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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탐욕과 새만금 개발 

인간의 무지가 펼치는 다양한 증세를 새만금 개발만큼 잘 보여주는 사례는 없을 것이다. 첫째는 거짓말이다. 광주시민을 학살하고 대통령이 된 전두환의 대권을 잇기 위해 나선 노태우가 1987년 12월 전주 유세에서 전라도의 표심을 모으기 위해 내건 공약이 바로 새만금 사업이다. 당시 이 사업의 목표는 식량 생산과 담수호 확보였다. 그러나 정권이 바뀔 때마다 목표가 바뀐다. 이 ‘황금의 땅’에 디즈니랜드, 골프단지 등을 만들어 복합 관광레저단지를 만든다는 계획이 나오고, 심지어는 카지노를 유치하자는 제안까지 나왔다. 아예 동북아 경제중심지로 만든다며 새만금개발청까지 설치했다. 그리고 지금은 시민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국제공항을 건설하겠다고 난리다. 거짓말의 향연이 이처럼 다채로울 수 있을까.

무엇보다도 가슴이 아픈 것은 갯벌을 터전으로 살아왔던 생명들이 죽어나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33.9km로 세계 최장의 방조제 안에서 갯벌 매립으로 이미 죽어간 생명체는 헤아릴 수가 없다. 한반도 갯벌의 10%를 차지하던 이 땅에 살던 갯지렁이, 바지락, 백합, 동죽, 맛조개, 고막, 굴, 낙지, 쭈꾸미 등 숱한 생명체들은 졸지에 자신들의 생존 공간을 잃고 말았다. 그들 죽음의 흔적은 간척지의 곳곳에 남아 있다. 자연정화의 주인공들이며, 인류와 공존공생해온 역사마저 지워졌다.   

그리고 더 큰 죄악은 남의 생계 터전을 빼앗은 도둑질이다. 갯벌에 의지해 살아오던 수많은 어민과 상인들이 졸지에 객지로 쫓겨나 살게 되었다. 자연의 혜택에 욕심부리지 않고 살던 사람들이 개발 폭력 앞에 무릎을 꿇고 뿔뿔이 흩어졌다. 부안군의 계화·돈지·하리·문포·해창, 김제시의 거전·심포, 군산시의 어은·오봉·하제 등 크고 작은 항구가 사라졌다. 어구는 비바람에 삭아서 사라지고, 수산물 매매의 장은 휑하니 바람만 머물며, 손님이 즐비하던 식당은 허물어져 폐가가 되었다. 거대한 탐욕이 평범한 삶들을 짓밟으며, 소박한 희로애락으로 점철된 일상의 삶은 무너지고 희미한 기억 속으로 사라졌다. 전쟁터의 난민과 무엇이 다를까.

최근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은 축제의 장이 되었어야 할 세계 청소년들의 세계잼버리대회를 준비도 없이 맞이하여 파행 운영되었다는 점이다. 잼버리 정신인 ‘준비하라’는 자세는 없고, 그저 청소년들이 허허벌판에 텐트치고 어울려 놀기만 하면 다 되는 줄로 착각한 것이다. 세계 150여 나라에서 온 5만명의 청소년이면 하나의 도시가 형성되는 것이다. 새만금 잼버리는 무리임에도 강행했다. 이 대회로 예산을 더 빼낼 수 있으며, 주가 상승의 홍보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했을 것이다. 자기반성 없는 정치인과 공무원들은 책임 전가의 화염만을 내뿜는다. 

절망적인 것은 새만금의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점이다. 종교계와 시민단체들은 처음부터 이 개발에 반대하며, 새만금에서 청와대까지 삼보일배로 이 무지와 탐욕의 현실을 전 국민과 세계인들에게 알렸다. 수조 원의 혈세로 지금도 목적 없이 산을 깎아 갯벌을 메우기만 하고 있다. 무지의 관성이 멈추지 않는다. 이익을 얻는 자는 자연을 파괴하는 토건세력과 환상의 공약을 심어주는 정치가들뿐이다. 초대형 국책사업이라는 명목하에 국가의 법망을 유유히 빠져나간다. 지역균형발전, 경제적 재도약, 국가전략사업, 동양의 두바이, 동북아 경제중심도시라는 말들에 거대한 부가 갑자기 솟아오르는 것 같은 환각으로 술에 취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되돌릴 수도 없는 새만금 개발사업은 집단적 무지의 표본이다. 설사 간척이 끝나 농토나 도시가 된다고 해도 머지않아 남북극의 빙하가 녹아 다시 해수면 아래의 바다가 될 것이다. 오계(五戒)를 파계한 이 무도한 현실에 인과응보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떨어질 것이다. 지금 여기서 멈추고 하늘과 땅에 사죄하며, 자연의 복원력을 믿고 지켜보는 것이 최선이 아닐까.

원영상 교수 원불교학과 교수 wonyosa@naver.com

[1694호 / 2023년 8월 3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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