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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돈황 사본 속의 8세기 동아시아 질병

기자명 이현숙

‘권선경’ ‘신보살경’에 당시 유행하던 질병 서술

프랑스 펠리오가 막고굴에서 사들여 가져온 돈황사본에 담겨
당시 유행하던 질병들을 거론하며 경전사경 통한 극복을 권해
당나라 무측천본이 가장 오래됐고 송나라 태조본이 가장 늦어

돈황 문서를 프랑스로 가져온 1909년의 폴 펠리오.[위키피디아]
돈황 문서를 프랑스로 가져온 1909년의 폴 펠리오.[위키피디아]

나는 1990년부터 1992년까지 프랑스 파리의 사회과학고등연구원(EHESS)에서 중국고대사를 공부한 적이 있다. 석사학위 이상자만 입학할 수 있는 학교로서 중국사를 가르치는 교수가 6명, 역사학 계열 교수가 모두 77명이나 되는 것을 보고 그 규모에 깜짝 놀랐다.

사학과 전체 교수가 6명에 불과한 작은 나라 한국에서 온 나는 저절로 두 손을 모으며 겸손해질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영국의 캠브리지 역사학부에 갔다가 역사학만을 위한 단독 건물인데다 로비 안내판에 소개된 교수들의 숫자가 144명이 넘는 것을 본 뒤, 19세기 제국주의 출신 국가들이 가졌던 힘의 세기와 세계적으로 유명한 대학교의 역사학 교수 숫자가 비례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불어도 잘하지 못하는 나를 받아준 도날드 홀츠만(Donald Holzman)교수는 미국에서 태어나 1957년 예일(Yale)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다시 프랑스로 건너가 대학에서 강사생활을 하면서 폴 드미에빌(Paul Demiéville, 1894~1979) 교수 밑에서 위진남북조의 시인 혜강(嵇康, 223~262)에 대해 논문을 쓰고 2번째 박사학위를 받았던 분이다. 언젠가 수업시간에 예일대 중국학 교수가 와서 영어로 특강을 한 적이 있었는데, 홀츠만 교수의 학연 때문인지를 나중에서야 알았다.

나는 유대계 독일인 계통임을 보여주는 홀츠만이라는 그의 성에다 전형적인 영미 계열의 이름 도날드를 쓰고 프랑스에서 중국고대사를 강의하는 그를 2년 내내 보면서, 부모가 지어주었을 그 이름 속에서 느껴지는 뒤죽박죽 같은 이상한 혼돈에 대해 그 실체가 늘 궁금하였다. 왜 그런 이름을 가지고 프랑스에서 중국 고대의 시와 문화를 가르치게 되었는지, 내가 파리를 떠나던 그 순간까지 그에게 물어보지 못하였다.

홀츠만 교수는 수업시간 내내 중국 위진남북조 시대의 온갖 종류의 원 사료를 읽어가면서 이것이 어떻게 불어로 번역되는지, 그 사료가 뜻하는 바를 설명해 주었다. 한국의 석사과정 동안 원 사료를 읽고 번역하는 것은 ‘사료강독’ 과목에서만 하였다. 대부분의 시간을 다양한 논문들을 읽어가며 해당 주제에 대해 토론하는 방식의 수업만 받았기에 원 사료를 중국어 원음으로 읽고 이것을 불어로 번역한 뒤, 그 의미를 설명하는 홀츠만 교수의 수업 방식이 좀 답답해 보였다.

2년 내내 사료만 불어로 번역했기 때문에 ‘자기의 이론이 없어서 사료만 읽나 보다’라고 오만방자한 생각까지 했었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는 격으로 나는 ‘서양 사람이 동양학 하는 수준이 그렇지 뭐’라며 한때 동양의 본거지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수준이 높다고 칭송받던 프랑스의 동양학이 가진 한계라고 느꼈다.

나는 한문을 한국식 발음으로 읽고 자랐기 때문에 홀츠만 교수가 4성이 포함된 중국어로 원 사료를 읽은 뒤에 불어로 번역하는 수업에서 잠깐만 딴 생각을 해도 어디를 읽는지 도저히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어느 날 3시간 수업 내내 ‘론위’라는 말을 수없이 반복하는 홀츠만 교수를 보면서 도대체 ‘론위’가 무엇을 말하는지 알아듣지 못해서, 수업 끝난 뒤 상해에서 온 중국학생에게 ‘론위’가 무엇인지 물어보았다. 그는 약간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논어’라고 한자로 써주어서, 이런 간단한 말도 못 알아듣고 3시간 내내 뻘쭘하게 앉아 있던 나 자신이 참으로 한심해 신세타령이 저절로 나왔다.

그러면서 나는 바다만 건너면 통용되지도 않을 ‘논어’라는 발음으로 우리를 교육하였던 대한민국 교육체제를 비난하였다. 우리는 우리끼리만 알아듣는 발음을 사용하기 때문에, 세계 공통적으로 중국어 원 사료를 중국어로 읽지 못하고 한자가 한반도에 들어왔을 때의 중국어 발음을 금과옥조처럼 여기며 1000여년도 넘게 열심히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한국인이 읽는 한자 발음은 당나라 때 발음이라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홀츠만 교수가 1990년대 세계적으로 몇 안 되는 위진남북조 전문 역사학자라는 사실을 그때는 전혀 몰랐다. 나는 프랑스가 어떻게 해서 저렇게 중국학에 대해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게 되었는지 궁금했었는데, 바로 폴 유젠느 펠리오(Paul Eugene Pelliot, 1878~1926)덕분이라는 것을 알았다. 

19세기 프랑스가 제국주의 국가로 맹위를 떨치기 시작하였을 때, 베트남부터 히말라야에 이르는 다양한 아시아 지역으로 점점 더 많은 탐사를 진행하였다. 탐사과정에서 발견된 수많은 현지 자료들을 본국 프랑스로 보내 전문학자들이 연구하도록 하였는데, 그 대표적인 자료의 하나가 바로 펠리오가 돈황의 막고굴을 차지하고 살던 도사에게서 헐값으로 샀던 돈황문서였다.

그런데 최근 돈황문서 속에 8세기경에 만들어진 ‘권선경’과 ‘신보살경’에 당시 유행하던 질병에 대한 서술이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신보살경’과 ‘권선경’의 내용이 비슷한데, 두 종류 모두 여러 버전들이 있어서 그 계통을 파악하기 쉽지 않다. 돈황문서 중 현존하는 ‘신보살경’으로는 영국, 프랑스, 러시아, 중국에서 보관하는 사본들이 있다. 여러 사본 중 연대가 가장 이른 것은 무측천 장안(長安) 4년 (704년)이고, 가장 늦은 것은 송 태조 건덕(乾德) 5년(967)이다.
펠리오가 돈황 막고굴에서 가져왔던 프랑스 소장(P.2668·2953·3117·3857)의 ‘신보살경’을 번역해 보면 다음과 같다.

가탐(賈躭)이 여러 주에 반포하여 중생이 매일 아미타불 천 번을 읽어 악을 단절하고 선을 행하도록 하였다. 올해 크게 풍년이 들었지만 수확하는 사람이 없는데, 여러 가지 병으로 죽었다. 첫째는 학병(瘧病)으로 죽고, 둘째는 천행병(天行病)으로 죽고, 셋째는 졸병(卒病)으로 죽었으며, 넷째는 종기로 죽고, 다섯째는 출산하다 죽고, 여섯째는 배가 아파 죽고, 일곱째는 혈옹(血癰)으로 죽으며, 여덟째는 풍황병(風黃病)으로 죽고, 아홉째는 수리(水痢)로 죽고, 열째는 눈병으로 죽었다. 여러 중생에게 권유하건대, (이 경을) 한 번 쓰면 일신이 면할 수 있고, 두 번 쓰면 한 가문이 면할 수 있으며, 세 번 쓰면 한 마을이 면할 수 있다. 쓰지 않는 자는 일족이 전멸하고, 문에 붙여 게시하면 이 재난을 넘길 수 있으니, 7·8월에 주목하라. 세 집에서 소 한 마리를 키우고, 남자 다섯 명이 여자 한 명과 함께 한다. 승니가 함께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이 경의 사경을 권한다. 이 경은 서쪽 양주에서 왔는데, 정월 2일 정오 때에 우레 소리가 두 번 울리더니 큰 돌이 하나 내려왔다. 그 크기가 한 말이나 되었는데, 돌이 곧 두 개로 쪼개어 지더니 이 경이 나타났다. 여러 중생에게 알리고자 지금 질병들을 실는다.  『신보살경』 권1 기해년 5월 20일 □□.

이현숙 한국생태환경사연구소장 rio234@naver.com

[1694호 / 2023년 8월 3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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