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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는 기울어진 쪽으로 넘어진다

기자명 명오 스님
  • 법보시론
  • 입력 2023.08.28 11:32
  • 수정 2023.08.28 13:42
  • 호수 1694
  • 댓글 4

석가족의 한 신도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이 카필라국은 안온하고 풍요로워 백성들이 많습니다. 제가 출입할 때마다 많은 대중이 뒤따르고, 미친 코끼리·미친 사람·미친 수레도 항상 따릅니다. 이들과 함께 살아가다가 삼보를 잊을까 두렵습니다. 죽으면 어디서 태어날지도 걱정됩니다.” 부처님이 말했다. “그대는 나쁜 곳에 태어나지도 나쁜 일도 없을 것이니, 두려워하지도 무서워하지도 말라. 마치 큰 나무가 밑으로 가지를 늘어뜨려 한쪽으로 쏠리고 기울어진 것과 같다. 만약 그 나무의 밑동을 베면 나무는 어디로 넘어지겠는가?” “나무가 향하고 있던 곳이나 기울어진 쪽으로 넘어집니다.” 부처님은 설했다. “그대도 이와 같다. 오랫동안 삼보에 귀의하여 수행했기 때문에, 악처에 나지도 악한 일을 당하지도 않을 것이다. 오래도록 바른 믿음·지계·보시·법문을 듣고 지혜에 훈습되었기 때문에, 죽어서 몸은 사라지더라도, 마음은 안락한 곳을 향하고 천상에 태어날 것이다.” 

이 이야기는 현실과 사후에 대해 불안해하는 중생을 위한 안심 법문이다. 어떤 마음가짐으로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미래가 결정되니, 정법대로 살라는 부처님의 당부이다. 정신이 온전하지 못한 사람들 속에서도 삼보를 공경하고 바른 믿음으로 산다면, 어떠한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고, 내생에 좋은 곳에 태어난다. 반면, 그릇된 생각으로 나쁜 행동을 일삼는다면, 살아서도 죽어서도 고달프다는 것이다. 나무가 기울어진 쪽으로 넘어지는 것처럼.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현실과 미래를 걱정하고, 때로는 불안해한다. 아무리 잘나가는 사람이라도 다가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가지게 마련이다. 그럴수록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돌아보기도 하고 참회하며, 선행과 공덕을 쌓으며 경우에 맞게 살아가려고 한다. 그들의 선한 영향력은 개인과 사회를 유연하게 하고 힘차게 한다.

우리 사회에는 가족이나 타인, 세상에 대한 상처나 불만·오해로 고통 속에 있는 이들이 많다. 청소년들의 사망 원인 1순위가 자살이고, 이삼십대 청년들의 고독 자살률은 중·장년층을 훌쩍 뛰어넘었다. 취직을 포기하고, 스스로 닫은 방문 안에서 온라인 게임 등에만 탐닉하는 MZ세대의 은둔형 외톨이도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었다. 그들 중에는 분노를 폭발적으로 드러내며 ‘묻지마 범죄’를 저지르고, 일상의 공간에서 흉악 범죄까지 연달아 일으키며 사회를 더욱 불안에 떨게 한다. 이런 범행은 이미 고단하고 상처 입은 사회에 더해지는 별도의 악이다. 개인주의, 그리고 인간과 인간의 직접적인 소통의 단절이 문제일까? 

조금만 더 힘을 내고, 자신을 믿으면 좋겠다. 죽음이 끝이 아니다. 반드시 다시 태어남이 있고, 이생의 업보는 반드시 다음 생에 뒤따른다. 모든 생명을 해쳐서는 안 되지만, 자살과 살인은 더더욱 안 된다. 부처님은 윤회의 세계에서 인간 몸 받는 것은 망망대해에서 눈먼 거북이가 구멍 뚫린 널빤지를 만나는 것과 같다고 설했다. 윤회에서 벗어나는 열반의 성취도 인간이 최적이라니, 우리는 모두 엄청난 행운아인 셈이다. 인생이란 이토록 귀한 것이다. 

내가 행복하기 위해서는 나를 둘러싼 주변과 세상도 편해야 한다. 너와 내가 유기적으로 연관되어 있어, 타인의 불행이 나와 무관하지 않다. 그릇된 사고방식으로 정신이 불안전하고 광적인 사람들이 생기지 않도록, 절망하고 사회에 고립되지 않도록, 가족의 기능과 사회적 노력이 동시에 필요하다. 아이들을 치열한 경쟁 속으로 몰아넣어 획일적인 교육만을 강요하는 대신, 각자가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찾을 수 있게 도와주어야 한다. 사회적 성공 기대치를 낮추고, 다양한 직업과 교육의 기회를 얻는 사회를 만들어가야 한다. 나의 상황과 조건에 기죽지 말고, 더디고 힘들더라도 서로에게 이롭고 경우에 맞게 올바른 방향으로 가자. 기울어진 나무의 운명처럼, 나의 미래도 안락하고 행복한 쪽으로 기울어지도록 하자.

명오 스님 동국대 강사 sati348@daum.net

[1694호 / 2023년 8월 3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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