다섯 품 중 첫째 품은 깨친 이의 능력을 총체적으로, 나머지 네 품은 그 능력을 개별적으로 드러내는 부분이다. ‘불부사의품 제33’ 전체 내용을 운허 스님의 ‘한글대장경’ 「해제」를 인용하는 것으로 대신한다. 

“닦아서 생기는 과덕의 부사의함을 말한 것이니, 그때 보살들 생각에 ‘부처님의 국토·서원·종성·부처님의 몸·음성·지혜 들에는 어떠한 부사의가 있는가?’ 함을 부처님이 아시고, 청련화장보살에게 가지(加持)하여, 다함이 없는 지혜의 문을 알게 하고, 여러 보살에게 말하게 하였다.

청련화장보살은 ‘세존은 한량없이 머무시는 곳이 있고, 또 그지없는 청정한 몸과 걸림이 없는 눈들의 열 가지 법이 있어 한량없고 그지없는 법계에 두루하였고, 또 열 가지 지혜·열 가지 때를 놓치지 않음·견줄 데 없는 부사의한 경계·끝까지 청정함·그지없는 지혜바다·부사의한 부처님 삼매·걸림 없는 해탈 등 32문이 있다’고 말하였다.”

이상의 인용에서 운허 스님께서는 청련화장보살의 궁금함을 간략하게 줄이셨는데, ‘화엄경’ 본문에는 국토, 서원, 종성, 출현, 몸, 음성, 지혜, 자유자재, 걸림 없음, 해탈 등 총 10부문이 나열된다. ‘깨친 이’의 능력을 이렇게 청련화장보살의 입을 통해 말하게 하니, 듣는 대중들은 부처님의 능력이 불가사의함에 감탄한다. 그런데 ‘화엄경’ 작가의 ‘노림수’는 다만 깨친 이의 능력에 대한 ‘찬송’이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부처님과 같은 능력이 있음을 알리려는 데 있다. 그 ‘노림’은 ‘여래출현품 제37’에서 드러낸다.

‘화엄경’ 작가는 ‘깨친 이’ 스스로 나의 깨친 내용은 이러하노라는 식으로 작품을 구성하지 않았다. 궁금함을 느낀 보살 ‘느그들’이 생각하여 ‘느그들’ 언어로 고백하게 했다. 생각하지 않는 자에게는 어떤 수도 없다. 그렇다고 ‘느그들’끼리 말하면 ‘느그들’ 말이 되니, ‘부처님의 가지’ 힘으로 말하게 함으로써, 보살들의 고백을 ‘깨친 이’의 말씀으로 승화시켰다. 

‘깨친 이’가 어떤 분인지는 초기 경전 즉 ‘아함’ 더 구체적으로 ‘잡아함’에 자세하다. ‘아함’이나 ‘니까야’를 학(學)하고, 동시에 스스로 사(思)해야 한다. 어느 한쪽만 하면 망(罔)하거나 태(殆)하게 된다. 

신규탁 연세대 철학과 교수 ananda@yonsei.ac.kr

[1693호 / 2023년 8월 2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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